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쿠쿠🍚? 이탈리아 모든 집에는 이것이 있다
요즘 골목에서 에스프레소 바가 되게 자주 보이더라. 처음엔 조그만 사약 같은 걸 어떻게 마시나 곤란했는데, 크레마 가득하게 갓 뽑힌 에스프레소를 마실수록 매력이 느껴지더라고. 하지만 에스프레소의 원조는 이탈리아야. 이탈리아 사람들은 누구나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먹는다고 하더라. 전 국민이 바리스타 자격증이라도 갖고 있는 거 아니냐고?
그건 아니고, 누구나 바리스타로 만들어주는 이 녀석 때문이야. 우리가 매일 집에서 전기밥솥으로 갓 지은 쌀밥을 먹듯, 이탈리아 사람들은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마셔. 바로 <모카포트>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말이야. 그 이야기를 들어볼래?
아내의 세탁기🚰에서 세계 최초의 홈카페를 발명하다
1933년 여름. 알폰소 비알레띠(Alfonso Bialetti)는 이탈리아에서 알루미늄 공장을 운영하던 엔지니어였어. 그는 알루미늄을 이용한 생활용품을 고민하던 중에, 아내가 빨래하는 모습을 보게 돼. 커다란 양동이 한가운데에서 비눗물이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있었거든. 그 모습을 보며 알폰소는 생각했대.
저 비눗물 대신에 커피가 퐁퐁 솟아오른다면 어떨까?
그렇게 그는 보일러의 원리를 이용한 커피 도구, ‘모카 익스프레스’를 발명하게 돼. 모카 익스프레스(모카포트)는 과연 이름처럼 빠르고, 편리했어. 누구나 만들기 쉽다는 것은 곧 대중화를 의미해. 버튼 한 번이면 완성되는 ‘3분 카레’의 등장이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인의 식탁을 바꿔둔 것처럼 말이야.
이제 모카포트만 있으면 누구나 바(카페)에서 먹는 것 같은 에스프레소를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었지. 그렇게 비알레띠의 모카포트는 이탈리아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돼.
모카포트를 일으킨 남자👨🏼💼, 모카포트 안에서 잠들다
하지만 아버지의 모카포트를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시킨 사람은 따로 있어. 그의 아들, 레나토 비알레띠(Renato Bialetti)야. TV가 막 등장할 시대에 태어난 그는 일찍이 TV 광고에 눈을 떴어.
디즈니, 마블 같은 캐릭터가 세상을 휘어잡을 먼 미래를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그는 만화가 폴 캄파니(Paul Campani)를 고용해 ‘콧수염 아저씨(Omino coi baffi è)’라는 시그니처 캐릭터를 만들어. 이 콧수염 아저씨는 각종 애니메이션, 신문광고에 27년 동안 등장하며 이탈리아의 국민 캐릭터로 자리잡지. 이후 모카포트는 60년간 2억 여개가 넘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전 세계적인 스테디셀러가 되었어.
모카포트를 알리기 위해 인생을 바친 이 남자. 레나토 비알레띠는 2016년 2월, 타계하면서 한 가지 유언을 남겨. 아버지가 만든 모카포트에 나의 유골을 넣어달라고 말이야. 그렇게 레나토 비알레띠는 마지막까지 전 세계에 모카포트를 알리는 퍼포먼스와 함께 영면에 들어.
그래서 모카포트☕️, 직접 써보니까요… 에디터의 사용기
이쯤 되니까 모카포트가 궁금해서 못 배기겠더라. 바로 주문해봤지. 배송을 받자마자 깜짝 놀랐어. 약간 장난감 보는듯한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훨씬 조그맣고 귀엽더라. 이렇게 생겨서 커피를 제대로 뽑기나 할까 싶은 의심(?)부터 들었지.
모카포트를 사용하려면 일단 세척이 필요해. 기름기나 왁스가 남아있을 수 있어서 최소 세 번까지는 커피를 뽑아서 버려야 해. 이 과정이 조금 귀찮고 아깝더라도 별 수 없어. 건강해야 커피도 오래오래 마시지. 내가 구매한 곳에서는 여분 원두를 서비스로 주셔서 그걸 사용했어.
세 번의 예비 추출을 마치고, 드디어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뽑을 차례야. 하단의 보일러 칸에 눈금까지 물을 붓고, 원두를 넣은 후 중약불에 올렸어. 금세 쿠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커피가 뿜어져 나와. 보일러 칸에서 수증기의 압력으로 밀려난 물이 중앙의 관을 타고 올라와 순식간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뿜어내는 거야.
이때, 초보들은 눈을 떼지 말고 있는 편이 좋아. 절반쯤 추출되었을 때 불을 끄고 모카포트를 바닥에 내려주는 게 중요하거든. 그렇지 않으면 본체가 심하게 열을 받아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결국 폭발하게 돼. 뚝배기 찌개를 계속 불 위에 올려두면 넘치는 거랑 비슷해. (어떻게 알았냐곤 묻지 말아 줘. 나도 알고 싶진 않았거든…)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커피 한 잔. 모카포트로 만든 커피의 맛은? 에스프레소라고 하기엔 다소 연하고, 아메리카노보다는 훨씬 진했어. 나는 진한 맛을 좋아해서 이대로 쭉 마셨는데 목 넘김이 아주 부드럽고 편안하더라. 부담스럽다면 물이나 우유를 살짝 더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무엇보다도 향이 정말 훌륭해. 잔 테두리를 넘어서 집안 가득 커피 향기가 오후 내내 휘감았는데,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하지만 다 마시고 난 후에 잔 바닥에 미세한 원두 가루가 조금 남아있는 건 아쉬운 부분이야. 아무래도 필터가 종이처럼 촘촘하지는 않다 보니, 약간의 미분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아. (정 마음에 걸린다면 별도의 필터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어.)
모카포트의 진짜 진가는 세척할 때 발휘돼. 알루미늄으로 만든 모카포트는 물로만 간단하게 헹궈서 쓰면 되거든. 별도의 세제나 약품은 필요 없고, 부식의 위험이 있어서 오히려 쓰면 안 돼. 오직 물로만. 쉽지? 나처럼 귀찮은 걸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딱이야.
무엇보다 내가 반했던 순간은 커피 찌꺼기를 처리할 때야. 원두통을 가볍게 퉁! 쳐주면 커피 찌꺼기가 통째로 뭉쳐서 떨어져. 이것만 일반쓰레기에 버리면 끝. 캡슐머신 등 다른 도구들에 비해 부가적인 쓰레기가 나오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더라고.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여전히 모카포트를 애용하는 이유 중 하나로 환경에 부담 없는 베이직한 도구라는 점을 꼽아.
총평하자면 모카포트는 무인도에 간다면 가장 먼저 챙기고 싶은 도구야. ‘불’이라는 원시적인 힘만 있다면 어디서든 커피를 뽑을 수 있다는 게 이 친구의 매력이거든. 게다가 무인도는 디지털이 안되잖아. 모카포트는 생김새부터 사용법까지, 모든 스텝에서 아날로그한 감성이 사용자에게 오롯이 전달돼. 실제로 모카포트의 디자인은 처음 만들어진 1933년부터 거의 변하지 않았어. 단, 불을 이용하는만큼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는 꼭 필요하지만, 내 경우엔 불 끄는 타이밍만 잘 지키면 괜찮더라.
아웃도어와 실내, 전천후 어디서든 커피를 마시고 싶고, 아날로그 감성을 즐긴다면 모카포트를 두 엄지 손가락을 모아 추천해. 하지만 모든 부품을 분해해서 세제로 깨끗이 씻어야 속이 시원할 만큼 위생에 민감한 분들이라면 비추천할게. 세제를 못 쓴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참지 못할 포인트가 될 수 있어. 잊지 마!
여전히 모카포트가 내게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 고민이 된다면? 아래의 리스트를 참고해봐도 좋아. 궁금한 홈카페 도구가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면 참고할게.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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