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QR코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음식점이나 카페의 전자출입 명부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IT 강국답게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 파악을 위해 QR코드를 적극 활용했다. 일본에서도 코로나19 이후 한국과 마찬가지로 QR코드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출입 명부 작성을 위해서가 아닌 머니(MONEY), 즉 결제 수단으로써 주로 활용되고 있다.
1. 코로나19 이후 일본 편의점에서 처음 목격한 QR결제의 현장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불과 5년 전만 해도 카드나 간편 페이 같은 전자결제보다 현금으로 결제하는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현금을 쓰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카드를 받아주지 않는 가게가 많았기 때문이다. 장지갑은 사치품이 아닌 생활필수품이었다. 그래서 지난 7월 주재원 발령을 받고 일본행 비행기에 탈 때도 5년 동안 서랍에 고이 모셔뒀던 장지갑을 다시 꺼내서 챙겼다.
일본에 도착한 첫날,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일본 편의점 클라쓰는 정말이지 신세계가 따로 없었지만, 전혀 놀라지 않은 척 현지인 코스프레를 하며 장을 본 후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 동전을 찾아 장지갑을 뒤졌다.
내가 알던 일본이라면 나 말고도 장지갑을 뒤적이는 고객이 많을 법한데 그날따라 동전이나 지폐를 꺼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 자리에 나 빼고 현금으로 결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페이페이(PayPay)로 결제할게요.
라인 페이(LINE Pay)로 부탁합니다.
그들은 쿨하고 모던한 자태를 풍기며 품에서 21세기가 낳은 최고의 발명품, 스마트폰을 꺼내 점원에게 보여주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일본인의 현금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일까. 코로나19는 유서 깊은 일본의 결제 문화를 바꿔 놓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단 말인가. 충격이었다. 장지갑 감성 못 잃을 것 같던 아날로그 끝판왕 일본에서도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2. 코로나19 이후 급성장 중인 일본의 QR코드 결제시장
우리나라는 카드 한 장(삼성 페이 사용자라면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생활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카드 하나로 온·오프라인 결제는 물론 교통카드까지 모든 소비 활동을 커버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캐시리스(비현금) 결제 비율은 2018년에 이미 94.7%에 달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떨까? 놀랍게도 일본은 아직까지 캐시리스(비현금) 결제 비중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즉 일본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금융 결제 중 70% 이상은 현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 한국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일본의 캐시리스(비현금) 결제 비중도 2016년부터 꾸준히 증가해왔다. 2020년 일본의 캐시리스 결제 비중은 약 29%로 2016년의 20%에 비해서 무려 10% p나 증가했다. 일본의 2020년 캐시리스 결제 구성 내역을 들여다보면, 신용카드가 61조 엔(약 650조 원)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전자화폐(일본 교통카드 회사인 ‘스이카’나 ‘파스모’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애플사의 ‘애플 페이’ 등)가 6조 엔(64조 원), QR코드 결제가 4조 2천억 엔(45조 원)으로 뒤를 잇는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비접촉 소비가 증가하면서 스마트폰 QR코드 결제의 이용이 급증했다. 2020년 QR코드 결제액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대비 1년 사이에 약 4배나 증가했다.
일본에서 유독 QR코드를 활용한 간편 결제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코로나19로 인해 위생 문제가 대두되면서 비접촉 결제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증가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책 중 하나로 ‘비위생적인’ 현금 대신 전자결제를 적극 권장했다. 일본 정부의 교묘한 전략이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일본 내 스마트폰 QR코드 결제를 비롯한 비접촉 결제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QR코드 결제 서비스 제공업체의 파격적인 수수료 정책을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자나 마스터카드 같은 신용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는 3~5%이며, 스이카와 파스모 같은 교통카드계 전자화폐의 가맹점 수수료도 약 3% 정도다. 그에 반해 QR코드 결제 서비스는 점포가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가 1~3% 미만으로 자영업자 입장에서 금전적인 메리트가 크다.
특히 QR코드 결제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수수료 무료 또는 할인 캠페인을 펼치면서 2019~2020년 1년 사이에 QR코드 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는 점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현재 일본에 있는 스마트폰 QR코드 결제 서비스만 해도 약 20여 종류가 넘는다.
3. 일본의 대표적인 QR코드 결제 서비스
현재 일본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QR코드 결제 서비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A. 페이페이(PayPay)
- 등록 사용자 수 : 4,100만 명(’21년 10월 기준)
- 가맹점 수 : 편의점, 음식점 등 전국 340만 점포
현재 일본에서 전체 QR코드 결제 거래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페이페이(PayPay)’부터 알아보자. 페이페이는 일본 최대 IT·통신회사 소프트뱅크 그룹에서 제공하는 QR코드 결제 서비스다.
소프트뱅크가 간편 결제 시장에 뛰어든 건 2018년 10월이다. 경쟁사에 비해서는 다소 늦었으나 ‘3년간 가맹점 수수료 무료’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전면에 내세워 빠른 속도로 가맹점 수를 늘려왔다. 역시 벤처계의 거물, 통 큰 손정의 회장님다운 과감한 전략이다. 게다가 일반 소비자에게도 포인트 적립, 할인쿠폰 지급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페이페이 사용자에게 소프트뱅크 그룹 산하 형제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게끔 유도하는 이른바 ‘미끼 전략’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페이페이로 결제하면 소프트뱅크 통신사 사용자에 한해 추가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거나, 소프트뱅크 그룹의 자회사이자 일본 3위 전자상거래 플랫폼 ‘야후! 쇼핑몰’에서 페이페이로 결제 시 포인트 추가 적립 혜택을 제공하는 등이다. 즉, 페이페이는 꿈과 환상의 나라 ‘소프트뱅크 월드’의 출입문 역할을 하는 것이다.
- 등록 사용자 수 : 4,000만 명(’21년 6월 기준)
- 가맹점 수 : 편의점, 음식점 등 전국 400만 점포
라인 페이(LINE Pay)는 약 8,6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일본 1위 메신저 앱 라인(LINE)이 제공하는 QR코드 결제 서비스다. 라인 유저라면 새로운 앱을 별도로 깔 필요 없이 메신저 앱을 켜서 바로 결제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한국의 카카오페이처럼 라인 페이 유저끼리라면 수수료 없이 무료로 개인 간 송금 및 더치페이도 가능하다.
놀라운 건 한국의 네이버 페이와 호환이 되기 때문에, 일본 내 은행 계좌나 카드가 없어도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결제 수수료도 들지 않는다. (라인이 네이버의 자회사여서 그런지 한국인 입장에선 여러모로 편리한 부분이 많아서 나는 개인적으로 라인 페이를 애용하고 있다.)
최근 소프트뱅크 그룹의 자회사 야후 재팬과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이 페이페이와 라인 페이의 결제 서비스 통합을 발표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양사에 따르면, 2022년 4월을 목표로 페이페이와 라인 페이의 완전한 통합을 추진할 계획이다.
4,100만 유저를 보유한 페이페이와 4,000만 유저를 보유한 라인 페이가 통합하면 8,000만 명이 넘는 압도적인 사용자 수를 보유하게 되므로, 간편 결제 시장에서 1위의 입지를 단단히 굳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C. 라쿠텐 페이(R Pay)
- 등록 사용자 수 : 5,000만 명
- 가맹점 수 : 음식점, 편의점, 서점, 할인매장 등 전국 500만 점포
라쿠텐 페이는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 ‘라쿠텐 시장’을 운영하는 라쿠텐 그룹이 제공하는 결제 서비스다. 라쿠텐 페이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라쿠텐 포인트’의 이용 및 적립 가능하다는 점이다. 라쿠텐 시장에서 쇼핑을 하거나 라쿠텐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라쿠텐 포인트가 적립되는데, 이 포인트를 라쿠텐 페이 결제 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평소 라쿠텐 시장에서 라쿠텐 카드로 쇼핑을 즐기는 ‘라쿠텐 헤비 유저’라면 라쿠텐 페이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라쿠텐 페이의 충전 수단으로 라쿠텐 카드를 선택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라쿠텐 페이로 결제하면 100엔 당 1포인트가 쌓인다. 심지어 신용카드 포인트도 중복 적립이 가능하다. 라쿠텐 페이에 한 번 입문하면 ‘라쿠텐 포인트 천국’에서 빠져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D. 그 외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QR코드 결제 서비스
그 외에도 일본의 2대 통신사 NTT docomo와 KDDI에서도 각각 ‘d페이(d 払い)’와 ‘au PAY’라는 스마트폰 QR코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통신사 휴대전화 요금을 지불할 때 적립된 포인트를 자사의 QR코드 간편 결제 시 사용할 수 있다. (한국의 통신사 멤버십 포인트 체계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E. 정리
일본의 주요 QR코드 결제 서비스의 혜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4. QR코드 결제 서비스의 장단점
다음으로 QR코드 결제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QR코드 결제의 장점 1.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간편히 결제 가능!
스마트폰만 있으면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더 이상 무거운 장지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카드로 결제할 때 카드 리더기에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눌러야 하는데, QR코드로 결제하면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완전한 비접촉 결제가 가능하다.
2. 포인트 적립 혜택
QR코드 결제를 사용하면 결제금액에 비례해서 포인트가 적립된다. 예를 들어 포인트 적립률이 5%라면, 만 원짜리 물건을 샀을 때 소비자에게 500원 상당의 포인트가 적립되는 것이다. 적립된 포인트는 다음 결제 시 사용할 수 있으며, QR코드 결제 업체가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활용 가능하다. 이용 횟수와 이용액이 커질수록 포인트의 적립률이 높아지는 캠페인도 자주 진행한다.
3. 트렌디하고 모던한 모습을 어필 가능(!)
계산대에서 장지갑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순간, 신기술에 수용적인 트렌디한 현대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고 MZ세대와도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QR코드 결제의 단점 1.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스마트폰을 깜빡하고 집에 두고 왔다든지, 배터리가 다돼서 폰이 꺼졌다든지, 네트워크 연결 상태가 불안정해 인터넷이 안 터지는 등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는 당연히 QR페이 사용이 불가하다. 또한 스마트폰 분실 시 쉽게 도용의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QR코드 결제 이용자라면 평소에 스마트폰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2. 이용 가능한 QR코드가 가게마다 다르다
QR코드 결제를 도입하는 점포수가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워낙 단기간에 여러 종류의 QR코드 결제 서비스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다 보니 아직 가게마다 사용 가능한 QR코드 페이 종류가 다 다르다.
어떤 곳은 페이페이와 라쿠텐 페이는 사용 가능하지만 라인 페이는 사용 불가하며, 어떤 곳은 라인 페이는 되는데 라쿠텐 페이는 안 되는 등 아주 난장판이다. 그렇다고 각 회사에서 제공하는 QR페이 앱을 다 다운로드받으려니 핸드폰 용량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5. 마무리
코로나19를 계기로 급성장한 일본의 QR코드 결제 시장은 지금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다. 소프트뱅크를 비롯한 일본의 IT/통신/인터넷 대기업들이 간편 결제 시장의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아직 시장을 압도할 만한 최강자는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최고의 전사들이 벌이는 박터지는 전쟁 속에서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로 살아남을 것인가. 쇼미 더 머니, 아니 쇼미 더 코드 배틀에서 우승할 최후의 1인은 누가 될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원문: Moonlight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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