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당 중 브랜딩적 관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개의 정당이 있습니다. 바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입니다. 둘 다 정치에 있어 브랜드의 이미지가 대중들의 선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사례였습니다.
‘이미지 정치’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으로 쓰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더군요. 자신들의 정치를 ‘이미지’로써 드러내는 일은 대중들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정당이 가진 관점과 가치를 브랜드 이미지에 담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이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일까요. 365일 백분토론을 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을 몇 마디의 메시지와 이미지에 담아낸다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참 편할 것입니다. 안 그러면 어려운 정치적 상황들을 살피고 공부하느라 정말 수험생처럼 밤샘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색깔, 이미지, 감각, 감성 같은 말들은 정치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브랜드화, 이미지화한다고 했을 땐 이 단어들이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이걸 잘 이해하고 실행한 두 정당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새누리당의 영리한 ‘붉은색’ 활용법
먼저 새누리당입니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면서 파란색을 버리고 빨강을 선택했을 때, 저는 그야말로 이미지 정치의 ‘혁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의 변화가 아니면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해서이기도 했지만, 혁신을 넘어 혁명적인 자각과 쇄신을 하겠다는 의지가 눈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의지들이 당명이나 로고, 디자인 등으로 가시화된 이미지에 적절하게 반영되어 설득력이 더 커졌죠. 그 정도로 새롭게 접근하고 세련되게 시각 언어를 사용했던 정치집단은 그 이전에 볼 수 없었습니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소프트한 당명 ‘새누리’도 좋았지만, 저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온 건 바로 색깔이었습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붉은색을 쓰는 일은 참으로 민감한 일입니다. 레드 콤플렉스를 지닌 우리에게 이념은 아직도 국민 각자의 정치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요.
붉은색의 강렬한 이미지는 위험하고 불온한 메시지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등의 진보 계열에서는 절대로 쓰지 못하는 색이기도 합니다. 반면 보수당의 입장에서는 그럴 걱정이 없습니다. 이념의 누명을 쓸 일도 없을 테니, 기존의 파랑과 반대되는 색깔인 빨강을 선택할 수 있었겠죠. 색깔 선택만으로도 정당 브랜드 리뉴얼 수준이 아니라, 레볼루션 급의 변화였습니다.
붉은색은 기본적으로 태양을 상징하여 열정적이고 힘 있는 이미지를 줍니다. 새롭게 변화하고자 하는 열정적이고 과감한 정치 혁신의 이미지를 정말 잘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이 붉은색을 쓰는 방법도 참 영리했습니다. 빨강을 전면에 내세워서 지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흰색의 여백을 주고 붉은색을 포인트로 활용했습니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흰색 비율이 많아지니 훨씬 세련되고 산뜻한 느낌을 줍니다. 다소 냉정하고 이성적이면서 도시적인 이미지도 더합니다. 중국이나 북한의 당을 떠올릴 일이 없었습니다.
로고의 모양도 곡선으로 표현해 빨강의 강렬한 이미지를 상쇄했습니다. 그에 비해 자유한국당의 횃불 마크는 안 그래도 뜨겁고 열정적인 색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국민의힘의 마크는 다시 냉정하고 이성적인 면이 강조되었습니다. 더 동적이거나 복잡한 형태였다면, 원래 빨강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한없이 분출됐을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정당이 되고 말았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은 정말 브랜드를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하던 정당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글라디언트’ 효과
다음으로 인상적인 브랜딩을 보여준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입니다. ‘더불어’라는 일상어가 ‘민주’라는 무겁고 심각한 키워드 앞에 붙으니 훨씬 친근해졌습니다. 운동권 출신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다소 과격한 이미지를 좀 더 순하고 부드럽게 만들거든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우리 가까이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것이죠.
변천사를 보시면 변화가 눈에 더 잘 들어옵니다. 색깔의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느낌도 확 바뀌었습니다. 사실 민주당은 오랫동안 노랑과 녹색 계열을 써 왔습니다. 그런데 노랑과 녹색은 약점이 많은 색입니다. 노랑은 정치적으로 미숙한 느낌을 줍니다. 녹색은 수수하고 순수한 자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적인 이미지를 주는 건 장점이지만, 다소 촌스럽고 오래된 느낌을 주기도 하죠. 둘 다 호불호가 갈리는 애매한 색인 겁니다.
반면 ‘파랑’은 성격이 훨씬 명확하죠. 빨강의 보수 정당과 확실한 대비를 통해 확연하게 달라 보이는 효과를 줍니다.
그런데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수수하던 캐주얼 차림의 여인이 갑자기 정장 차림의 커리어 우먼이 되어 나타난 느낌이랄까요. 기존의 색깔과는 너무나 달라서 당황스러웠죠. 빨강을 짧은 시간에 흡수한 새누리당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아마도 파랑이라는 색깔을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상대 당의 선택으로 할 수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은 단일의 파랑이 아니라, 파랑과 노랑과 녹색이 ‘더불어 모인’ 정당 색이었습니다. 기존 민주당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썼던 색상을 다 사용한 거죠. 컬러 코드를 통해 ‘더불다’, ‘함께’라는 이미지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정당의 역사성까지 담아낸 것입니다.
색깔 표현에 쓰인 ‘글라디언트’라고 하는 색상 표현 기법은 스미듯 자연스러운 변화를 표현합니다. 갑자기 급진적인 변화를 보여주기보다는, 서서히 스며드는 느낌의 변화를 보여주죠. 더불어 평등의 가치를 생각하는 정당의 가치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전의 민주당이 가졌던 다소 촌스러운 이미지에서, 도시적이고 스마트한 이미지를 얻어낸 것도 이 컬러 코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치적 비전과 메시지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장치가 된 것이죠.
마무리하며
올해 대선에서도 두 정당은 모두 ‘브랜드’로 보였습니다. 팽팽한 접전이었던 만큼, 브랜딩적 관점에서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습니다. 브랜드 이미지도, 메시지 격돌도 무척 치열한 싸움을 보였죠.
저는 정치도 하나의 쇼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가장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쇼죠. 이 쇼를 매력 있게 잘 만들어내는 정당이 승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이고, 그다음은 메시지입니다. 둘 다 브랜딩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정치 색깔과 생각을 언어적, 비언어적 요소로 적절하고 조화롭게 연출해 하나의 ‘쇼’로 만들어내는 정당이 승리하는 거죠.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 새롭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위에 놓인, 정당의 색깔과 디자인이 놓인 연대표를 보세요. 조선왕조 500년도 아니고 불과 60년 만의 일입니다. 정말 얼마나 발전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정치 색깔들이 나타나고, 융합하고, 해체하고, 반복해 갔으면 좋겠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내는 실험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연출된 쇼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우리의 삶도 우리나라도 좋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매거진 브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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