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초에는 각 회사마다 승진 발표가 있다. 뜻밖의 소식이거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사람에게는 이보다 기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될 것이라 기대했으나 승진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참담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올림픽 메달을 발표하기라도 하듯, 승자에게는 스포트라이트와 환희가, 패자에게는 절망과 우울함이 밀려온다. 내년을 다시 기약해야 하나? 아니면,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인가? 이게 내 길이 아닌가? 아니, 내가 잘하는 게 있긴 한 것일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마땅한 비난의 대상을 찾을 수 없다 보니, 결국 무기력한 자기 비하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늘 그렇듯, 자기 비하는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 또한 직장생활을 15여 년 남짓 하다 보니, 연달은 승진도 해봤고, 반대로 연이은 탈락의 아쉬움도 경험해봤다. 그동안 승진의 희로애락을 경험해보고, 어느덧 멤버들의 승진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되고 보니, 이제 승진에 대해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승진의 비밀을 나눠보고자 한다.
내가 잘하는 것과 회사가 원하는 것이 맞아야 한다
매년 초 회사에서는 기조를 발표한다. 올해는 ‘모바일 원년이 될 것입니다’ 또는 올해는 ‘AI 본격 도입을 실행할 것이다’ 등등 여러 비전을 제시한다. 이런 말들을, 의례적으로 연초에 하는 덕담처럼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승진을 노린다면 회사의 기조발표에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이는 회사가 올 한 해 어떤 방향에 힘을 실어줄지, 그리고 어떤 인재가 중용될지에 대한 발표이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업무가 관련이 덜하다고, 뒤로 물러나 있으면 안 된다. 회사의 기조와 어떻게 연계시킬지, 내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항해에 비유해보자. 회사가 올해 ‘우리는 동쪽으로 갈 겁니다!’라고 선원들을 재배치하고 깃대를 올리고 있는데, 나 혼자 서쪽으로 갈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해보자. 당신이 기존에 얼마나 열심히 노를 저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회사는 ‘지금’ 동쪽으로 가는데 기여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당장 하던 일을 그만둘 필요는 없다. 하지만, 뱃머리가 어디를 향하는지를 상시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
회사에서 서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일도 자세히 살펴보면 교집합이 있는 경우가 많다. 관련 부서 담당자와 가볍게 티타임(tea time)을 하며, 어떤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 제안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배가 클수록 한 번에 방향을 바꾸기 쉽지 않기 때문에, 방향이 전환되는 과정에 여러 기회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꼭 승진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회사의 비전과 내 비전이 맞을 때,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크고 작은 기회를 많이 갖다 보면 성과를 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마치 권투선수가 작은 잽을 여러 번 날리다, 기회가 왔을 때 강력 KO 펀치를 날릴 수 있듯이 말이다.
좋은 성과는 큰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면 되고, 실패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면 된다. 결국 내가 잘하는 것, 잘 해낼 수 있는 것을 회사의 비전과 맞춰나가는 것이 성장의 핵심이다.
궁합이 맞는 리더를 만나야 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한들, 인사권을 가진 내 직속 상사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일 수 있다. 성격이 급하고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는 팀장에게, 보고가 늦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직원은 답답해 보이고 자칫 무능해 보일 수 있다.
반대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개선안을 제출해도, 변화에 대한 리스크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팀장에게는 제대로 받아들여질 리 없다. 또한, 서로 성향이 맞다고 해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그에게는 우선순위가 낮은 일일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상사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성향도 잘 맞고 당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상사와 일하고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운아다. 반대로 내 가치를 몰라주고 심지어 무시하는 상사와 일할 때의 좌절감과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연히 승진은 먼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럴 때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상사도 결국 회사란 조직에 속한 구성원이다. 상사도 그의 직속 상사에 의해 평가를 받고 승진이 결정된다. 당신이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일단 내가 옳고 나를 몰라주는 상사는 나쁘다는 공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개인 문제로 치부하면 답이 없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팀장은 기차로 가길 원하고, 나는 자가용으로 가길 원한다고 해보자. 둘 다 장단점이 있고, 꼭 어느 것이 맞다고 할 수 없다. 알고 보면 의사결정 시 팀장도 본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회사 여러 부서의 입장, 주어진 예산과 일정, 그리고 본인의 직속 상사와의 관계 등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
세부사항에 대해서도 일일이 팀원들에게 설명하기 힘들고, 다수결로 의사 결정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이럴 때 무조건 내 의견을 포기하고 ‘예스맨 (yes! man!)’ 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팀장 입장에서도 오히려 이런 직원들은 매력이 없다.
기차로 부산에 가길 원하는 상사에게 자가용으로 갔을 때의 장점을 설명한 후, 기차로 가면서도 자가용을 선택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장점 몇 가지를 옵션을 제시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모두가 한 번에 같이 이동하기보다는, 3~4명씩 소규모로 나누어 유연한 시간대에 출발하고 희망하는 기차역에 정차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또는 선발대를 별도로 조직해, 선발대는 자가용으로 먼저 이동 후 도착지에서 식당이나 관광명소를 물색해 놓겠다고 제안해도 좋을 것이다.
내 직속 상사는 장애물이 아니라, 내가 성장하기 위한 디딤돌이라 생각해야 한다. 팀의 리더로서 그 사람의 위치와 역할을 존중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
크게 생각해보면, 내 직속 상사가 인정받아야 우리 팀 업적도 빛날 수 있다. 일종의 팀플레이인 셈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윈-윈(win-win) 할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노력해야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그것이 결국 내가 승진하기 위한 패스트 트랙(fast-track)이 되어줄 것이다.
어쨌든 순풍이 불어줘야 한다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의 관중을 압도하는 놀라운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이 기량이 한참 떨어진 러시아 선수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사건을 떠올려보자. 김연아 선수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불공정한 심판을 만난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금메달을 못 땄다고 해서, 김연아 선수가 초라해지거나 경기를 못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가 인정하는 최고의 금메달은 김연아 선수였다. 그녀의 퍼포먼스가 그것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승진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회사의 기조에 맞춰 열심히 일했고 상사와도 궁합도 잘 맞는데도 불구하고, 승진이 안 될 수 있다. 잔인하고 안타깝지만 그럴 수 있다. 회사에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따위란 없다. 모든 여건이 다 갖춰졌다 생각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뒤집어지거나, 뜻밖의 상황으로 승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요소에 크게를 의미 부여하기보다는 올해 스스로 배우고 성장했다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자. 직장상사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가 인정해준다면 그것만큼 기쁘고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다.
앞서 말한 항해에 비유하자면, 결국 직장 생활은 파도타기와 같은 게 아닐까? 순풍이 불면 앞으로 나아가면 되고, 역풍이 불면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안되는 상황에서 아등바등하기보다는, 잠시 힘과 에너지를 아껴두었다가 다시 순풍이 불 때 힘껏 위로 솟구치면 된다.
그런데, 남들보다 빨리 간다고 좋은 것일까?
여전히 나는 매년 초가 되면 승진을 기대하고 있는 수많은 직장인 중 한 명이다. 우리는 조기졸업, 조기 승진 등 남들보다 빨리 가는 것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승진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나름 깨달은 것은 있다면, 남들보다 빨리 간다고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파도와 바람의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내가 상황을 조정할 수 없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착실히 해나가면 된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스스로 단단히 지탱할 수 있도록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이다. 파도가 일렁일 때 무너지지 않을 방향 감각과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진짜 기회가 왔을 때, 쭉쭉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내 삶은 이 회사가, 오늘의 승진이 끝이 아니다. 분명 기회는 온다. 세상은 생각보다 꽤 공평하다는 것을 믿어보자!
원문: 켈리랜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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