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취업 시 네트워크, 즉 인맥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나도 그 조언을 참 많이 보고 들었다. 특히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하려는 사람, 해외 취업을 목표로 둔 사람이라면 네트워킹을 잘해 좋은 인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이다.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집주인이신 한국분은 지인 추천제를 통해 2개의 IT 대기업과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싱가포르에 갓 도착한 나 또한 지인 추천을 통해 내가 선망하던 거대한 다국적 기업의 파트장과 1:1 캐주얼 면접을 목전에 두었다. 말로만 들었던 ‘내부 추천’에 따른 서류전형 면제→면접 전형으로 바로 길을 걷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더 긴장이 되었다. 내 친구의 이름에 먹칠하고 싶지 않기에. ‘어디서 그런 애를 추천했어? 아는 게 너무 없고 태도도 제대로 안 되어 있던데.’라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아야 하기에. 난 며칠간 약속도 취소하고 칩거 중이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날 추천한 사람 망신살은 뻗치지 않게 해야지. 암.
그런데 보면, 정말 잘 보면. ‘글로 배워’ 잘 모르는 상태에서 수준 이하의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 ‘글로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본성은 아니겠지. 그가 한 실수를 되짚어보자.
- 그도 안다. 많이 들었다. 네트워킹이, 인맥을 쌓는 것이, 좋은 사람을 알아두는 것이 추후 커리어 관리 및 새로운 나라에서 뿌리내리고 살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 온갖 곳에 나간다. 미트업(MeetUp), 언어교환,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카페에서 말 걸기, 지하철에서 친해지기, 세미나 참석하기, 교회 등 온갖 종교적인 곳 참석하기, 파티 참여하기 등등.
-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구직 중이라고 PR하고 다닌다. 어떤 직무를 구하느냐고 친절히 묻는 현지인에게 00 포지션을 구하고 있고, 00 경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 연락처를 교환한다. 그리고 연락을 주고받는다. 가끔 만난다. 밥도 먹는다. 술도 마실 수도 있고, 시간을 함께 보낸다.
- 그러나 내게 직접적인 도움은 안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빈말만이 허무하게 오갈 뿐이다.
- 더욱 다급해진다. 이곳 저곳 쑤시고 다닌다.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자신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있는지, 얼마나 급한지 홍보하고 다니고 주변의 ‘좋은'(쓸만한,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요구한다.
예의 없이 함부로 네트워킹을 노리면 안 되는 이유
나는 네트워킹이나 소셜라이징 전문가가 아니다. 나도 구직 중이고 아직 갈 길이 남았다. 그러나 여기서 지내며 당황스러웠던 모습, 내가 다 민망했던 상황들이 몇 있었다. 대부분 구직자의 그런 절박한 PR이 어느 순간 현지인들이나 도움을 줄 만한 사람들의 눈에 먹잇감, 혹은 부정적인 요소로 비치는 경우였다.
예의 없이 함부로 네트워킹을 하겠다고 돌아다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어느 정도 내공이 있는 사람들의 눈엔 그게 다 보이기 때문이다. 목적이 너무나 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주변의 모든 사람이 민망해진다.
구직하겠다고 교회 이곳저곳 옮겨 다니고, 일요일에 교회 두세 군데 다니는 한인도 있다. 절박함은 아는데, 나도 답답하고 막막하니까 아는데, 진리를 구하기 위해 또 신을 접하고 마음을 씻고자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무례한 일이 아닐까? 현지 교회사람들은 이제 한인이 혼자 현지 교회에 나가면 ‘직업 소개해달라고 온 건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언어 교환하자고 만났는데 직장인이 아닌, 도움이 안 되는 학생인 것 같자 서서히 연락을 줄여버린다. 슬그머니 연락 횟수를 줄여나가고, 읽고 답장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선다. 언어 교환하자며!
내가 가진 싱가포르 인맥은 다 도움이 안 돼. 내가 원하는 도움을 안 준단 말야.
실제로 내가 들었던 말이다. 난 이 소리를 듣고 기함했다. 세상에. 사람을 만나는 것에 물론 어느 정도 각자의 목적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난 내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 ‘오늘 한번 재미지게, 광대통증 올 때까지 웃으러 가자’는 목적이 있다. 대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는 ‘오랜만이니까 사는 이야기나 들으면서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야지’라는 마음을 먹고 가는 경우가 많고. 사실 대부분 보고 싶어서 만난다. 궁금하니까.
그런데, 타국에서 현지인이나 외국인들을 만나며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의 기준을 가지고 재단하고 또 뒤에서 험담을 한다니?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다. 그들에게 ‘느그들 도움 1도 안 됨’이라는 굉장히 무례한 얘기를 면전에서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또한 그런 사고방식의 맹점 두 개가 있다.
- 누군가에게 직업을 소개받을 만큼의 ‘검증된 능력’이 본인에게 있는지는 자문해봤나? 안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에게 누가 과연 자기 평판을 걸고 선뜻 소개를 해주거나 매칭을 해줄 수 있을까. 나 같으면 못한다. 정말 그 사람에게 깊은 신뢰와 호감을 갖고 있거나 혹은 그 사람의 능력과 경력이 잘 맞는다는 확신이 있지 않는 이상. 나는 모험하고 싶지 않다. 리스크를 대부분 회피하는 인간의 습성상 모두 그럴 것이다.
- 관계의 유불리를 따지는 사람은 매력 없다. 그런 비인간적인 모습과 매력없는 성정은 결국 밑천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얕은 인간관계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그 말을 100% 신뢰하진 않지만, 수많은 상황에서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함, 진심보다 계산적인 야망과 욕망을 품고 있는 어린 20대라면? 어느 정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본 사람은 그게 눈에 다 드러난다. 그럼 안 하느니만 못하다. 정말이다.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욕심만 있고 계산적인 사람’으로.
그럼 좋은 네트워킹은?
좋은 네트워킹은 앞서 기술한 두 가지 맹점을 반대로 뒤집어 생각하면 된다.
- 검증된 능력을 갖춰라. 이 사람을 소개해줘도 내가 욕은 먹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나만의 특별한 강점과 무기, 제대로 된 경력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 성인군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좋은 성품을 드러내라. 네가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먼저 도와라. 네 상황에 사람들은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 아주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인터랙션을 한 뒤, 구직자 신분이든 뭐든 밝혀라. 다짜고짜 직업 구하고 있으니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 마라.
건강하고 유의미한 네트워킹은 사실 나와 상대방이 동등한 관계에 서 있음을 인지한 그 상황에서 출발한다. 내가 받기만 하는 상황이고 내가 뭔가 어필할 부분이 없다면, 나중에라도 내가 도움을 줄 부분이 없다면, 태도라도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받을 걸 미리 계산하고 행동하지 말자. 누군가 그걸 캐치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네트워킹하고는 있는데 도움을 안 준다? 도움을 전혀 못 받는다? 구직 과정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힘이 든다? 인맥이 다 마음에 안 든다?
그렇게 원망하거나 슬퍼하기 전에, 왜 그들이 잘 모르는 당신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보자. 한 번이라도 고민해보면 취업이 되든 안 되든 한층 성숙해진 자신을 볼 것이다.
원문: 가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