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사막 가운데 물방울 하나 떨어진 듯한 ‘블루보틀’의 블루
이름에 이미 블루도 들어 있는데, 정작 ‘블루보틀’ 매장에서는 좀처럼 블루를 찾기 어렵습니다. 매장의 넓은 한쪽 벽면에 조그맣게 붙어있거나 매장 입구의 스탠딩 사인에 아주 작은 비율로 적용되어 있을 때가 많죠. 이렇게 제한적인 블루의 사용은 오히려 블루라는 색상이 가진 매력과 심벌의 개성을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제가 방문했던 세 곳의 블루보틀 매장 전체 면적을 100이라고 쳤을 때, 실제로 블루 컬러가 차지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사용된 면적에 비해 주목도는 오히려 훨씬 올라갔습니다. 그 이유는 블루 주변을 감싸고 있는 주변의 환경이 블루와 싸우지 않고 블루를 더욱 돋보일 수 있는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블루 색상 자체가 예뻐서라기보다는, 주변 환경의 색상과 표현이 밋밋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블루 색상이 더 화사하고 멋져 보이는 거죠.
매장 인테리어 마감재 대부분은 화이트와 밝은 브라운 계열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살짝 형광빛이 감도는 블루보틀의 심벌은 단연 눈에 띄게 됩니다. 못생긴 표정을 지어 사진의 주인공이 더 예쁘고 잘나 보이게 하는 ‘사진 밀어주기 ‘효과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블루를 조금 적극적으로 쓰는 곳도 있습니다. 의류나 유니폼 등의 섬유 소재들입니다. 많이 톤 다운된 저채도의 그레이 빛 블루가 쓰여 블루 안에서도 여러 색상 팔레트가 느껴지게 합니다. 색상은 같지만 채도와 명도를 달리해 지루함을 덜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블루보틀의 색상 전략이 제대로 먹히는 건, 뭔가 휑하고 비어 있는 매장의 공간 디자인의 컨셉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대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파란 선인장 같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소금 사막 가운데 한 방울 떨어진 블루빛 물방울 같기도 하죠. 이렇게 블루보틀의 색상 활용법은 반갑고 귀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비움의 미학이 주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화룡정점같은 블루 포인트. 그래서 블루보틀의 매장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만약 공간을 구석구석을 쪼개고 꽉 채워냈다면 이런 감각을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이디야의 블루’
같은 커피 전문점이지만 이디야의 색상 전략은 완전히 다릅니다. 동네 곳곳에 번화가를 약간 벗어난 곳 어디에나 있는 이디야 매장은 온통 블루로 뒤덮인 외관일 때가 많습니다. 멀리서도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띕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매장 수를 가지고 있는 커피 전문점인 것도 맞지만, 고유한 블루의 색감의 차별성으로 인해 매장 수가 더 많아 보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블루보틀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색상 전략이지만, 이디야라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합리성과 대중성에는 딱 맞는 활용입니다.
고급화를 시도하는 ‘삼성 디지털프라자의 블루’
업역이 달라 멀리 간 느낌도 있지만 최근 삼성 디지털 프라자의 블루 사용법도 흥미롭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삼성 디지털프라자의 외관은 온통 파란색이었습니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는 곳이었죠. 이는 경쟁사인 LG나 롯데 하이마트와의 외관 이미지와 확연한 차이를 줬습니다.
그런데 삼성 디지털프라자는 외관에서 점점 블루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블루가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고급화 전략입니다. 삼성의 진한 청색계열 블루는 ‘비스포크’ 같은 맞춤형 고급 브랜드가 가진 다양한 색상들과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삼성 디지털프라자가 갖추고 있는 많은 가전제품 개별 브랜드와 새로운 고급 브랜드 라인들을 모두 보듬어 내기에도 제한 사항이 많은 색상이죠. 진하고 푸른 청색은 단일 제품 브랜드나 기업 브랜드로써는 강력할지 모르지만, 온오프라인 플랫폼 브랜드로써는 한계점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삼성 디지털프라자는 블루 보틀 같은 제한적인 사용마저 극단적으로 줄여버렸습니다. 브랜드의 통합성과 포괄성을 높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한 선택이죠. 그래서 블루라는 색상에 쏠렸던 시선을 삼성전자의 가전제품과 스마트폰으로 이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강한 색상의 방해 없이, 조금 더 편안하게 제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든 것입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블루보틀, 이디야, 삼성프라자의 블루 사용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같은 색상이어도 브랜드에 따라 쓰는 방식과 활용 방법이 모두 달랐습니다. 색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정체성이 재정의될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의 가치와 메시지가 달라지고, 운명까지 결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가 가진 색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색을 어떻게 활용하고 전달하는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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