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바리스타도 집에서는 ‘이것’을 쓴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신기한 모습을 목격했어. 커피를 마시겠냐고 물어보더니 무슨 주사기처럼 생긴 걸 꺼내는 거야. 그런데 그걸 꾹 누르니까, 커피가 국수가락처럼 뽑히더라고. 고백할게. 홈카페 3년차에 이런 컬처쇼크는 처음이었어.
알고 보니 이게 바리스타들 사이에서는 장난감 같은 존재래. 오늘 소개할 도구는 커피를 재밌게 만들어주는 ‘에어로프레스’야.
‘커피 마시면 속이 쓰린데… 내가 함 만들어 봐?’
미국인 앨런 애들러(Alan Adler)는 2005년, 당시 67세의 나이로 ‘에어로프레스’를 처음 발명했어. 꽤나 늦은 나이지? 놀랍게도 그의 본업은 커피와 전혀 관련이 없어. 플라잉 디스크, 부메랑 같은 장난감을 만드는 기업의 사장님이야. 세계에서 가장 멀리 나는 물체로 기네스북에 오르고, 특허만 40개가 넘는 이 시대의 발명왕 형님이지.
혹시 공복에 커피 마시고 속 쓰린 적 있어? 나라면 양배추즙을 사 마셨을 것 같은데 발명왕 앨런은 달랐어. 그는 공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주사기의 원리를 이용한 커피 추출 도구 ‘에어로프레스’를 발명해. (이과 만세)
‘정답’은 버려라, 에어로프레스의 자유로움
보통 커피 기구들은 정답처럼 세팅값이 정해져 있어. 예를 들면 분쇄도나 물의 온도, 시간 같은 것. 반면 에어로프레스의 특징은 ‘반드시’가 없다는 거야. 자유분방한 문화가 핵심이지. 바꿔 말하면 꼰대스럽지 않아.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에어로프레스를 마치 장난감처럼 사용하곤 해.
대표적으로 월드 에어로프레스 챔피언십(World AeroPress Championship)가 있어. 14년째 운영되는 국제 대회야. 엄숙하고 진지한 다른 대회와 달리, WAC는 캐주얼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돼. 관객들은 맥주를 마시면서 지켜보고, 선수들도 리듬을 타면서 대회에 임하지. 60개국 매년 3,000명 이상의 참가자가 이 축제 같은 대회에 도전해.
세상의 모든 에어로프레스 레시피를 모아둔 전용 사이트도 존재해. 챔피언십 우승작부터 일반인 창작메뉴까지, 152가지에 달하는 독창적인 레시피가 가득해. 취향에 따라 개성 있는 커피가 탄생하지.
이것이 에어로프레스를 이용할 때 망설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야.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이 도구를 쓰는 새로운 방법이 세상에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니까.
에어로프레스, 제가 직접 써보니까요: 에디터의 사용기
상자를 열자마자 웃음이 나왔어. 도대체 누가 이걸 커피 내리는 도구라고 생각하겠어? 무슨 청소기 먼지통이나 장난감처럼 생겼잖아. 예쁘고 감성적이라기 보단 솔직히 투박한 쪽에 가까워. 부품이 많아 보여도 3개가 핵심이야. 챔버(원통), 플런저(누르개), 필터 캡. 이것만 기억해.
먼저 물을 끓이고, 원두 가루를 1스쿱 준비해줘. 이제 커피는 거의 다 완성된 것과 다름없어. 필터를 끼운 챔버에 준비한 원두와 따뜻한 물을 넣어줘. 그다음, 10~30초 정도 스틱으로 대충 저어줘. 커피 성분이 잘 뽑힐 수 있도록 섞어주는(교반) 과정이야.
이제 두 손바닥을 얹고 천천히 누르면 끝. 콰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피가 뿜어져 나와. 힘들지는 않냐고? 전혀. 사실 난 평생 팔씨름을 이겨본 적 없는 손목의 소유자야. 내가 할 정도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 평생 숨쉬기 운동만 해온 헬린이들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재밌는 점은 에어로프레스를 뒤집어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거지. 플런저를 아래로 향하게 놓고 시작하는 게 차이점이야. 원두와 물을 붓고, 컵과 몸체를 함께 뒤집어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동일해.
써보니까 정방향은 맛이 깔끔하고, 역방향은 향미가 좀 더 풍성하게 느껴졌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역방향이 좀 더 좋더라고. 기분 탓인지 힘도 적게 들어가는 것 같고 말이야.
무엇보다 에어로프레스는 섞어마실 때 빛나는 도구야. 농도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거든. 아메리카노처럼 마시려면 물을 넉넉하게, 라떼나 카푸치노를 만든다면 물을 적게 넣고 내리면 되지. 3만 원 대 가격으로 다양한 옵션의 커피를 자유자재로 즐길 수 있는 건 엄청난 장점이 분명해.
마무리도 참 쾌감이 좋아. 캡을 열고 플런저를 끝까지 누르면 뻥! 하고 동그란 커피 케익이 발사돼. 쓰레기통에 대고 누르는 걸 추천할게.
나는 생각해. 집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데 진지하게 무게 잡을 필요는 없다고 말이야. 그저 즐겁고, 맛있으면 금상첨화 아닐까? 에어로프레스는 손맛이 좋은 도구야. 사람들이 왜 인형 뽑기에 중독되는지 이해되더라. 누르는 게 중독적이라 어느새 엄마, 아빠, 동생까지 한 잔씩 만들어줬어.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손바닥만으로 훌륭한 커피를 만들 수 있어.
누군가는 캡슐커피가 가장 간편하지 않냐고 묻더라. 하지만 입맛은 기성품이 아니야. 맞추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거지. 내 마음대로 셋팅을 다양하게 조절해보고, 해외 로스터리부터 동네 카페까지 폭넓은 원두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에어로프레스를 추천해. 분명 재밌을 거야!
아직 고민이 된다면, 아래의 체크리스트를 참고해줘. 소개해줬으면 하는 커피 도구가 있다면 댓글을 부탁해.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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