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직을 위한 구직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딱 1년 6개월이 걸렸다. 서른한 살 여자. 서른이 넘어도 진로를 모르겠고, 나란 인간은 더욱 모르겠다고 궁시렁거리던 나날이었다.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분명 직무 변경을 위한 직장인 4년 차의 이직 과정은 커리어 시장에서 강점, 약점, 개선해야 할 부분을 업계 전문가에게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피드백을 절로 얻었던 건 아니다. 수십 번의 서류 탈락 이메일, 면접에만 가면 떨어져 뭐가 문제일까 고민했고, 도무지 주변 연차 친구들에게 상담도 해보고 혼자 고민해도 이유를 모르겠기에 당사자들에게 대놓고 물었다. 서류가 떨어지면 링크드인에 HR 담당자를 찾아내 메시지를 보내 물었고, 면접 후반부 즈음 면접관에게 나에 대해 물었다. 이번 면접에서 무엇이 개선할 점인 거 같냐고, 서류와 지금까지의 면접에서 뭐가 맘에 들어서 뽑았냐고.
그래서 탈락 메일을 받으면 아쉽지만 나에 대해서 알고,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할지 알았기에 마냥 속상하지만은 않았다. 하나라도 알았다면 이를 개선하거나 더 잘 부각해 다음엔 더 잘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 이직 준비는 계단 오르기처럼 차곡차곡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욕심은 많아 구직 초반, 관심 있고 잘할 거 같은 직무에 이력서를 뿌렸다. 뭐 하나라도 걸리라는 마음으로 IT 서비스 기획자, 콘텐츠 매니저, ux 라이터 등 갈지자를 그렸다. 그러다 수많은 면접에서 ‘말을 잘하고 클라이언트 관리를 잘한다, 새로운 브랜드를 구축하고 새로운 고객을 발굴한다’는 강점을 면접관의 눈을 통해 알게 됐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맞춰보다가 ‘IT SaaS 세일즈’ 직군에 지원하게 됐다.
나의 초반 1년여간 구직 과정을 보면서 뭔가 줏대가 없고 도대체 뭘 원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정확하다. 근데 모르니깐 구직하는 거다. 구직 과정은 처음엔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하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고, 업계 시니어와 전문가들에게 나를 평가받으면서 원하는 걸 알게 한다. 그래서 올해 구직에만 오롯이 전념한 일이 가장 잘한 도전이다.
그 도전 과정에서 원하는 진로로 이끌고 합격률도 높이는 면접과 구직의 기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모든 구직의 첫 단계는 ‘커피 챗’
모든 채용의 첫 단계는 서류가 아닌 커피 챗(콜드 메일)이다. 해당 포지션의 인사담당자에게 ‘이 직무에 관심 있는데 나 대충 어떤 거 같아? 괜찮으면 서류 바로 넣을게’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단계다.
구직 첫 두 달간 일단 서류부터 내고 봤다. 하지만 계속 떨어졌다. 너무 답답해서 왜 떨어졌는지 알고나 싶어서 링크드인에 해당 회사의 인사담당자에게 1촌 신청을 하고 메시지로 왜 떨어졌는지 물어봤다. 아님 말고 심정으로 물어봤는데 탈락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줬다.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말에 ‘이런 거 제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에요, 궁금한 게 있으면 또 물어보세요’라는 말에 힌트를 얻었다.
또 몇 기업 채용 공고 직무에 필수 역량 중 몇 가지가 부족했다. 그래서 서류를 작성하기 전 채용담당자에게 또 링크드인, 이메일, 화상 미팅을 잡아 물어봤다. 나의 경력을 읊으면서 지원하면 통과 가능성이 있는지 대놓고 물었다. 그분들은 대충 경력 몇 개만 읊어줘도 금방 합불을 판가름했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 시간을 아껴줬다. 경력이 모자라거나, 핵심 역량 중 부족한 게 있으면 일단 넣고 본 다음 당첨을 바랄 게 아니라, 인사담당자에게 ‘내가 이러이러한 요소가 부족하지만 이러한 경력이 있다. 혹시 나 같은 사람은 가능성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커피 챗에서 좋은 답변을 얻지 못하더라도 나의 강점을 정확하게 1분 내로 소개해 담당자에 머리에 새겨놔야 한다. 나와 딱 맞는 오픈 포지션이 생겼을 때 나에게 먼저 연락을 준다. 그리고 난 그 커피 챗에 나눈 대화로 지금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커피 챗은 잘 활용하면 우선 후보자로 만들어 준다.
2. 면접 후 무조건 회고
오답노트는 구직자에게도 필수다. 직군마다 빈출 질문은 똑같다. 예를 들어 IT SaaS Sale Manager 직군은 ‘직접 제품을 세일즈하기’ ‘롤플레잉’ ‘세일 고객사를 만나기 전 자료조사 및 서칭 방법’ ‘커뮤니케이션 역량 중 가장 중요한 것’ 이건 모든 실무자가 묻는다. 문제를 알고 가면 답은 매번 회사에 맞게 바꿔 가면 된다.
면접이 끝나자마자 오늘 나왔던 질문들과 내 답변을 쓴다(회고하면서 면접 당락을 굳이 회사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이 질문을 또 하면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하는지 모범답안을 만들어 냈다. 면접관이 원하는 답을 도무지 모르겠어서 면접관에게 직접 물었다. ‘오늘 그 질문에서 면접관님은 어떻게 답하실 거 같아요?’라고. 그 답안을 들으면 면접에서 왜 떨어졌는지 확실하게 알게 된다. 떨어져도 괜찮다. 다음 회사에선 그 질문 때문에 떨어지진 않을 테니깐.
따로 면접을 준비할 시간이 없으면 면접 전, 회고록에 나온 질문들과 모범답안만 훑고 갔다. 에디터, 편집자, 마케터, 브랜드 매니저, IT 기획자 다양한 직군의 면접을 너덧 번 보면서 확실하게 안 건, 어차피 면접관이 하는 질문은 똑같다는 사실이다.
3. 면접관과 HR에게 ‘나’에 대해 묻기
면접의 마지막은 클리셰 같은 ‘회사에 대한 어떤 질문이든 다 하라’ 시간이다. 별책부록처럼 딸린 시간 같지만 면접의 이 시간이 채용과정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주도권이 나에게 처음 주어지고 내 질문에 면접관이 답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모든 면접관이 성심성의껏 답해줬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시간은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한 질문거리를 챙겨갔다. 꼭 하는 질문은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서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는가’ ‘면접에서 내가 개선해야 할 점이 있는가’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간이 핵심인 이유는 시니어들은 내가 전혀 몰랐던 강점을 발견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스타트업이나 외국계 회사가 한국에서 막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투입되곤 했는데, 여러 실무자가 이를 ‘0에서 1로 만들어낸 경험’이라고 짚어 줬다. 주변 여러 친구들에게 이력서를 보여주면서 피드백을 받았었는데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던 강점이었다.
또 면접에서 태도와 서류들을 보면서 ‘말을 논리적으로 하고 좋은 질문을 잘한다’ ‘글만 쓰는 일을 하면 답답해할 성향 같은데?’ ‘낯선 사람 앞에서도 할 말은 다 하시네요’ ‘정말 솔직하시네요’라는 평가를 통해 나의 특성을 알게 됐다. 그 평가를 토대로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직무를 더 찾아보고 새로운 커리어도 상상해보면서 IT SaaS세일즈라는 직군에 본격적으로 지원하게 됐다.
면접관에게 답변의 부족한 점을 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일즈 직군의 롤플레잉이 어려웠다. 그래서 ‘앞서 롤플레잉 상황에서 면접관님은 어떤 식으로 하세요?’ ‘전 지금 이 직군을 공부 중이고, 답변해주시면 앞으로 저에게 큰 도움 될 거예요’라고 되물었다. 앞서 말한 면접 오답노트에 ‘모범답안’을 적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면접관이 원하는 답을 듣게 되면서 내가 왜 떨어졌는지 알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왜 떨어졌는지 아는 건 정말 중요하다. 혼자 자격지심에 빠져서 자신감을 깎는 시간도 아껴줄뿐더러, 다음 면접에서 잘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주변 현직자에게 물어보기
업계 정보는 그 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쉬이 얻어지는데 외부자들은 별거 아닌 정보도 참 얻기 어렵다. 그래서 꼭 주변 현직자에게 나를 어필해야 한다. 내가 어느 직무에 관심이 있고, 어느 정도의 연봉,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며, 강점이 무엇인지 떠벌리고 다녀야 한다.
처음에는 현직자에게 PR 하는 게 당사자들에게 부담으로 느껴질 거 같기도 하고 오버인 거 같아서 혼자 열심히 서류를 쓰고 회사를 찾았다. 그래서 구직 초반에 망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헬스장에서 만난 IT 담당자 회원분에게 IT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고 싶다고 어필했고, 관련 공짜 교육과정 서베이 등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더불어 업계 알짜 기업 채용정보도 자주 전달받았다.
만약 주변에 현직자가 없으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링크드인에 어느 직군을 구직중인지 주기적으로 글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에게 선심을 베푼다. 나 또한 대표가 댓글을 달거나 업계 사람이 좋은 정보를 줬다. 이러한 과정이 합격으로 이끄는 결정적 도움은 아닐지어도, 혼자 버텨내야 하는 구직 과정에서 누군가가 응원하는 마음을 받은 거 같아 큰 힘이 된다.
5. HR팀의 마지막 탈락 이메일에 답장하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 인상을 좋게 남기는 것도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직무를 다양하게 썼기 때문에 같은 회사에 재지원한 적이 4번이나 된다. 다음을 위한 초석이었다.
탈락 메일을 받으면 이번 면접에서 어떤 것을 배웠는지, 그리고 회사의 고맙고 인상 깊었던 점을 써 답장했다. 평생직장은 없고, 또 이 회사랑 일적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 메일을 쓰면서 단순히 탈락을 너머, 면접을 통해 배운 것 하나라도 회고하면서 성찰하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성장을 도모하는 의식행위이기도 했다.
마치며
7개월간 백수로 지내면서 성장이 멈췄다고 생각했다. 돈도 안 벌고 매일 도서관에서 같은 이력서를 고치는 게 답답하고 외로웠다. 하지만 구직기간은 단시간에 그동안 회사에서의 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수많은 업계 시니어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정말 소중했다.
모든 회사에 이력서를 정말 열심히 냈고 자기소개서가 있다면 2–3일 걸려서 열심히 썼다. 그에 화답하듯 면접관은 이력서, 포트폴리오를 꼼꼼히 읽고 좋은 질문을 해주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줬다. 정말 감사하다. 분명 그 피드백 과정 때문에 구직 과정이 정상을 향한 계단 오르기처럼 느껴졌다.
채용과정에서 질문 우선권은 회사에게 있지만, 면접자도 짧은 시간이나마 주도권이 있다. 그리고 잘 활용하면 성장하는데 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업계 배테랑 2–5명과 1시간 동안 내 경력만 가지고 공짜로 토론할 기회는 ‘구직’이 아니면 잘 생기지 않으니깐. 이 시간은 정말 잘 쓰면 나와 맞는 좋은 직장을 찾는 열쇠가 된다.
원문: 배추도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