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라인>에서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쯤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라 불린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두꺼운 팬층을 자랑하며, 그의 공연은 1~2분 만에 표가 매진될 정도로 큰 인기다. 이 정도면 세계적 ‘엄친아’에 천재라고 불리는 게 당연할 것이다.
무대 위에서 그는 한없이 섬세하기도 하고 폭풍처럼 열정적이기도 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수줍고 겸손한 매력 또한 갖고 있었다. 최근 <뉴스라인> 인터뷰에서 앵커가 차기 쇼팽 콩쿠르 본선에 오른 선, 후배분들께 한 말씀 부탁한다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참으로 놀랍다.
제가 할 수 있는 조언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콩쿠르 나갈 때 200%를 준비했어요.
200%를 준비해야,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에 100%가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런 후, 잘되길 기도하며 운을 바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 조성진, KBS 1TV 뉴스라인 인터뷰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저렇게 타고난 천재도 100%를 발휘하기 위해 200%를 준비했던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차고 넘치게 채운 후에도, 부디 행운이 나에게 따라주길 간절히 기도해야 100%가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다고 한들, 당일 날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한순간에 결과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콩쿠르 당일날, 긴장해서 암기한 악보를 갑자기 까먹거나, 손가락이 땀에 미끄러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실수조차도 대응할 수 있도록 평소에 200%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방법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알다시피, 운이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한들 때로 하늘은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며 가혹한 시련을 안겨줄 때도 있다.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 한들 어차피 성공은 운에 따라 결정된다면, 어차피 ‘될놈될 (될 사람은 되게 돼 있다)’이라면, 굳이 힘들게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연스레 자신의 노력보다 운에 더 기대를 걸어 보게 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신을 탓하기보다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게 마음이 조금 더 편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왜 되는 것이 없을까. 왜 내가 원하는 것은 이뤄지지 않을까 실망하고는 한다.
그런 나에게 조성진 씨의 인터뷰는 큰 울림이 됐다. 천재도 100% 발휘를 위해 200%를 준비한다면, 지극히 보통 사람인 나는 300%를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 안된다고 실망하기 앞서, 30%도 겨우 준비하면서 나머지 70%는 운으로 채워지길 바랬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또한, 천재도 200% 준비한다는 말이 살짝 위로가 되기도 했다. 만약 그가 ‘저는 준비 하나 없이도 100%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같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게는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천재도 실수를 하고,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들도 노력을 한다. 그것도 몇 배로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진정한 비법일지 모르겠다.
원문: 켈리랜드의 브런치
이 필자의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