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드렁. 소리 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맥이 없어지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 ‘시큰둥’이라는 심드렁의 친척 같은 표현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런 부류의 표현에서는 심드렁이 최고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시큰둥 보다는 심드렁이 더 좋다. 시큰둥의 경우 발음하면 ‘둥’에서 살짝 업되는 느낌이 들어 별로다. 심드렁의 경우 발음하면 ‘렁’음절에서 혀끝이 앞니 바로 뒤 입천장을 살짝 눌렀다가 떨어진다. 그때는 혀조차 힘을 잃어 ‘털썩’하고 입안에 주저앉아 버리는 느낌이다. 발음에서조차 심드렁은 시큰둥의 상위 호환이다.
심드렁의 사전적인 의미는 ‘마음에 탐탁하지 아니하여서 관심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관심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집중하고 있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관심을 꺼버린 건 아닌 애매한 상태, 다시 말해 주변의 상황이나 상대방을 인지는 하고 있지만 크게 신경 쓰거나 개의치 않는 태도가 바로 심드렁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심드렁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생물은 아무래도 고양이를 높게 쳐줄 수밖에 없다.
저 자세와 표정의 태를 보라. 이런 사진을 보면 심드렁이라는 단어는 정말 고양이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간도 크게 부족하진 않다. 한복 김연아 사진 같은 것을 보면 같은 인간으로서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이 얼마나 심드렁의 정수이자 표본이라 할 수 있는 표정인가. 어지간한 내공의 고양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이길 재간이 없을 것이다.
내가 환장하면서 좋아하는, 심드렁과 관련된 특수한 상황/설정이 있다. 평소의 심드렁한 태도가 일반 커피라면, 이런 상황은 심드렁의 T.O.P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엄청난 내용 + 심드렁한 태도 조합이다. 영화배우 송새벽이 이 분야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뭔가 극적인 내용을 심드렁한 태도와 표정으로 말할 때 느껴지는 반전 매력이 너무 좋다. 심드렁한 태도와 내용의 무게감 사이의 갭이 클수록,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를테면 아래 같은 표현을 보자.
나는 요즘 시간을 때우려고 책을 한 권 쓰고 있다네.
목숨 걸고 열심히 책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 쓰는 것도 아닌 애매한, 그야말로 심드렁한 태도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문장이다. 그런데 누가 언제 썼는지를 뒤에 붙여서 다시 이 문장을 써보면 아래와 같다.
나는 요즘 시간을 때우려고 책을 한 권 쓰고 있다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저술 시점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中.
자, 어떤가. 누가 어떤 상황에서 사용했는지 그 맥락을 알고 다시 읽어보자. 이 심드렁한 태도가 주는 강력한 즐거움이 느껴지는가? 여기서 매력을 느낀다면, 당신은 심드렁의 매력에 빠질 준비가 되었다. 동지여! 심드렁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허나 아무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면 이 약팔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파인딩 포레스터>라는 영화가 있다. 파인딩 포레스터는 <굿윌헌팅>, <엘리펀트> 등으로 유명한 거스 밴 샌트 감독의 2000년 작품이다. 한 편의 걸작을 남기고 은둔 중인 전설적인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와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브롱스의 흑인 소년 자말 월레스 사이의 나이와 인종을 넘어선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파인딩 포레스터>에는 아래와 같은 장면이 있다.
윌리엄 포레스트로 분한 숀 코너리의 저 표정이 보이는가? 별거 아니라는 투의 무신경한 태도와 목소리 톤, 그리고 ‘퓰리처 상’이라는 파워풀한 내용과의 갭에서 나오는 이 짜릿한 즐거움! 실로 파괴적인 심드렁함이 아닌가? 그러니 만국의 심드렁 동지들이여. 심드렁하게 단결하라. 꿀잼을 얻을 것이다.
원문: 놀고 먹는 총각 임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