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이것이었다.
너네 회사 차 좀 싸게 살 수 있는 방법 없냐?
럭셔리한 쇼룸에서 구경하면 딜러가 붙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지만, 왠지 바가지를 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원래 우리 민족이 그렇다. 핸드폰 사러 용산에 가면 얼마까지 보고 오셨냐며 흥정을 시작하고, ‘성지’라고 이름 붙여 가며 한 푼이라도 저렴하게 파는 곳을 찾아 헤맨다. 마찬가지로 자동차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할인해주는 곳을 찾기 마련이다.
반면 자동차 회사 홈페이지에는 차종/차급/옵션별로 정찰제 가격이 적용되어 있다. 이미 가격이 오픈되어 있으니 똑같은 차를 정해진 가격보다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한다. 해외에서는 자동차 회사가 딜러에게 차를 팔고, 딜러가 일반 고객에게 파는 개인 소매업의 성격이 강하지만 우리나라의 자동차 회사 딜러들은 대부분 자동차 회사 네트워크에 속해 있다. 그래서 영업 사원 임의로 가격을 싸게 내놓는 것은 원칙적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딜러들은 월급 없이 판매 대수에 따른 인센티브만 받는 계약직이다. 회사 소속이긴 하지만 소득은 개인 성과에 크게 좌우되는 반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본인이 지급받는 보수의 일부를 사용하여 판촉 차원에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는 있다. 일반적으로 영업 인센티브의 형태는 일정 대수 이상을 팔면 추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슈퍼 딜러”라는 분들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서비스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 달에도 몇십 대를 파는 분들에게는 소중한 첫 차를 사는 나도 그저 수많은 차를 사는 그들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차를 살려고 하니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나는 영업사원에게 돌아갈 인센티브에서 떼서 주는 임직원 소개비 안 받을 테니 지인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영업점에서 제일 고객을 잘 챙겨주는 분으로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리곤 했다. 팔고 나서도 이상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챙겨주는 딜러를 만나는 것이 특히 처음 차를 사는 사람에게는 추가 서비스보다 더 필요할 것이다.
차값은 고정되어 있지만 현명한 소비자들이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 예외들도 있다. 가장 먼저 장기 재고 차량은 정가보다 저렴하다. 우리 동네의 단골 빵집은 어제 팔고 남은 빵을 다음날에 반값에 판다. 자동차도 생산 계획을 세우고 부품을 수급하고 관리하는 데 몇 달이 걸리기 때문에, 자가 주문해서 인도받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취향을 예측해서 미리 생산해 둔다.
그런데 유독 찾는 이 없이 오래 동안 팔리지 않는 차량들이 존재한다. 생산 후 3개월 이상 방치된 차량들은 유지 관리를 위한 추가 비용이 든다. 그 비용만큼 5~7% 정도 차값을 할인해 주는 것이다.
특히 Model Year가 변경되거나 신모델이 나오는 경우, 이전 모델은 더 저렴한 할인이 붙는다. 배기가스 규제가 강화되어 연말까지 무조건 팔아야 하는 경우에는 회사의 입장이 절박하기 때문에 할인율이 더 커지게 된다. 원하는 차량이 신모델로 새로 바뀔 계획이라면, 할인하는 구버전 차량이 있는지 딜러에게 미리 문의해 두면 좋을 것이다.
가끔은 다른 용도로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한 이력이 있는 차량도 할인된 가격에 나온다. 자동차 출시 전 양산 차량으로 품질 확인 시험 주행을 할 때가 있다. 때로는 정부에서 자동차 회사의 양산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신차로 배기가스 시험을 진행하기도 한다. 모터쇼나 쇼룸에 전시된 적이 있는 차량, 광고 촬영에 쓴 차량 등도 대상이 된다.
또 법적으로 신차로 판매할 수 있는 마일리지는 100km로 제한되어 있다. 그 이상을 넘으면 신차로 팔 수가 없어 중고차 거래에 풀리기도 한다.
이런 차량들은 마일리지가 용도에 맞게 사용된 후 품질팀에서 고객 인도 시 문제가 될 만한 점들을 미리 점검한다. 사소한 흠집, 가죽 눌림 등까지 모두 체크해서 할인율을 정해 출시된다.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임직원 대상으로 먼저 공지하지만 때로는 영업 사원의 리스트에 올라올 때가 있다. 차량 상태에 대한 확인은 필수이지만, 10% 이상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가끔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을 제안하는 딜러들도 있다. 하지만 정해진 가격에 정해진 인센티브의 선을 넘어서는 할인이라면 꼭 뒷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결함으로 다른 고객이 인수를 거부해서 이도 저도 못 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설명이 명확하지 않다면 다른 지점 다른 딜러를 찾아 꼭 문의해 보길 바란다.
세상에 공짜 없다. 내 생애 가장 큰 지름인 첫 차를 새 차로 사는 이벤트에는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 오래 함께 갈 친구를 현명하게 만나길 바란다.
원문: 이정원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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