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회사를 시작했을 때, 하루라도 빨리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 채널을 만들어 대외적으로 홍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아직 자체적으로 진행한 변변한 포트폴리오도 없고 내세울 만한 대단한 경력도 없었는데 말이죠.
내 정보를 무작정 인터넷상에 던져 놓으면 누군가는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직 실적도 채워지지 않은 신생 회사에 일을 맡기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어마어마한 경력과 이력을 가진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인기 있는 셀럽들이야 유튜브나 인스타에 계정만 열어도 하루에 수만 명의 팔로워가 확보되기도 하지만,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SNS에 나를 올려둔다고 해서 그렇게 될 리 만무하잖아요.
저만 해도 어떤 회사에 일을 맡길 때는 그 회사가 전에 해왔던 일들이나 실적들을 보게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검증 방법이죠. 쇼핑몰에서 상품을 하나 사더라도, 이게 어떻게 어디서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하고요. 이걸 만든 회사는 얼마나 오래 만들어왔는지 댓글들의 반응은 어떤지 꼼꼼하게 살피고 평가를 하죠.
하물며 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사안을 믿고 맡길만한 회사를 결정하면서, 아직 실적이 미미한 신생 회사를 고른다는 건 굉장한 모험이죠.
물론 그렇다고 그런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경험상 열 번 중 한 번꼴로 그런 의뢰인들이 ‘짠’ 하고 나타나기도 하더라고요. 주기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지만요. 결국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제가 한 번이라도 봤던 사람이거나, 봤던 분들이 소개해주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전 회사의 동료거나 함께 일했던 사람들, 원래 알고 지냈던 지인들의 소개를 받으면 그분들이 곧 나의 레퍼런스가 됩니다. 어쩌면 나라는 상품을 미리 경험해 본 사람들이니 소개 받은 입장에서도 안심이 되겠죠. 물론 저의 부담감은 더 막중해지더군요. 저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 어렵게 마련한 소개팅 자리에 나간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연결된 일들이 또 다른 일로 연결되고, 연결되어 알게 된 분들이 다시 소개해주시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회사의 클라이언트 관계도가 그렇게 ‘알던 사람’의 망으로 얽히고설켜 형성됐습니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전혀 예상 못 했던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건 저뿐만은 아니더군요. 인테리어 회사를 혼자서 운영하는 후배에게도 알던 사람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후배에게 직장을 다닐 때 잠깐 함께 일했던 분이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됐고, 자주 뵌 분이 아니라서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나질 않아 많이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후배를 찾아온 이유는 함께 일할 때 너무나 꼼꼼히 챙겨줘서라고 했다고 하네요.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챙기는 후배를 보며 그 의뢰인은 후배가 그 회사의 대표이사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일이 인상에 강하게 남았는지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서 생긴 인테리어 프로젝트가 나오자 맨 처음 후배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후배는 2년 가까이 되도록 홈페이지도 그 흔한 SNS 채널도 없이 대부분 이전에 알던 사람을 통해 일해오고 있습니다.
또 함께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 디자인 회사 대표님은 벌써 십 년 넘게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업계의 선배입니다. 그분 역시 일의 80% 이상이 아는 사람을 통해, 즉 입소문을 통해 일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식품과 농산물 분야의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업계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그 분야 디자인의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당연히 그쪽 분야의 일들을 시작하기 위해서 꼭 리스트에 올려두는 디자이너가 됐죠.
저 또한 그 디자이너의 작품을 알아서 홍보해주는 열렬한 팬을 통해 알게 되어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경우도 영업을 하거나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하고 계시진 않더군요. 즐겁게 일하고, 내 일처럼 하다 보니 고객들이 알아서 소문을 내주었고, 결국 지금과 같은 안정된 클라이언트 풀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앞서 말씀드린 두 분의 1인 기업들도 저와 일이 들어오는 방식이 비슷했습니다. 홈페이지의 힘이 아닌, 아는 사람의 힘으로 1인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열 명 중 여덟 명은 아는 사람이거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입니다. 어쩌다 인터넷을 통해 성사된 일도 실은 SNS를 통해 꽤 오랜 시간 알고 있었던 분들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생각하니 혼자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그럴듯해 보이는 홈페이지를 당장 만들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알고 지냈던 분들이나 지금까지 나와 관계를 맺어 왔던 분 중에 인연은 없는지 찾아보는 방법도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되는 부분도 있지만, 서로 코드가 잘 맞는다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매칭 방법이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독립하기 전이라면 항상 사람과 일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하고 최선으로 다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이 또 어떤 인연으로 다가올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고 나중을 생각해 눈치를 보자는 말은 아니고요. 인연의 가능성을 이왕이면 열어 놓자는 겁니다. 매번 새롭게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 가기에는 인생의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살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좋은 답은 저 멀리 우주에 있지 않습니다. 인터넷 공간에만 있지도 않습니다. 내 주변에,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원문: 우현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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