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직무도 다 거기서 거기인 걸까. ‘개발자’와 ‘콘텐츠 마케터’는 대척점에 직무 같았다. 단순한 이과/ 문과라는 이분법적 분류. 나아가 회사에서 그들의 행동양식을 관찰해도 나와 일반적인 개발자들의 행동은 굉장히 달랐다. 깜장 화면에서 영어 자판을 두드리고, 영어 전문용어를 쓰면서 컴퓨터 앞에서 2~3시간을 조용히! 보내는 걸 보면서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걸 넘어 다른 인간 종류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지근거리에서 살펴보면, 코딩을 짜는 개발자 삶이나 콘텐츠 마케터의 글을 쓰는 삶이나 똑같네 싶었다. 그 쌍둥이처럼 비슷한 발견 4가지를 소개한다.
1. 배포 후 버그가 발생 vs 발행 후 오탈자 발생은 필수
왜 ‘잘못’은 대중에게 공개가 된 후 보이는 것일까. 프로덕트에는 버그가 있다면 콘텐츠에는 오탈자가 있다. 고통과 번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버그나 오탈자는 왜 다른 사람이 먼저 발견하는 걸까. 개발자가 배포 후 구시렁거리는 하는 말도 똑같다.
코드를 3~4명이 봤는데, 왜 이제야 버그를 발견한 거야?
콘텐츠 마케터인 나도 글을 발행하기 전후 글을 읽고 또 읽어도, ‘여기 오탈자 있어요’라는 사내 메신저 또는 댓글이 달린다. 물론 여러 사람에게 검토도 요청했고 맞춤법 검사기도 돌렸는데 꼭 그렇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지 6년 차가 돼가는데 이젠 오탈자들끼리 나 몰래 자가 번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개발자 심정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2.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좋은 글, 코드는 리뷰가 필수
나도 코딩할걸.
개발자 연봉이 높은 구직시장에서 문과 출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나도 이 말을 회사에서 가끔 내뱉곤 하는데, 개발자들은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어요. 늦지 않았어요.
코딩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기초 지식 없이도 마음만 먹으면 된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도 철학과, 사학과 등 학과 출신 개발자가 있다.
반대로 나도 개발자들에게 ‘글 잘 써서 좋겠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듣고, ‘글은 어떻게 쓰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똑같이 응수한다.
지금 아무거나 쓰세요! 지금 바로 펜으로 노트에 끄적이고, 인스타그램에 한 줄 쓰는 것부터가 글 쓰는 건데요!
하지만 먹고 사니즘을 위해 글과 코딩을 한다면, 좋은 글을 쓰고 코드를 잘 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가를 꼭 받고 개선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쳐야 한다. 개발자 자리에 가면 두 명이 짝을 지어 쌍쌍바처럼 앉아 이야기를 하는 걸 매번 본다. 코드를 리뷰 중이다. 매니저가 한 줄 한 줄 코드를 뜯어보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을 짚어주고 수정을 거듭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기자를 준비할 때는 ‘공개처형’이라고 불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글 한 편을 쓰면 동기 5~10명이 돌려보면서 글 한 줄 한 줄 팩트 체크, 표현과 논리를 따져서 비판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도 경력이 6년 차지만 대표부터 매니저에게 점수로 글을 평가받고 어느 부분이 좋고, 개선돼야 하는지 평가받는다. 이 평가를 ‘정면 돌파’ 하고 받아들여야만 좋은 코드, 좋은 글을 평균적으로 잘 뽑아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3. 글과 코딩엔 지문이 묻어, 누가 썼는지 유추할 수 있다.
이거 배추도사가 쓴 글 같아.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자주 듣는 말이다. 평가받기 위해 이름을 가려 제출한 글, 대학교 때는 익명으로 쓴 대자보, 몰래 친구에게 쓴 쪽지,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 다 이름표를 떼서 보냈는데도 다 ‘이거 배추도사가 쓴 거죠?’라는 말이 나왔다.
글에는 지문이 있다. 아무리 담백하고 객관적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글을 서술하고 표현하는 방식, 문체, 관점 등 ‘필자’의 특색이 드러난다. 사실, 나도 임경선, 백영옥, 김얀, 이어령 등 좋아하는 글쟁이들의 이름을 가려도 누가 썼는지 알 수 있다.
코드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 개발자에게 꽤 들은 말이 있다.
대표님이 짠 코드는 찾아낼 수 있어요. 대표님코드의 특징이 명확하거든요.
코드 전반은 아니더라도, 제품의 이름 정하거나 무언가를 정의하고 논리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보니 그 사람의 특징이 나온다.
4. 좋은 코딩/글은 쉽다. 쉬운 게 최고다.
제일 좋은 글은 쉬운 글이다. 그 예로는 이어령 선생님의 글이 있다. 그는 어려운 걸 쉽게 썼다. 그러니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 모두가 읽고 그의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속 읽어 행동이나 생각을 바꾼다. 나는 초등학생 때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읽고 관점이나 사고방식을 따라 하고 여러 어른들과 그의 글을 소재로 대화할 수 있었다.
지금도 글을 썼을 때 아예 회사밖에 모르는 친구, 부님모에게 글을 읽히고 어떻냐고 물어본다.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피드백을 주면 다시 쓴다. 주제가 어떻게 됐든 쉬워야지 모두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상대의 관심을 끌거나 변화를 만든다.
코딩도 마찬가지다. 제품은 다 함께 만드는 것이고, 계속 업데이트를 하기 때문에 코드는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를 어떻게 했고, 어떻게 설명하고, 로직을 어떻게 짰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개발자들 코드 리뷰를 듣다 보면 정말 많이 듣는 말이 “이렇게 써두면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잖아요”다.
쉬운 글/코딩을 짜는 핵심은 ‘하나의 글/ 함수에는 하나의 주제만 담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도 참고 딱 하나의 주장을 논리 정연하고 깔끔하게 쓰면 웬만해선 쉬운 글이 된다. 아마 코딩도 그렇겠지?
마치며
코딩과 글의 다른 점도 정말 많지만, 그중 가장 다른 건 담당자의 연봉이지 않을까? 앞자리가 정말 여러 번 다르다. 게다가 제품은 개발하면 큰돈을 벌어다 주지만 글은 항상 어딜 가도 똥값 취급이다.
그래도 나는 알라딘 램프요정이 와서 ‘개발자로 직업을 바꾸게 해 줄게’라고 말해준다 하더라도, 말과 글을 쓰는 일을 선택할 거 같다. 한 줄 한 줄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사람을 결국 움직이게 만드는 건 글이기 때문이다. 제품을 누구든 이해하기 쉽게 활자화해, 그 글들이 모니터를 뚫고 나와 소비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짜릿함. 그냥 그게 더 재밌을 거 같다. 내 팔자야.
원문: 배추도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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