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작가들은 글을 쓰기 위해 청탁을 기다렸다. 사실상 작가가 자신의 글을 공개할 수 있는 곳 자체가 신문이나 잡지 지면 밖에 없었기 때문에, 때론 목숨 걸고 청탁을 ‘받아야만’ 했다. 청탁을 받지 못하면 거의 작가로서의 인생은 끝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그야말로 완벽하게 달라졌다. 청탁만 기다리며 그에 목매고 있는 작가야말로 사실상 소수가 되었다.
나만 하더라도, 10년도 더 전부터 블로그에 매일같이 글을 썼다. 그런 글쓰기는 습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공표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실상 매일 ‘공표’하는 글쓰기를 했던 셈이다. 내가 페이스북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페이스북이 나에게는 일종의 발표 지면이나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다지 글을 실을 지면이 많지도 않았고, 그럼에도 글은 쓰고 싶었고, 그래서 매일 글 쓰는 나의 공간을 만들어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시대는 청탁을 기다려 지면에 목을 매는 시대라기보다는 사실상 지면을 창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작가라는 것의 정의도 그런 점에서 미묘하지만 확실하게 달라진 면이 있다고 본다. 우리 시대 작가란 지면에 글을 싣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지면을 만드는 사람이다.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쓰면서 매일 자신의 지면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 시대에는 ‘기다림’의 차원도 과거와 달라졌다. 원래 기다림이란 권력을 기다리는 걸 의미했다. 매체 권력이 나를 간택해주기를 기다렸고, 그래서 먼저 권력에 굴종하기도 했다. 반대로 지금의 기다림은 실제로 내 글이 닿을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을 기다리는 일이 되었다. 이 시대의 글쓰기는 매체가 가진 권력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명 한 명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찾아 나서는 일에 가깝다. 글쓰기는 확실히 사적인 만남이나 관계에 가까워졌다.
물론 여전히 지면 권력이라는 건 존재한다. 그런데 그럴 때 중요한 건 보통 실제로 그 지면을 읽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의미보다는, 그런 지면에 글을 실었다는 상징성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어떤 지면에 글을 실은 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건 기존 권력이 인정하는 어떤 존재가 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측면이 크다.
그러나 나는 우리 시대 진짜 글쓰기란, 오히려 그런 상징적 권력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킨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실제로 작가가 만든 무대와 마당으로 독자를 초대하는, 그가 창조한 공간에 있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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