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이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공시했다. 매출이 재작년 1조원에서 무려 2배 뛰었다. 음식 배달이 폭증한 덕이다. 배민의 주 수입원은 음식 주문에서 나온 수수료. 지금은 6.8%를 받는다. 그런데 영업손실은 100억원 대에서 700억원 이상으로 늘었다. 배민은 음식 주문 시장을 절반 이상 점유한 플레이어인데도 영업이익은 내지 못했다. 요며칠 ‘음식 하나 시키니 절반은 배민 수수료로 나갔다'(사실 아님)는 얘기를 듣는 걸 생각하면 의아한 부분.
플랫폼은 독점을 달성한 후 수익을 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려고 독점하는 거니까. 물론 서너배 올리면서 폭리를 취하지는 못한다. 플랫폼은 가늘고 길게 ‘착한 독점’을 해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 그럼 배민은 왜 시장을 지배하고도 수익을 내지 못할까?
배민이 사실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이츠나 요기요 때문만은 아니다. 그래도 배민은 압도적 1위다. 중요한 건 ‘시장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냐는 것. 배민은 음식점과 소비자의 접점은 잡고 있다. 하지만 음식 주문의 범위를 ‘음식+배달’로 이뤄진 상품으로 보면 다르다.
보통 플랫폼은 소비자-생산자 양쪽을 통제하는 양면시장을 운영한다. 하지만 배민이 뛰는 음식 주문 시장은 소비자-라이더-라이더플랫폼-음식점이 뛰는 복합적인 시장이다. 사이에 라이더만 있어도 독점해야 할 범위가 넓은데, 이 사이에 또 라이더 플랫폼이란 플레이어가 있다.
배민은 라이더 플랫폼인 매쉬코리아와 제휴를 맺고 있다. 다른 플랫폼이나 라이더도 활용할 수 있지만, 가치사슬에서 매우 중요한 라이더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한 백화점 업체가 시장을 100% 점유해도, 그 사이에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같이 핵심 재화를 공급하는 플레이어가 따로 있으면 독점해도 독점이 아닌 셈.
이게 숫자로 나타난다.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배민의 외주용역비가 7863억원으로 재작년보다 4569억원 늘었다. 모두 라이더에 가는 돈이다. 전체 매출의 39%가 이렇게 나갔다. 7.3%p 늘어난 수치다. 배민은 음식점은 독과점하지만, 배달의 지배자는 아니다.
우버나 카카오T처럼 차량호출 서비스는 독점 사례가 많다. 배달시장은 그렇지 못한 게 이런 특성 때문이다. 음식점과 라이더를 모두 독점해야 한다. 미국 배달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그립허브는 2~3년 만에 도어대시한테 밀렸다. 라이더 확보 경쟁서 졌기 때문이다. 라이더는 수요보다 공급이 매우 적다. 메이커가 많아야 플랫폼이 성립하는 법이다. 음식점이라도 독점해야 숨을 돌릴 텐데 공정위가 막았다. 여기에 자영업자라는 영세 계층을 상대하는 사업 특성상 여론 압박도 세다.
배달료는 배민에게도 비용인데, 욕은 배민이 먹는다. 배달료가 비싸지면 배민은 수수료를 높여야 수지가 맞다. 돈은 라이더(와 플랫폼)가 더 벌고 욕은 배민이 먹는 상황. 독점 기업인데요, 독점을 못 해요.
원문: 남궁민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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