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스타트업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스타트업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한남동 톨스토이
1. 정치에 지친 스타트업 근로자와 리더를 위하여
이 글은 널리 존경받는 구 스타트업 CEO, 현 엔젤 투자자 한남동 톨스토이(가명)가 장장 2회에 걸친 술자리에서 구두로 전달해준 스타트업 사내 정치에 대한 빛나는 통찰을, 나의 흐릿한 문장으로 정리한 글이다.
제목에서 정치 두 글자만 보고 허겁지겁 클릭한 당신. 이 글은 ‘윤’의 거친 생각과 ‘이’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안’의 전쟁 같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돌아가시라. 이 글의 권장 소비자는 평소 본인의 실무적 감각보다 정무적 감각이 떨어져서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스타트업 종사자나,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사내 정치에 지친 스타트업 리더다.
2. 성장기의 스타트업에게 부서 vs. 부서 싸움은 ‘잘 쓰면 약’이다
모든 기업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내 정치 구도이다. 마케팅vs.디자인 등의 유관 업무가 많고 이해관계가 얽힌 조직 간의 갈등도 있다. 또한 영업 1팀vs.영업 2팀 등의 동종 조직 간의 갈등도 있다. 스타트업의 경우 자원(개발 리소스, 예산, 시간 등)이 상대적으로 턱없이 부족하므로, 이러한 갈등이 일반 기업보다 더 과격한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형태의 사내 정치는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일거에 해소하기 위해서 ‘외과적 수술’을 감행하는 것은 정말 회사의 명운이 달린 경우가 아니고서야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즉,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 질병처럼 ‘관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사내 정치 유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
한남동 톨스토이는 만약 스타트업의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면, 사내 정치와 갈등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뛰어난 리더는 조직의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고, 여기서 사내 정치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여러 번의 이터레이션을 통해 95% 만족하는 아웃풋이 나왔다. 구성원들은 여기서 그만두고 싶어하지만 해당 부서의 리더는 딱 한 번 만 더 푸쉬하고 싶은 상황이라 가정해보자. 리더는 평소에 구사하던 노동 촉진 레파토리를 다 써버렸다. 여기서 무작정 한 번 더 압박하는 것은 구성원들의 불만도 불만이지만, 그 효과가 너무 떨어진다.
그런데 이때 회의를 다녀온 리더가 ‘타 부서 핑계’ 카드를 쓴다면 어떨까?
내가 설득한다곤 했는데 결국 마케팅팀에서 까였다. 정말 미안하다. 아쉽지만 조금만 더 고민해서 마케팅팀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는 결과를 만들자.
적절하게 사용하면 리더 본인의 어그로를 리셋하면서도 동시에 구성원의 전투력을 온존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
야, 지난달에 우리 팀원 2명 휴가였잖아. 근데 2팀 애들이 지난달 우리 팀이랑 실적 비슷하게 나왔다고 이번 달에 우리 따라잡는다고 하더라. 참나.
혹은 위처럼 단순하고 전통적인 격장지계(激奬之計)를 사용할 수도 있다. 뛰어난 능력의 리더들은 이런 식의 ‘타 부서 핑계’ 초식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실제로도 정치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부서의 리더들은 서로 이런 정치 구도를 이용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부서 멤버들이 보는 평소에는 냉랭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리더들의 케이스도 꽤 있다. 그래서 서로 욕하는 거 들어도 못 들은 척 넘어가주고 그런다.
그런데 이렇게 부서 리더들끼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데, 대표가 눈치가 없어서 부서 리더끼리 급격한 화해를 주선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런 레토릭이 오고 갈 때 그 대상은 상대 부서가 아니다. 저건 자신이 속한 부서 내부의 결속을 다시고 불만을 잠재우는 용도다. 이런 구도에서 대표는 갈등의 해결사, 주인공이 되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뛰어난 리더를 뽑았다면 리더들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전면에 나서는 대신, 양 부서를 수시로 오가며 부서 구성원들의 요구사항을 잘 파악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서번트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사내 정치는 보툴리눔 톡신과 같다. 잘 쓰면 주름살 펴 주는 보톡스가 되고, 잘못 쓰면 조직 문화 싹 다 죽는다.
- 한남동 톨스토이
3. 안정기의 스타트업이라면, 다른 동력을 찾아야 한다
가파른 성장세가 돈좌되고 안정·성숙기에 접어든 스타트업에서, 거짓말처럼 한꺼번에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터져 나온 대부분의 문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문제일 확률이 높다. 그 문제들은 계속 거기 있었지만 빠른 성장세의 그늘에 가려져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사내 정치도 마찬가지다. 성장기의 스타트업에서는 부작용은 줄어들고 효과는 좋아서 ‘약’으로 쓰였던 사내정치가, 안정기에 접어든 스타트업에서는 그 보이지 않던 부작용이 드러나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회사 내부의 구성원들끼리 싸우고 지지고 볶아도, 회사의 성장이 자신의 보상과 많이 연결되는 성장기의 경우,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감내할 수 있다. 우리 부서랑 맨날 으르렁대고 재수도 없지만 능력은 쩌는 타 부서 팀장? 환영이다. 하지만 업무가 세분화·전문화되고, 조직 내의 변화가 줄어들며, 회사의 성장과 나의 보상의 상관관계가 줄어드는 성숙기에는 사람들의 똘레랑스 레벨이 낮아지고 사내 정치의 양상도 굳어진다.
이 말은 곧 ‘부서 이기주의’가 등장한다는 뜻이다. 유식한 말로 ‘사일로 현상’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 배운 건 골프 스윙이랑 이 단어, 딱 두 개 뿐이다. 그렇다면 성숙기의 스타트업은 사내 정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성숙기의 스타트업이 사내 정치를 다스리는 방법에는 3가지 방책이 있소. 상책은 또 다른 동력을 찾아 스타트업을 성장기로 바꾸는 것이오. 중책은 회사 외부에 공통의 적을 만들어, 내부는 결집하고 적의는 조직 바깥으로 돌리는 것이오. 하책은 대표가 흑화해서 광역 어그로를 끄는 것이오. 이슈는 이슈로 덮고 악은 거악으로 덮는 법이오.
충분히 발달한 리더는 정신과 의사와 구별할 수 없다.
- 한남동 아서, C 톨스토이
4. 박힌 돌 Vs 굴러온 돌
또 다른 갈등이 있다. 스타트업 초기에 합류해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박힌 돌과 관련 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력직으로 합류한 굴러온 돌, 이 둘의 갈등 구도. 이는 스타트업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통과의례 중 하나이다.
비슷한 업무에 종사하는 박힌 돌과 굴러온 돌이 1:1로 충돌했을 때, 해당 부서의 리더나 대표는 이들의 갈등을 평가하거나 판단해선 안 된다. 사내 정치는 교통사고가 아니다. 리더가 한문철 병에 걸려서 7:3, 6:4 등의 과실 비율 판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리더는 판사, 사법부가 아니라 상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진짜 문제는 둘의 충돌이 아니고, 둘이 왜 충돌하는지 그 바닥에 깔린 심리이다.
먼저 박힌 돌의 심리를 인수 분해해보자.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나의 쓸모가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공포, 기존의 업계 레거시에 대한 본능적이고 무조건적인 거부감, 새로운 방식으로 업계를 혁신하고 기존 업계에서 인정도 받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욕망 등의 인수가 나온다. 스타트업 개국공신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 굴러온 돌은 어떨까?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업계 경력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부재로 인한 불안감, 기존 멤버들에게 능력을 보여주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인정 욕구 등으로 인수 분해가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인수 분해해보면 이들의 갈등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먼저 각자의 공포와 불안을 가장 잘 다스릴 수 있는 약을 처방해야 하는데, 최고의 약은 잘 설계된 보상 체계다. 회사의 성장과 개인의 보상을 잘 매치하는 것이다.
단점에 집중해 서로를 공격하는 것보다는 ‘서로가 가지고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같이 회사 가치 올리는 것이 최고의 선(善)이다.’라는 걸 잘 납득 시키면 게임 끝. 나머지는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 욕망을 업무 성과로 잘 인도할 수 있도록 살살 부추기는 것만 잘하면 된다.
5. 백약을 써도 무효한 경우: 집단 간의 싸움
단, 경계해야 될 게 있다. 특정 업무나 분야에서 1:1 구도의 갈등은 위와 같이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이 구도가 집단화가 되면 긍정적 활용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박힌 돌’들’ Vs 굴러온 돌’들’ 식으로 집단 구도가 강하게 잡히면 매우 골치 아파진다.
개개인의 서운함과 불만은 각개로 놓고 보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되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집단을 만나면 증폭되기 십상이다. 이런 감정의 증폭은 상대방에 대한 불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갈등이 집단 Vs. 집단으로 바뀌면 보상 체계를 통한 이성적인 설득이 먹혀들어 갈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것 보다 각자 집단에 유리하게 파이를 자르는 거에 현혹되기 시작한다.
최근의 근무 환경도 이런 안 좋은 사내 정치가 퍼져나가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 같다. 비슷한 내용이라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면 무난하게 합의하고 넘어갔을 일도, 전화로 이야기하다 보면 괜히 꼬인다. 이메일이나 노션 같은 협업 툴에서 이루어지는 ‘글’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전화 통화보다 더 오해를 많이 만든다. 비슷한 생각이나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끼리 슬랙에서 이야기하고 단톡방 파고, 이러다 보면 문제가 더 빠르게 퍼진다.
당신이 리더이고 만약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다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다른 예시와는 다르다. 집단화되려는 움직임을 봉쇄하고, 여의치 않으면 집단 내부를 흔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선에서 ‘사내 정치’를 활용해서 그들을 뭉치지 못하게 만들어라. 각기 다른 불만이 있는 개인 50명이, 같은 불만과 정서를 공유하는 끈끈한 5명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단보다 훨씬 관리하기 쉽다. 특히 인원이 적은 초기 스타트업은 치명적이다. 명심하라.
이해가 느린 사람에게도 편견이 없다면 어려운 주제에 관해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의심의 여지 없이 주제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쉬운 주제라도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다.
- 한남동 톨스토이
원문: limyoung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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