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다. 예전에는 CC당 만원씩 해서 2000CC짜리 중형차를 구입하려면 2천만 원 정도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웬만큼 옵션이 갖추어져 있는 중형차는 삼천만 원을 훌쩍 넘어간다. 각자 재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원하는 차종이 늘 가진 예산에 간당간당한 경우가 많다.
삼천만 원 준비되었으니 삼천만 원 차 산다 이런 각오 하고 딜러를 찾아가 보면, 등록세에 취득세에 보험료에 옵션 추가 등등을 더해서 카탈로그에 적힌 가격보다 15~20% 정도는 추가로 더 돈이 필요한 걸 깨닫는다. 모양 빠지게 후퇴는 못 하겠으니 카드 할부하고 마이너스 대출해서 4~5백 돈 추가로 채워서 새로 끌고 나가다가 운전 미숙으로 접촉 사고라도 나면 바로 피눈물 난다. 새 차가 이렇게 무섭다.
그래서 예산은 한정적인데 마음에 드는 차가 너무 비싸다면 중고차로 시작하는 것을 권한다. (새 차 만들어 파는 자동차 회사 직원이 이런 이야기하는 것은 회사 영업에는 방해하는 행위이지만…) 집은 새집을 사서 살수록 값이 오르는 재화이지만, 자동차는 타는 순간부터 가치가 떨어진다.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예전에는 중고차의 품질을 보장받기 어려웠다. 그래서 저렴하게 중고로 샀다가 수리비가 더 많이 들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특히 엔진의 경우에는 연료의 성분에 불순물이 많았고 기계식 제어로 오래 타면 연료량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차가 떨리거나 이상 거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배기가스 규제가 보다 엄격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엔진이 모두 전기적으로 제어되고 학습도 하기 때문에 예전같이 엉망인 차량은 시장에 많이 없다. 그러니 엔지니어 측면에서 좋은 중고차를 고르는 몇 가지 팁을 소개해 본다.
일단 연식에 맞는 적당한 거리를 탄 차량이 좋다. 중고차 가격은 오래될수록, 많이 탈수록 더 싸지긴 하지만 연식에 비해 너무 짧게 달린 차량은 문제가 있다. 엔진 오일은 주행을 하면서 혈액처럼 엔진 곳곳에 흐르게 되는데, 오랫동안 서 있었던 차량은 이 엔진 오일이 다 흘러내린 상태로 주행을 시작하면서 엔진이 손상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반대로 연평균 주행 거리가 너무 높은 차량은 렌트 차량이거나 장거리를 많이 뜬 차량일 가능성이 높다. 평균적인 1년 주행 거리가 16,000km라고 하니, 1년 10,000km 내외로 탄 차량 위주로 찾아보자.
둘째로 파워트레인 보증 기간 내 차량을 목표로 한다. 이력을 확인하기 어려운 중고차는 아무래도 고장이 있을 수도 있. 그걸 고쳐도 신차보다는 많이 저렴하니 경제적으로는 이득이지만, 큰돈이 드는 엔진이나 트랜스미션 같은 파워트레인이 크게 고장이 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소유주가 바뀌어도 이건 회사가 보증하는 것이니, 차 상태에 대해 확인할 정보가 부족하다면 꼭 파워트레인 보증기간 (현재 아반떼 5년 10만) 내에 있는 차량을 찾자.
셋째로 차량 번호가 없는 중고차는 피한다. 차량번호만 넣으면 중고차 시세 다 나온다는 어플 광고 많이들 봤을 것이다. 차량 번호만 있으면 보험 평가원을 통해 사고 이력, 고장 수리 내역을 검색할 수 있다. 이건 공개된 정보이기 때문에 딜러에게 꼭 뽑아서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가끔 차량 번호가 없는 상태로 터무니없는 가격에 나오는 급 매물들이 있는데, 그런 차는 피하는 것이 좋다.
넷째로 주요 소모품이 제대로 주기적으로 관리되었는지 확인 가능한 매물이 좋다. 요즘 엔진은 오일만 제때 갈아 주어도 성능을 제대로 발휘한다. 엔진 오일은 1년, 혹은 1만 km마다 갈아주는 게 좋지만, 만 오천 km도 기간만 길지 않다면 괜찮다. 타이어도 보통 4년 동안 6만 km 내외에서 갈아 주어야 하니까 마모 상태를 봐서 쓸만한 상황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섯 번째로 주행 테스트는 필수다. 의사가 육안으로 보고 청진기로 들어 보듯이, 차가 괜찮은 상태인지 보고 듣고 확인해야 한다. 간단한 차량 점검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시동을 켜고 아이들 상태에서 차량이 어떻게 구동하는지 확인해 보라. 아무런 부하가 걸려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엔진 RPM이 출렁인다면 흡기 계통이나 연료 분사 계통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반면 시동 후에 웜업이 될 때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상태가 괜찮은 차량이다.
- 웜업이 되고 나면 핸들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엑셀을 밟지 않고 D단을 놓아 그대로 굴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1단 기어비에 아이들 RPM에 맞춰서 차가 굴러 가게 두면서 조금 부하가 올라간 상태에서도 RPM은 잘 유지가 되는지 확인한다. 특히 바퀴와 핸들의 얼라인먼트가 잘 맞는지 확인해 두자. 많이 틀어져 있다면 사고가 났던 이력이 있거나 타이어가 편향되게 마모된 차량일 가능성이 높다.
- 그 상황에서 차량 공조 장치를 켜서 에어컨 부하를 줘 본다. 그리고 라이트와 비상등도 켜서 전기적 부하를 최대로 줘 본다. 잘 제어되는 엔진이라면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이고 특별한 소음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
- 속도를 최소한 시속 80km 정도까지 한 번 올려 봐야 한다. 엔진에서 바퀴로 동력을 전달하는 새시 계통은 고속에서의 진동이나 소음의 경향이 달라진다. 꼭 확인하자.
마지막으로 비슷한 조건에서 너무 싸게 나온 매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하는데, 비지떡이기만 하면 다행인 경우도 왕왕 있다. 중고차 시장은 살려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정보가 많은 ‘레몬 마켓’이어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3년 전에 파견 갔다가 돌아와서 아내의 세컨드 자동차를 중고로 사려고 한 적이 있다. 프리우스 모델이었는데, 다른 차량 시세보다 오백만 원 이상 저렴한 매물이 있었다. 그래서 한 중고차 매매 단지에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하루 전날에 본인이 그 근처로 올 일이 생겼으니 위치를 알려 주면 태워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뭔가 이상해서 거절하고, 내 차를 끌고 갔다. 그러자 만나기로 한 매매단지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며 우리를 태우고 옆 동네 매매 단지로 가서 차를 보여줬다. 그런데 사이트에서 본 그 차는 맞았지만, 상태가 너무 새것 같았다. 이 차를 정말 천오백에 파시겠다는 거냐고 물었더니, 대신 갚아야 할 대출이 천만 원 있다는 말을 꺼낸다. 허위 매물인 것이다.
거래 안 하겠다고 말하고 우리 차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차량을 보며 드리면 안 되냐며 시간을 끄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택시 타고 돌아와 버렸다. 편하다며 태워 주겠다는 말만 믿고 갔으면 어떤 일을 당했을지 아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괜한 욕심을 부리다가 헛된 시간만 날린다. 다행히 요즘은 정보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검색만 꼼꼼히 하면 이런 매물을 피할 수 있다. 곁에서 아는 지인이 쓰던 차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검증된 딜러로부터 찾아 가면 바로 볼 수 있는 매물을 직접 보고 사야 한다.
마치며
중고차도 누군가에겐 새 차였고, 지금 막 산 새 차도 내일이면 중고차가 된다. 요즘은 웬만한 매물은 KB·엔카 등 대형 플랫폼에 다 공유되어 있어 원하는 옵션에 딱 맞는 차를 찾기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차에 문외한이라 사기당할까 두렵고 고장 나면 어떨까 걱정할 수도 있지만, 조금 지나면 익숙해질 거다.
그러니 (제발) 첫 차는 중고차로 시작하시길. 새 차보다 분명 당신의 정신 건강에도 그리고 통장 잔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원문: 이정원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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