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의 로고를 처음 보고 상당히 낯선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존 가전 브랜드의 로고가 사용해왔던 표현 문법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SAMSUNG, LG, PHILIPS, SONY, SHARP 등의 전통적인 가전 브랜드들은 보통 단단하고 묵직해 보이는 대문자 로고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다이슨의 로고는 소문자의 동글동글한 형태라서 직선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y’자는 글자의 기준선인 베이스라인 아래 걸쳐 있기 때문에 ‘y’를 중심으로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할 것만 같은 불안한 동세가 느껴지죠. 툭 하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생겼습니다.
이렇게 뭔가 불안하고 안정감이 떨어지는 로고 형태로 과연 최고의 성능과 품질을 갖춘 제품을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더군요. 제 눈에는 이 이상한 로고가 약간 못생겨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매력이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같은 산업 카테고리인 가전 브랜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형식이니까요. 그렇게 다르게 인식된 인상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니 dyson 로고 글자가 만들어내는 곡선의 유려한 선들은 마치 다이슨의 제품의 실루엣을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소문자 ‘y’ 중 베이스라인을 벗어난 꼬리 부분은 미소 띈 입꼬리 같기도 하고요. 왠지 기분 좋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인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로고는 처음 그대로인데, 제품을 사용하다 보니 제 마음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요.
다이슨 로고는 마치 ‘나는 네가 생활하는데 편리함을 더해줄 친구 같은 존재야’라고 친근하게 말을 건네지만, 굳이 성능이나 자신의 힘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아끼는 듯 보였습니다. ‘나를 한번 사용해보면 알 거야’ 하는 태도로요.
이런 제 느낌의 변화의 결정적인 요인은 전부는 아니지만 소문자형의 로고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본격적으로 소문자형의 dyson 로고를 하나하나 분석해 보면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다이슨 로고는 소문자 로고의 특성상 외곽 테두리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대문자였다면 거의 박스 형태에 담길 테지만, ‘d’와 ‘y’가 있는 로고는 박스의 틀을 한참이나 벗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형태적 특성이 가독성을 더욱더 좋게 하고 이미지 기억을 회상하는 데 있어 더 유리한 점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글자의 연결성입니다. 스크립체나 핸드드로잉체만큼은 아니지만, 소문자가 그려지는 흐름은 끊김이 많이 없습니다. 직선으로 분절되면서 결합하는 대문자보다는 시선의 흐름이 부드럽고 자연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베이스라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세’에 특징이 있습니다. 베이스라인을 뚫고 내려간 ‘y’ 때문에 지면에 안정감 있게 서 있는 게 아니라, 아슬아슬한 균형감으로 서 있는 듯 보입니다. 조금이라도 힘을 가하면 오뚜기처럼 좌우로 왔다 갔다 할 것만 같습니다.
소문자, 대문자라는 표기 사항의 차이지만 그 차이는 이렇게 로고 이미지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브랜드의 인상도 달라집니다.
그럼 반대로 ‘SONY’나 ‘PHILIPS’와 같은 대문자형 로고를 소문자형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어떤 인상의 변화가 생겨날까요? SONY의 경우 대문자 ‘N’에서 소문자 ‘n’으로 변하니 선이 하나 사라지고 훨씬 단순해졌습니다. 또한 다이슨처럼 ‘y’로 인해 전체 로고에 동세와 움직임이 생겼습니다.
대문자형 로고 ‘PHILIPS’가 소문자 ‘philips’는 어떨까요? 조형적으로 좋고 나쁘고를 떠나 확실히 잘 읽힙니다. 그런데 조형미는 너무 뒤떨어져 보이네요. 특히 중간의 ‘ili’부분은 복잡하고 산만합니다. 이 로고를 제품에 붙였다가는 제품 자체의 품질마저 의심받게 될 듯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전자 브랜드들의 로고를 대소문자별로 분류해서 분석해보고 변환해 보는 것도 재밌는 도전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대문자형 로고’가 훨씬 다양하고 개수도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소문자형 로고’를 사용하는 가전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전통적인 대부분의 가전 브랜드 로고들이 대문자형을 고집했던 이유는 뭘까요? 아무래도 가전제품이라는 게 주거나 차량을 빼고는 가장 고가의 제품이니만큼 그에 버금가는 신뢰감과 무게감을 주기 위해서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묵직하고 무게감 있게 제품에 붙어 있는 로고를 볼 때 안심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100년이 넘는 명품 가전인 밀레는 창업 당시에도 ‘Miele’라고 소문자 표기를 했는데요. 이런 소문자의 가벼움은 글자의 두께감을 올려 보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브랜드 로고 표현 시 소문자이지 대문자인지에 따라서도 로고 인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러니 굉장히 신중해야겠죠. 고객에게 전달할 브랜드 인상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깊이 고심하고 의사 결정이 이뤄져야겠습니다.
다이슨의 로고가 소문자가 아니라 대문자였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지금과 같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이슨이 이렇게 인상적이고 성공적인 브랜드가 되는데는 ‘DYSON’이 아니라, ‘dyson’으로 하자는 세심하면서도 과감한 의사 결정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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