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히스테리를 느끼는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80년대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다.
1979년생인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보냈던 1980년대를 기억한다. 88 올림픽 개막식을 아빠와 함께 간 동네 목욕탕에서 봤던 기억도 생생하다. 우리가 대학 입학할 때 즈음 세상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어갔고, IMF를 거치며 우리 사회도 기업도 빠르게 변했다. 그런 세대기에 알 건 다 알지만, 그래도 나는 ’80년대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어른이 싫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는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어른을 꼰대라 부르기 시작했다. ‘라떼는 말이야’ ‘Latte is horse’로 바꿔 표현하기도 한다. 꼰대 개념은 상대적이다. 나이 쉰 넘긴 이들이 나에게 꼰대가 될 수 있다면, 나 역시 90년대생들에게 꼰대가 될 수 있다.
대개 꼰대로 몰리는 세대는 이렇게 항변한다. “나 때는 그렇게 배웠어. 그러니 이해해줘.” 젊은 세대는 말한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강요하지 말아요.” 둘 간의 대화는 이처럼 마침표가 없는 도돌이표와 같다.
가만히 ‘왜일까?’ 생각해본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과거를 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해도 변하지 않는 과거를 말하니 말을 하는 쪽이나 듣는 쪽 모두 답답할 수밖에.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이 10년 후의 ‘라떼’일 텐데, 그때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오늘 나의 ‘라떼’가 안녕한지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라떼는 안녕한가요?
지금 A팀장이 10년 후 2030년에 임원으로 승진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신입 팀장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지 않을까? ‘내가 팀장 했던 2020년에는 말이야…’ 느낌이 오는가? 그렇다. A팀장에게는 2030년의 ‘라떼’인 2020년의 오늘이 중요하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는 충분히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도, 경력을 한창 쌓는 30대도, 매니저 경력을 쌓기 시작한 이들까지 모두 해당한다. 지금 나의 직장 생활을, 나의 커리어를 어떻게 가꿔 나가는지에 따라 10년 후의 ‘라떼’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나의 ‘라떼’가 안녕한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이런 소리가 들린다.
과연 가능할까? 뭘 해도 세대 차는 극복할 수 없을 거야. 결국 나이 들면 다 꼰대 아니야?
한계가 분명하다는 말에 너무나 공감한다. 얼마 전 예능 프로인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여중생의 말처럼 어른이 되면 누구나 꼰대가 되고, 세대 차이는 좁히는 게 아니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꼰대가 되기 싫다면, 두 손 두 발 놓을 순 없다면, 범위를 직장으로 좁혀 접근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직장에서 나의 ‘라떼’가 안녕하도록 노력할 수 있는 세 가지 변화를 생각해봤다. 부디 이 글이 또 다른 꼰대와 같은 글이 되지 않길 바란다.
1. 내가 주도했던 ‘라떼’로 만들어보자
거꾸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꼰대가 하는 이야기에 학을 떼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라떼는 말이야’ 하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당시 시대 상황, 직장 상황을 핑계 삼으면서, 본인들이 경험한 것들로 ‘왜 너희는 못하니?’라는 식의 전개를 펼치기 때문이다. 책임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과거 답습을 요구하니 속에서 무엇인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그러면 내가 주도했던 ‘라떼’로 만들어보자는 얘기는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선택과 결정에 있어 내 의지를 반영해보자는 것이다. ‘부서 분위기가 이러니까…’ ‘다들 그러니까…’라는 핑곗거리 말고 나만의 명확한 기준으로 선택의 연속인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B과장이 대리 시절 얘기를 꺼낸다고 생각해보자.
나 때는 말이야 전사 프로젝트팀에 개념이 없이 대리 나부랭이가 지원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어. 그러니 여러분도…
자신이 주도했던 ‘라떼’라면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까?
나 때는 말이야 전사 프로젝트팀 지원을 받았는데, 정말 놓칠 수 없는 기회여서 지원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지. 그러니 여러분도…
주위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주도했던 ‘라떼’를 겪은 이를 꼰대로 치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2.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자.
꼰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경우에도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으면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내 경력의 기승전결을 안다면 그게 바로 나만의 스토리가 있는 것이다. 스토리가 있는 사람은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마케팅팀 C 팀장이 있다고 하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과장 시절 아침 일찍 30분씩 신문 읽는 것에 투자했고, 실제 여러 히트 상품을 개발했다. 그가 후배 과장에게 ‘나 때는 말이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아침 일찍 신문을 봤다고…’라고 얘기했을 때, 그의 성공담을 아는 후배라면 무턱대고 꼰대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자신만의 스토리는 자신을 소개할 때 자주 언급하는 이야기다. 나만의 스토리를 짧게 적어봤다.
저는 학부 때 전자공학을 전공했어요. 대학 들어와서야 문과 체질이란 걸 알았고 당시 싸이월드 페이퍼에서 글을 발행하기도 했죠.
결국 첫 직장도 전공보다는 적성을 살려 언론 담당으로 일했습니다. 회사와 제품을 알리려면 제가 그만큼 회사, 사업, 제품에 대해 잘 알아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회사가 전반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죠. 자연스럽게 경영, 전략, 기획에 관심이 생겼고 좋은 기회가 생겨 일본에서 MBA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컨설팅팀에서 힘들지만 각 사업부의 영업 역량 강화 프로젝트를 수행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MBA를 하면서 외국계 기업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마침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해 전략기획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글로벌 회사의 탄탄한 프로세스와 유연한 기업문화에 대해서 경험할 수 있었죠.
다만 한국법인의 한계와 성장이 정체된 문제로 고민하던 차에 노력한 결과가 바로 나오는 스타트업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하고자 했어요. 감사하게도 기회를 얻어 데이터분석컨설팅 회사에서 전쟁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날마다 보람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위와 비슷한 이야기를 백 번 이상 했던 거 같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누군가 내 경력을 물어볼 때도, 여러 사람 앞에서 내 소개를 할 때도, 면접 때도, 신입 직원이 들어왔을 때도 말이다. 그리고 백 번 넘게 얘기했더니 자연스럽게 나만의 스토리가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나의 ‘라떼’를 얘기하면 내 스토리를 동시에 떠올리며 듣는다. 그래서 따로 떼서 들으면 꼰대처럼 들릴 이야기도 스토리를 알고 들으니 오해하지 않고 이해한다.
3. 세대를 관통하는 ‘라떼’를 만들자.
꼰대가 자신보다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요구하거나 이해를 강요한다고 여겨지는 건 왜일까? 서로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어떤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많은 것을 하기보다 지금 세대를 아우르며 보내면 어떨까?
직장에서 동기와 비슷한 나이의 직원들하고만 친하게 지내기보다 임원부터 신입사원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친하게 지내보자. 시간이 별로 없다. 조금 더 지나면 젊은 직원들이 당신을 부담스러워할 나이가 될 테니 말이다. 미래의 ‘라떼’인 지금의 순간순간을 여러 세대와 함께 소통했던 시간으로 채운다면 앞으로 꼰대로 불릴 확률도 많이 내려갈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변화를 얘기했지만 꼰대 탈출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세대 차이는 노력으로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두 자녀를 키우지만 누군가 말했다.
Z세대는 그냥 세대가 다른 게 아니라, 국적이 다르다고 생각하라.
그럼에도 내가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해서라도 젊은 세대가 좋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원문: Mark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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