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이라는 개념이 있다. ‘액자’를 뜻하기도 하는 이 단어는 ‘관점의 틀’로 해석된다. 쉽게 말해 어떤 생각을 액자 안에 가두는 것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자신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다.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반사적으로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의 함정이다.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닉슨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저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 전 국민이 그를 ‘거짓말쟁이’로 생각하게 됐다. 또 다른 예가 있다. 참여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자 보수신문은 “종부세 폭탄”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종부세 납부 대상이 1% 미만에 불과함에도 ‘종부세=폭탄’이라는 프레임을 만듦으로써 종부세가 나쁜 세금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다.
같은 맥락에서 ‘기레기’라는 프레임도 언론의 본질을 흐리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기레기’ 지칭은 일부 연예부 기자로부터 시작됐을 뿐이다.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악플을 유도하는 기사를 써서 연예인을 자살로까지 내모는 ‘기레기’가 실제 존재한다.
하지만 연예 기사는 언론사가 생산하는 전체 기사 중 극소수의 양을 차지한다. 보통의 기자들은 사회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사를 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제 거의 모든 기사를 쓰레기처럼 생각한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기레기’ 프레임을 씌워 가치를 폄훼한다. ‘기레기’라는 프레임에 갇힌 탓이다.
이제는 ‘안티 꼰대’가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면서 ‘꼰대’ 프레임에 갇힌 모습이 종종 보인다. 이제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사람은 ‘꼰대’ 취급을 받는다. ‘꼰대’의 프레임 속에서는 ‘스승’의 가치가 폄훼된다. 스승은 가르침을 주며 인도하는 사람이다. 꼰대는 “나 때는 말이야”로 말을 시작하며 자신의 방법을 강요하는 사람이다. 전달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은 목적이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이나 ‘개통령’이라고 불리는 강형욱은 ‘꼰대’일까, ‘스승’일까.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각각 요리, 반려동물 트레이닝이라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이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자신의 경험을 앞세워 타인과 비교를 하며 훈계하는 모습은 꼰대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꼰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달 방식이다.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 말한다. 청자의 눈높이에 잘 맞춘 화법을 구사한다. 공감한다는 말을 던짐으로써 따뜻한 느낌도 추가한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랑의 의도가 없다는 점이다. ‘꼰대’는 확실히 그 말속에 자기 자랑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보면 자기 자랑의 의도는 거의 없고, 무언가 도움을 주려는 의지가 보인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꼰대’와 ‘스승’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자기 자랑을 일삼고 후배들을 깔아뭉개려고만 하는 극단적인 ‘꼰대’는 여기서 제외한다. 그런 게 아니라면, 무언가 알려주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 ‘꼰대’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회사에 ‘꼰대’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회사는 늦게 입사한 사람이 먼저 입사한 사람에게 업무를 배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배가 무엇을 알려주는 것을 ‘사수’의 개념에서가 아닌, ‘꼰대’의 개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 선배의 전달 방식이 백종원이나 강형욱만큼 세련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까지 ‘꼰대’로 취급해버리면 ‘스승’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
‘꼰대’를 배제하려다 보니 역설적으로 ‘스승’이나 ‘멘토’를 향한 갈증이 심하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스승은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내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천재에게도 스승이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성장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스승의 역할이 중요하다. 스승은 내가 가려는 길의 세부적인 방향을 조정해줄 수 있고, 그 길을 빠른 속도로 통과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물론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좋은 스승보다는 나쁜 스승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스승은 폭력적이었을 수도 있고, 사람을 차별했을 수도 있고, 제자의 꿈을 짓밟았을 수도 있다.
선생님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일생의 길목마다 좋은 스승이 한 분씩은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나 교수님이었을 때도, 학원 선생님이나 과외 선생님이었을 때도 있다. 전체 비중으로 봤을 때는 안 좋은 스승이 더 많았지만, 좋은 스승 한 명이 다른 조건을 보완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스승은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금융에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누군가의 도움을 빌려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모든 스승이 좋을 수는 없지만, 자신만의 좋은 선생님은 어딘가에 있다. 나에게 도움을 주려 다가오는 스승도 있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할 때도 있다. 내가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면, 어디선가 그들이 나타난다.
꼭 나보다 나이가 많아야 할 필요도 없다. 내가 하지 않은 경험을 먼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승이 될 수 있다. 요즘에는 스승을 꼭 오프라인에서 만날 필요도 없다. 온라인에서도 얼마든지 스승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자신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유튜브 공간에서는 스승으로 삼을 만한 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신이 특정한 프레임에 갇힌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프레임을 씌워 배척하진 않았는지 나부터 반성해본다. 그동안 프레임의 함정에 빠져 생각보다 많은 것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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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슈뢰딩거의 나옹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