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스스로 가장 반성한 순간은 아직까지 한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일 잘하는 한 후배에게 ‘전공이 XX과라면서요?’라고 물어본 일이죠. 당황하던 후배는 아니라고 황급히 말했고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머뭇거렸습니다.
지난 몇 년간 브런치를 통해서 출신으로 회사 내 서열이 만들어지고 라인이 만들어지는 것을 대차게 비판했던 저도 ‘후광(Halo) 효과’ 내지는 편향을 떨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뭐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 전공과 관련된 업무 영역을 너무 잘해서 무심결에 격려하려고 그런 말을 했는데, 생각해보면 격려가 아닌 ‘K-꼰대’ 그 자체가 될 뻔했단 생각이 드네요.
팀장으로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한동안 팀원들의 학력이나 경력을 모른 채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앞 사례와 달리(…) 평소에 특별히 그런 걸 사석에서 묻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정말 모른 채로 일로만 팀원들을 보고 피드백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앞선 사례가 나올 수 있었죠(…)
단지 무엇을 할 수 있다, 최근 무엇에 관심이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만 제가 팀원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였습니다. 그것대로 레벨을 생각해보고 그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일을 함께하는 것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하고 난 몇 개월 뒤 느낀 점은, 이렇게 해도 팀으로 일하는 데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죠.
한 때 ‘블라인드(Blind) 면접’이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실제 이렇게 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취지는 이 사람의 학력이나 배경을 보지 않고 실력만 보고 채용하겠다는 것이었죠. 사실 실력을 가늠할 때 면접장 몇 분간 말 잘하는 것 이상으로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이 사람의 기존 경력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단지 특정 대학교, 특정 전공이 지나치게 개입되는 게 문제란 생각은 있었지만요.
하지만 회사 생활을 일정 기간 이상 하면서 후광 효과 내지 출신에 대한 편향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조직에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잘해 보이는 것, 더 큰 일을 맡기는 것, 더 나은 상대 평가를 부여하는 것이 모든 애매한 암묵지를 파고들며 성과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고 그 사람들끼리의 카르텔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블라인드 면접으로 사람을 뽑아도 시간 지나면 서로 출신 다 알고, 그게 건전한 융합이 아닌 새로운 계급을 만드는 게 상대평가 조직의 관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서로 모른다면 단지 저 사람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관심을 둔 중이고, 앞으로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정도 안다면 일하는 데 큰 문제 될 게 있나 싶은 생각이 요즘은 듭니다. 물론 전문성이 꼭 보장되어야 하는 일은 있죠. 그렇지만 간판이 꼭 전문성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게 있기도 합니다.
연말에 혼자 반성을 하면서 앞으로 더욱 사람 출신 안 봐야겠다, 묻지도 말하지도 말아야겠다 다짐했습니다. 뭐 어쩌다 알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건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해야죠.
얼마 전에 경력직 면접에 면접관으로 들어갔던 회사 선배가 10년 차 경력자의 대학교 복수전공과목 조합을 의아해하며 질문한 게 생각났습니다. 왜 이 과목에 이 과목을 복전을 했냐, 너무 비슷하지 않냐, 이런 말이었죠.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분을 경력으로 뽑는데 왜 그게 궁금했을까요. 아직 우리는 사람을 실력으로 보고 실력으로 평가할 내 실력을 갖추는 게 너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 이야기지만 제 이야기하듯 글과 삶이 비슷하게라도 가는 시간들이 또 되었으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원문: Pet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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