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랜드 전문가도 마케터도 아니다. 그런데 미디어 진화를 강의하고 혁신을 원하는 회사들과 일하면서 필연적으로 받게 되는 질문이 브랜드의 미래다. 왜 그럴까?
미디어가 진화한다면, 그것도 전통미디어에 단순히 소셜미디어 채널 몇개가 늘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미디어의 속성 자체가, 사용자의 역할이, 나와 고객의 관계가 변화하고 심지어 내 업의 본질에 대한 질문마저 시작되었다면, 그 중심에 브랜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디어의 진화, 시장 질서의 진화, 사회관계의 진화에 따른 브랜드의 필연적인 변화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연결이 지배하는 시대에 브랜드란 무엇이며 어디로 진화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브랜드의 실체를 따져볼 것이다. 이것은 미디어 전문가의 관점에서 쓰여진 글이다. 브랜드와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의 참여와 비평을 기다리며 공개하는 초대장이다.
다른 사례, 같은 시사점
지금부터 세가지의 동떨어진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여러분은 이야기를 다 듣고 세 이야기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추측해주시면 된다.
1. 노푸(No-poo)
내 평생 전지현처럼 샴푸광고 할 일은 없을테니 망설임 없이 고백한다. 나는 노푸어(No-pooer)다. 머리를 감는데 샴푸, 비누 등 화학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두피에 항상 문제가 많아서 오래전부터 고민을 했는데 작년 말부터 대단한 용기를 내었다. 이 멀고도 험한 길을 결심하게 해준 것은 인터넷에서 찾게 된 블로거들의 수많은 간증(?) 때문이었다.
노푸 방법,부작용이 뭐냐, 베이킹소다를 쓸 것이냐 말 것이냐, 쓴다면 농도는 어떻게, 어떤 용기에 넣어서, 꿀로 대신 하면 안 되나 등 정보를 입수하면 할수록 토끼굴에, 미로에 빠졌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고 파면 팔수록 더 의심이 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검색 노동(?)을 수없이 하다 보니 어느새 쌓이는 확신이랄까. 그래, 이제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나의 노푸 생활은 시작되었고 이제 욕실에는 오가닉 샴푸, 린스 대신 천연 베이킹소다와 사과식초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 국민내비, ‘김기사’
나는 김기사의 통신원이다. 돈도 받지 않고 통신원으로 일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내가 그렇듯 김기사를 쓰는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운전을 하면서 시시각각 김기사에게 ‘아까보다 이만큼 왔어요’ 보고하고 ‘여기는 막히네요’ 알려준다. 김기사에 연결된 우리는 실시간으로 교통정보를 알려주고 최적의 정보를 제공받는 서로서로의 통신원이고 매개자들이다.
뿐만 아니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용자들이 마케터로 기여하고 있다. 김기사는 개방적이고 직접적인 고객 커뮤니케이션으로 유명하다. 초기에는 물리적으로 콜센터 운영이 어려워 대신 시작한 것이 다음 카페(지금은 네이버 카페)다. 카페의 참여자들이 늘어나면서 김기사의 기능에 대한 각종 피드백, 안드로이드 기종별 어플리케이션 테스터 등이 생겨났다. 개방적인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사용자의 입소문을 활성화 시키는데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서비스 성장의 견인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나도 틈만 나면 김기사 자랑을 한다.
3. 전기자동차, ‘테슬라’
지금 계획대로라면 나는 4년후 새차를 구입할 예정이다. 그리고 부디 그때는 한국에서도 테슬라 판매점이 생겼기를 바란다. 태양열을 이용한 무료 전기충전소 등 테슬라를 수식하는 많은 매력 포인트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테슬라는 자동차라기 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아래의 동영상은 테슬라의 광고영상이다. 이 광고를 제작하는데 얼마가 들었을까? 테슬라의 광고팀에는 몇명이 있을까?
자, 이제 답을 할 시간이다. 이 3가지는 완전히 다른 사례처럼 보인다. 코스메틱, 내비게이션 서비스, 자동차의 공통점이라니! 그런데 이 사례들은 브랜드에 대한 공통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브랜드의 정의와 문제제기
전통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정의는 로고(logo), 약칭(shorthand), 이미지(image), 개성(personality), 관계(relationship), 정체성(identity)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브랜드를 기업의 다양한 마케팅 활동 결과 고객들이 가지는 인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브랜드의 대가로 손꼽히는 케퍼러 교수는 브랜드를 “구매자가 그 브랜드의 상품, 유통 채널, 직원,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접하면서 오랜기간에 걸쳐 형성한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인상의 결정체”[1]로 정의하고 “브랜드는 시장세분화와 제품차별화 전략의 직접적인 결과”[2]로 보고 있다.
정리하자면 브랜드란 사업자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시장을 통해 ‘구축된다’ 는 관점[3]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사업자는 포지셔닝을 할 뿐이고 이에 따른 실행의 결과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얻어지는 것이 브랜드라는 것이다.
브랜드가 설득 커뮤니케이션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전통적 일방향 미디어가 사회를 지배했을 때나 가능했던 얘기다. 지금은 설득하는 대신 보여줘야 하고 약속한 것을 실천하고 투명성을 기반으로 신뢰를 쌓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서 투명성이란 제품(의 가치)뿐만 아니라 사업자, 생산 과정,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 결과 돌아오는 ‘무엇’이 브랜드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무엇’의 실체가 있는가? 브랜드의 실체가 무엇인가 말이다. 신뢰지수(trust degree)인가? 고객의 마인드(mind)인가? 감정(emotion) 또는 느낌(feeling)인가? 충성도(loyalty)인가? 이러한 관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모든 수식어를 연결하는 접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브랜드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맨 처음 질문을 상기해보자. 위의 3가지 사례는 사업자 또는 특정 주체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엄청난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되었다. 어떻게 가능하며 무엇을 의미하는가? 위의 사례들은 브랜드의 실체가 다름 아닌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브랜드, 네트워크가 되다
브랜드의 발달, 성장, 진화, 소멸의 사이클은 사용자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사용자들의 제각기 다른 컨텍스트 안에서 제품들이 이유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경험, 공감, 동병상련, 정보, 발견, 제품, 소비 등이 만드는 족적의 네트워크, 그 합이 곧 브랜드다. 특히 노푸는 상업적 브랜드 사례는 아니지만 앞으로 브랜드가 가야할 방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네트워크의 실체가 무엇인지 즉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과정이 무엇인지 발견, 소속감, 제품의 3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1. 발견의 네트워크
노푸어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경험을, 피눈물 흘려 얻게 된 시행착오의 교훈과 성공 스토리를 아낌없이 공유한다(나도 지금 이러고 있다). 브랜드는 이 경험의 흔적을 통해 인식된다. 이 여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 정보, 이미지, 제품, 이야기들은 모두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를 형성하는 노드와 링크들이다.
실제로는 정보를 검색하느라 엄청난 노동을 했지만 이것을 노동이라 생각하지 못한 이유는 끊김이 없이 계속 새로운 것에 연결되는 경험 때문이다. 처음으로 노푸를 고려하게 한 블로그에서 시작하여, 코코넛 오일, 멧돼지 브러쉬, 에센셜 오일 사용법 책까지 끊김이 없는 연결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발견과 연결의 과정에서 인지하게 되는 것이 브랜드다. 여행의 흔적과 발견의 즐거움, 그 과정이 내 장기 기억 속에 체화되었다면 무엇이라 할 것인가? 이때 떠오르는 것이 곧 브랜드다. 발견의 접점으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바로 브랜드다.
2. 소속감의 네트워크
어려움은 있었지만 욕실의 풍경은 변했다. 욕실에 하나씩 자리잡은 베이킹소다와 사과식초, 유기농 꿀, 천연 알로에, 녹차잎 등을 보면 뿌듯하다. 내 두피에 좋은 그러나 유기농 샴푸, 린스보다 값은 수십배 싼 천연 제품들, 심지어 지구의 건강에 기여하는 이 제품들은 나에게 일종의 인증마크 같은 것이다.
노푸를 결심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부터가 여정의 시작이다. 막상 체험을 시작하면 수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죽도록 정보를 모아 시작을 했는데도 새로운 사실들이 자꾸 드러난다. 이 체험들과 다른 노푸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이어지고 때로는 간증, 감사, 탐색 등 많은 것들이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쌓여가는 것은 같이 경험한 사람들이 나누는 소속감이다.
이 소속감은 브랜드의 로고나 예쁜 용기의 생김새, 사업자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매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체험의 과정이 있었고 날마다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과정이 모여 소속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물론 제품이나 행위, 커뮤니티에 익숙해지면서 발현되는 소속감은 다양할 것이다. 제품을 한번 구매했다고, 스타벅스 커피를 처음 마셨다고, 대한민국이라는 국적만으로 소속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제품 또는 행위가 생활의 일부가 되고 아침마다 손에 들린 커피향을 맡으며 출근을 할 때, 위기상황이든 낯선 곳이든 국가의 존재를 반복적으로 체험하게 될 때 생기는 것들이다. 이렇게 지속가능한 소속감의 합이 곧 브랜드다. 소속감을 구성하는 행위(습관), 가치, 제품, 사건, 경험, 사람(커뮤니티), 기회 등으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바로 브랜드다.
3. 제품의 네트워크
노푸어들의 블로그에서는 수많은 제품을 만난다. ‘레몬 식초’, ‘저온압착한 유기농 코코넛 오일’이 좋다는 정보만이 아니라 관련된 제품들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서핑중에 발견한 어느 블로그다. 에센셜 오일 관련 정보를 읽다 보니, 오일을 담아놓는 용기를 아마존에서 얼마에 살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심지어 여기서 바로 구매가 가능하다. (실제로 내가 만난 많은 블로거들이 아마존의 협력자(associates)들이었다. 아마존 관점에서 매개자들의 역할을 보고 싶다면 아마존은 왜 오가닉 미디어인가? 참고)
물론 ‘블로거지‘의 페이지라고 상업적 용도를 의심해볼 수도 있다. 무슨 상관인가? 의심이 된다면 해당 제품을 클릭해서 아마존에서 직접 확인하면 된다. 이 제품에 대한 평가, 정보, 가격 등 수많은 연결 즉 이 제품을 구성하는 네트워크를 직접 보면 된다. 이미지의 오른쪽 영역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이 누군지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그가 누군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제품과 연결된 네트워크를 보면 제품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제품의 네트워크를 사업자가 출시한 제품 시리즈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제품들이 사용자의 경험속에서 연결되는 것이지 억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기사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저장한 장소를 기반으로) 맛집을 찾게 되고 대리운전 연결 서비스를 만나게 되는 것처럼 그 연결은 자연스럽다. 노푸어든 김기사 사용자든 자신들의 경험안에서 여행안에서 각자의 컨텍스트 안에서 제품을, 정보를, 공감을, 이야기를 만나는 것이고 그 합이 제품의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즉 제품을 둘러싼 컨텍스트의 합이 곧 네트워크며 브랜드다.
소유자가 없는, 관계가 만드는, 유기적 브랜드
여기서 네트워크란 첫째 연결되어 있고, 둘째 열려 있으며, 세째 사회적이고 네째 유기적인 성격을 띄는 관계망을 말한다(네트워크의 4가지 속성 참고). 네트워크 관점에서 본다면 브랜드는 특정 노드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김기사라는 상표, 그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는 누군가가 소유하겠지만 브랜드를 만드는 네트워크는 소유가 안된다. 내 회사의 브랜드지만 내가 혼자서 소유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로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네트워크의 진화를 위해 네트워크의 개방성과 연결성을 끊임없이 최적화 시키는 것 뿐이다. 사용자들을 매개로 만들어진 수많은 이야기의 합이, 데이터의 합이, 경험의 합이 내 브랜드고 그 실체는 네트워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케터의 역할은 이들이 끝없이 발견하고 쉽게 선택하고 최적의 경험을 하며 서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그렇게 발견의, 소속감의, 제품의 네트워크를 쌓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를 측정하고 인사이트를 얻고 다음 단계로 한 발씩 나가는 것, 그렇게 유기체로서 브랜드를 경험하는 것 뿐이다.
노푸 경험의 연결, 김기사의 개방적 커뮤니케이션, 테슬라의 놀라운 스토리를 전파하는 우리의 참여가 브랜드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네트워크를 성장시킨다. 이때 참여자들은 모두 체험자고 통신원이고 기자며 마케터, 광고주, 직원이다.
물론 테슬라처럼 비즈니스 모델도 이미 차별화되어 있고 창업자도 상징적 인물이라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일 것이다[4]. 에피소드지만 엘론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에 테슬라의 공짜 광고를 알리면서 사용자가 매개한 스토리를 다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동영상 자체도 재밌고 외부에서 만들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창업자가 나서서 ‘~이런거 발견했어요, 앞으로 ~게 하겠어요’ 트윗을 날린다. 생방송으로 브랜드 이야기의 2막이 예고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브랜드의 실체를 네트워크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정리가 다소 거칠고 실질적으로 적용하려면 숙제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에게 수백년동안 익숙해 있던 미디어는 진화했다. 형체를 찾아볼 수도 없이. 미디어만 바뀐 것이 아니라, 한 사회를, 관계를, 비즈니스를, 모든 것을 정의하고 지배해온 주체가 살아있는 네트워크로 변모했다.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 나는 이 변화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브랜드가 네트워크가 되는 순간 브랜드 역시 네트워크의 문법을 그대로 따를 것이다. 네트워크에서는 사용자 개개인이 각각의 중심점이며, 연결을 만드는 주체다. 그들이 만드는 모든 발견, 소속감, 제품의 네트워크가 모여 내 브랜드를 만들 것이다. 그들은 네트워크와 분리되지 않는다.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일부 즉 그들 자신이 네트워크며 결국 브랜드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노푸어로서 내가, 김기사를 운전하는 마케터로서 내가, 테슬라의 미래를 사고 싶은 투자자로서의 내가 브랜드인 것이다.
- Jean-Noel Kapferer, The New Strategic Brand Management, 5th edition, Kogan Page, 2012, p. 19. ↩
- ibid, p. 31. ↩
- “You don’t build a brand-your audience does. You don’t give a brand t0 the marketplace-you get a brand from the marketplace.” Austin McGhie, Brand is a four letter word, 2012, p.55. ↩
- Austin McGhie, op.cit., p.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