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는 당신의 과거보다 아름답다
우리 뇌는 현재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긍정성(positivity)보다는 부정성(negativity)에 더 민감하게 진화되어 왔습니다. 부정적 사건에 과잉반응해야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수렵 채집활동을 하는 고대의 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이 사람의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토끼와 같은 먹잇감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포식자로 가정하고 경계를 강화하는 것이 더 생존에 유리했을 것입니다.
부정성은 긍정성보다 훨씬 힘이 셉니다. 8개월 된 아기도 개구리보다는 뱀 그림을, 행복한 얼굴보다는 슬픈 얼굴을 더 오래 주의 깊게 바라봅니다. 다섯 살 아이에게 여러 얼굴들을 보여주면 행복한 얼굴보다 슬픈 얼굴을 더 빨리 찾고, 슬픈 얼굴보다는 두려운 얼굴이나 화난 얼굴을 더 빨리 찾아냅니다.
우리가 부정성에 민감한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맛있는 음식에 벌레 한 마리가 있으면 음식 전체에 불쾌감이 전이되지만 벌레 사이에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해서 벌레에 쾌감이 전이되진 않습니다. 온라인에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긍정적 댓글보다는 부정적 댓글에, 동료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칭찬보다는 비판에, 투자에 있어서도 이득보다는 손실에 훨씬 민감한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일어난 과거의 부정적 사건에는 다른 심리적 기제가 작동합니다. 과거를 회상할 때는 부정적 사건조차도 아름답게 채색되어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나쁜 사건은 좋은 사건에 비해 즉각적으로는 더 강력한 반응을 일으키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쁜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 정서는 좋은 사건으로 인한 긍정적 정서보다 더 빨리 사라집니다. 부정 정서의 효과가 긍정 정서의 효과보다 더 빨리 사라지는 현상은 우울증 환자를 제외한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납니다. 심리학에선 이러한 경향성을 정서 퇴색 편향(fading affect bias)이라고 합니다.
자기 과거에 관해 긍정적 환상을 갖는 이유 역시 진화적으로 더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좋아해야 더 잘 돌볼 수 있습니다. 또한 무리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기 능력이나 매력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표현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선 낙관성 편향(optimism bias)이 쉽게 나타납니다. 부부에게 집안일을 담당하는 비율을 물어보면 항상 100을 초과합니다. 부부 모두 자기희생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별 구성원의 성과기여도를 모두 더하면 항상 100을 초과하기 마련입니다.
정리하면, 우리 뇌는 현재 벌어지는 일에 있어서는 부정성에 민감하지만 과거의 나쁜 일에 관해서는 고통을 줄이고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심리적 기제가 작동합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상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강화한다는 데 있습니다.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한 적이 있냐고 물으면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부모들은 아이가 새벽에 몇 번씩 깨고 보채고 열이 나서 병원에 데려간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에 후회한다고 답변합니다. 그런데 장성한 자녀를 둔 부모에게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지 물으면 후회한다는 답을 듣기 쉽지 않습니다.
장성한 자녀를 둔 부모에게 아이의 유아 시절 육아의 고통은 어느새 추억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힘들고 아픈 과거는 특별한 단서가 없으면 인출하기 어려운 뇌의 어딘가로 옮겨져 있어 쉽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꼰대(?)들의 20대는 30대들의 20대에 비해 더 화려합니다.
‘라떼는 말이야’는 과거의 진실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화려하게 편집되고 재구조화된 기억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라떼는 말이야’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라떼는 말이야’를 자신뿐 아니라 주변 관계와 조직 생활에 더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번 시간엔 리더의 ‘라떼 활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라떼는 말이야’는 필요하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수전 블룩(Susan Bluck) 교수와 괴테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교 심리학과 틸만 하베르마스(Tilmann Habermas) 교수는 사람들이 자기 과거에 관한 회상의 힘으로 자기 능력을 개발하고 스스로 동기부여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묘사하는 방법을 배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아이들에게 스스로에 대해 얘기하라고 하면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는 수준에서 그친다는 겁니다. 이에 비해 어른들은 자기와 관련된 의미 있는 사건들을 구조화할 수 있는데, 인생의 여러 사건 중 자기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주제를 인지하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에 의미 있는 사건을 떠올리고 얘기할 수 있으려면 상당한 수준의 인지능력이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라떼’는 고차 인지의 결과물입니다.
한편 노스웨스턴대학교 심리학과 댄 맥아담스(Dan McAdams) 교수는 스스로 운이 좋고 특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에 관한 얘기를 하는 데 있어 특별한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린 시절 불행한 사건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과 달리, 자긍심과 배려심이 높았던 이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고통을 준 사건에 이어 고난을 딛고 극복한 노력을 얘기했습니다.
이들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이유에 관해 묻자 이 사람들은 교훈을 상기하고 스스로 동기부여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일례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은 연습에 지칠 때마다 농구팀 입단에 실패했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을 떠올린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운동을 하고 피로감이 몰려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눈을 감고 라커룸에 붙어 있었던 농구팀 명단을 떠올린다. 내 이름이 빠져 있었던 명단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다시 연습하게 된다.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들은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고 과거의 성공을 떠올리면서 자신감을 북돋웠으며 과거 의사결정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선택을 하고 과거 자기 행동을 통해 현재 자기 삶을 더 잘 이해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자기 삶에 충실하면서 주변을 돌보고 스스로 동기부여 하기 위해서 ‘라떼’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도움이 되는 라떼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 노력이 필요합니다.
리더의 ‘라떼’ 활용법
1. 다른 사람의 ‘라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흔히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만 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다릅니다. 나보다 잘된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이 나보다 비참한 사람을 격려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친구나 동료가 잘되는 걸 함께 기뻐하지만 본인보다 잘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특히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노력한 분야에서 자기보다 친구나 동료가 더 잘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으로부터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조직에서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 술 한잔 함께 하며 건네는 위로는 쉽지만, 누군가의 성취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UCLA 심리학과 셸리 게이블(Shelly Gable) 교수 등은 기쁨을 나누는 과정에서 얻는 긍정 정서와 삶의 만족, 사회적 지지 등의 이득이 슬픔을 나누는 과정에서 얻는 이득에 비해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조직에서 진심으로 기쁨을 나누는 관계가 슬픔을 위로하는 관계보다 더욱 큰 심리적 자산(Capitalization)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직 내에서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관계는 서로의 성공을 돕고 지지하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따라서 리더는 타인의 ‘좋은 라떼’를 기꺼이 축하하고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조직의 심리적 자산을 키울 수 있습니다.
2. ‘겸손한 라떼’를 시도해야 합니다.
타인의 ‘좋은 라떼’는 응원하되, 자기 ‘라떼’는 실패와 같은 부정적 사건에 기반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한 맥아담스 교수의 연구에서처럼 삶에 충실한 사람들의 ‘라떼 스토리’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실패나 고통, 좌절을 준 사건과 해당 사건을 대하는 자기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순서입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핵심 사건과 줄거리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겸손한 라떼’를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우리의 라떼’가 필요합니다.
낙관성 편향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 집단으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스포츠 팬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하지 못한 수많은 시즌보다 우승한 시즌을 훨씬 더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해당 팀에 대한 의리 때문만이 아니라, 단 한 번 승리의 순간을 기억하고 같은 팬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같은 팬이 아니어도 기쁨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한화 이글스 팬이 있다면 우승한 시즌에 대해 지나가는 말로 한 번 물어보세요. 장담컨대 종일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얘기하다 신나서 밥도 사줄 수 있습니다.
사우스햄튼 대학교 심리학과 콘스탄틴 세디키디스(Constantine Sedikides) 교수는 과거의 기억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선행 향수(anticipatory nostalgia)’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세디키디스의 연구에 따르면 직원들이 회사 이벤트에 관한 기억이 많을수록 이직을 생각하면서 다른 직장을 탐색할 확률이 낮았습니다. 미래에 우리가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는 이벤트는 조직 내 ‘우리의 라떼’가 됩니다.
4. 과거를 소중히 여기되, 비교는 자제해야 합니다.
‘라떼는 말이야’가 ‘그때가 좋았지’로 바뀌는 순간, 후회의 감정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상실감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생각을 통제해야 합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좋은 이점들이 후회나 상실로 퇴색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적어도 조직 내에서는 쓰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해야 합니다.
이번 시간엔 리더의 ‘라떼 활용법’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나의 과거는 당신의 과거보다 아름답다’를 넘어서 나의 과거와 당신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과거를 더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심리학의 지혜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