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아무나 쓸 수 있는 간단하고 뻔한 평은 아래와 같지만, 이것은 본질이 아니다.
신파와 하이틴 로맨스 그리고 공포와 개그가 공존하는 불균질하지만 재밌는 K-좀비의 새로운 시도
누가 이런 비슷한 평을 하면 겉만 핥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이 작품의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에 맞춰 평을 하자면 이렇다.
너와 내가 괴물이 되어가는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남는 효산고 학생들로 부활한… 세월호 단원고 아이들에게, 그리고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억울하게 죽은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위령곡이자 오구굿 한 판
- 오구굿: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천도하기 위하여 행하는 굿.
그렇다. 이 작품은 세월호에 갇혀 죽어간 단원고 학생들을 바이러스의 창궐 속에 학교에 갇혀 죽어간 효산고 학생들로 비유해서 만든 작품이다. 그리고 극 중에서 그 바이러스는 자연이 아니라 어른들이 만든 것이었다. 또한 그 이름은 ‘요나스’ 바이러스다.
요나스는 독일의 생태주의 철학자로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던 학자였다. 결국 작가와 감독은 어른들이 만든 시스템의 문제로 죽은 아이들에 대해, 어른들 중에 누가 제대로 책임을 졌는가를 묻고 있다.
이 작품과 관련된 몇 가지들만 아래에 적는다. 일단 이 작품의 주요 스텝들을 짧게 살펴보자.
- <추노>, <소수의견> 등의 천성일 작가.
- <다모>, <완벽한 타인> 등의 이재규 감독.
- <악마를 보았다>, <광해> 등의 모그 음악 감독.
- <전우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의 조화성 미술 감독.
- <범죄의 재구성>, <도둑들>의 신민경 편집.
- <악인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의 박세승 촬영 감독.
그리고 인상적인 대사가 많지만 그중 몇 개를 뽑아서 하나로 합쳐본다.
“여기 그대로 있으면 다 죽어!” “기다려. 어른들이 우릴 구하러 올 거야!” “오지 않아. 우릴 구할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말해봐요. 우릴 왜 버렸어요?” “나 다시는 어른들한테 아무 부탁 안 할 거예요.”
“이건 폭력의 시스템이에요. 나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이 시스템 못 바꿔요.”
“끝나고 가자. 어디든 가보자. 책상 위 엎드려 열두 시간 책에 흥건하게 고인 게 침인지 땀인지 끝나고 가자. 손잡고 가자. 어디든 가보자 우리” “가자! 집에 가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슬픔이 얼마나 무거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 세월호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촬영은 안동시 성희여자고등학교에서 했지만 극 중 나오는 효산시의 모든 지도는 안산시의 위성 지도를 쓰고 있다. 그리고 안산시에는 단원고가 있다.
단원고 학생들이 물에 잠겨 죽어가는 것을 효산고 학생들이 좀비에 물려 죽어가는 것으로 대치해서 상상하면서 감상한다면… 작가가 의도한 부분에 제일 근접한 감정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극 중에서 나오는 너무 직접적인 신파도, 어설픈 개그와 로맨스도 그런 시점으로 바라보면 모두 이해된다.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 겪었을, 어설프지만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이니까.
마지막 회에서 길을 잃고 마치 안개 속의 저승길 같은 산길을 헤매는 아이들에게 길을 인도해 주는 것은 아버지가 메어준 노란 리본이었다. 그것은 바이러스 이름 요나스가 책임 윤리를 상징한다고 말했듯이 또 다른 단원고와 효산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마지막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작품이 어찌 위령곡에 오구굿이 아니겠는가.
추가로 영어 제목은 <All of Us Are Dead> 즉 ‘우리는 모두 죽었다’이다. 더더욱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학생들은 물론, 한국의 모두가 죽었다는 뜻이다.
촛불은 세월호와 정서적 연결성을 갖고 있다. 결코 별개가 아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속 시원한 진상 규명이 없었다. 그러니 극 중 요나스 바이러스의 창궐 앞에, 좀비가 상징하는 폭력의 시스템 속에 우리는 모두 죽었다는 고백이 생기는 것이다. 아프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학교는>은 “지금 우리 사회는” “지금 우리 나라는”이 되는 것이다.
p.s. 참고로 극 중 반 인간 반 좀비인 ‘남라’의 캐릭터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도쿄구울>(2014)에서 더 자세하게 묘사된다. 시즌 2에서 ‘남라’는 물론, 죽지 않고 다시 등장할 ‘청산’의 이야기의 힌트를 <도쿄구울>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죽었을 리가 없다. 그게 장르의 규칙이며 과거의 부정적 요소를 청산(淸算)하기 위한 캐릭터니까.
원문: 전상일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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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미지 출처: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