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맛있게 먹는 법은 ‘좋은 방법으로 잘 굽는 것’을 알아야만 가능합니다. 앞서 부위 편, 두께 편, 그 외 편, 실전 편을 통해서 좋은 삼겹살 원육을 고르는 법을 알아봤습니다. 좋은 삼겹살을 골랐으니 이제는 삼겹살 맛있게 굽는 법을 알아볼 차례입니다. 온도 편에서는 마이야르가 시작되는 온도 177도에 대해서 알아보며 불판의 온도가 200~220도 정도로 세팅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오늘은 삼겹살 굽기의 최대 난제, 몇 번 뒤집을까에 대해 알아봅니다.
다음은 시간이 없는 분을 위한 오늘의 한 줄 요약입니다: 두껍다면(2cm 이상) 여러 번 뒤집어가면서 잘 익히고, 일반적인 두께(0.7cm)라면 한 번 뒤집어도 충분히 익힐 수 있으나 불안하다면 여러 번 뒤집어도 괜찮습니다.
삼겹살은 한 번만 뒤집으라고요?
맛있는 삼겹살이란 어떤 삼겹살일까요? 아마도 육즙이 제대로 살아있어 팡팡 터지는 삼겹살 아닐까요? 너무 많이 구워서 뻑뻑해지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안 익혀서 질겅거리지도 않게 딱 잘 익은 삼겹살 말입니다. 어떻게 구우면 그런 육즙이 살아있는 잘 익은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걸까요.
삼겹살은 우리나라의 쏘울 푸드이므로 삼겹살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다들 나름대로 자기만의 ‘삼겹살 굽는 비법’ 혹은 ‘굽기 신조’ 같은 게 있습니다. 그중 가장 널리 통용되는 믿음은 ‘삼겹살은 한 번만 뒤집어야 맛있다’입니다. 예전에 제가 다녔던 회사 부장님도 회식 때마다 꼭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부장님, 그렇게 하면 진짜로 육즙이 살아있는 삼겹살 먹을 수 있는 건가요?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리자면, 굳이 ‘한 번’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cm 정도 이상의 두꺼운 삼겹살은 여러 번 뒤집어가면서 잘 익혀주면 육즙이 팡팡 터지는 삼겹살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삼겹살을 몇 번 뒤집을지는 원육의 두께에 따라 결정됩니다. 최근 유행처럼 도톰한 삼겹살(1.5cm~2cm)을 굽는 경우라면 여러 번 뒤집어 주면서 속까지 잘 익혀주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에 일반적인 두께(0.7cm)의 삼겹살을 굽는 경우라면 한 번 뒤집는 것만으로도 속을 익혀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렇다고 여러 번 뒤집어도 된다는 것이 불판의 열이 제대로 전달될 새도 없이 삼겹살을 선풍기처럼 5–10초에 한 번씩 계속 뒤집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 온 ‘한 번만 뒤집으라’는 미신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 번 뒤집는다는 것의 목적은 한쪽 면을 태우지 않고 속까지 잘 익히기 위함이지 덜 익히기 위함은 아니니까요. 여러 번 뒤집으시더라도 고기에 열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시간은 확보해주시길 바랍니다. 고기의 두께, 불의 화력 그리고 굽는 환경이 모두 상이하니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30초~1분 정도에 한 번씩 뒤집어 주시면 됩니다.
자주 뒤집으면 육즙이 빠진다고요?
한 번만 뒤집으라는 이유를 설명할 때 자주 나오는 이유가 육즙입니다. 자주 뒤집으면 삼겹살의 육즙이 손실되니 한 번만 뒤집으라는 말이죠. 하지만 한 번만 뒤집으나 여러 번 뒤집으나 육즙의 손실량은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팡팡 터지는 육즙은 오히려 심부 온도와 관계가 더 깊습니다. 심부 온도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 자세한 얘기는 다음 편에 하도록 하고요. 오늘은 여러 번 뒤집는 것과 한 번 뒤집는 것의 차이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요리 과학자이자 『더 푸드 랩(The Food Lab)』의 저자 J. 켄지 로페즈-알트(J. Kenji Lopez-Alt)가 동일한 부위, 동일한 시간으로 스테이크를 조리하되 한 고기는 한 번만 뒤집고 다른 고기는 여러 번 뒤집는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왼쪽의 한 번만 뒤집은 스테이크는 상대적으로 속이 균일하게 잘 익지 않은 반면 오른쪽은 상대적으로 균일하게 잘 익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켄지는 여러 번 뒤집어 주는 게 더 빠르고 골고루 익히는 방법이라 말했습니다. 게다가 먹어봤을 때 둘 사이에 맛의 차이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초보자들은 한 번만 뒤집을 경우 정확한 타이밍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주 듣는 실패 사례는 이게 지금 뒤집어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한 번만 뒤집으라고 했으니 마냥 기다렸다가 막상 이상해서 뒤집어보니 고기가 타 있더라는 것입니다. 초보자가 한 번만 뒤집기를 맹신하다가는 태워 먹을 위험이 농후합니다.
켄지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한 번 뒤집기가 성공했을 경우에도 맛의 차이가 딱히 없고 게다가 더욱이 초보자들은 태워 먹을 위험도 높다면 굳이 한 번만 뒤집기를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자주 뒤집는다고 육즙 빠지지 않으니 태우지 말고 잘 익혀 먹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럼 도대체 삼겹살은 왜 한 번만 뒤집으라고 한 거야?
‘삼겹살은 한 번만 뒤집어라’라는 미신은 아마도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삼겹살의 두께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닐까 합니다. 두께 편에서 말한 것과 같이 지금도 여전히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삼겹살의 두께는 0.7cm입니다. 0.7cm 삼겹살은 사실 초보자나 숙련자나 굽기 실력 차이가 확연히 나기 어렵습니다. 고기가 얼마큼 익는지 눈에 빤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삼겹살을 2cm 이상으로 두껍게 먹는 것이 흔치 않았으므로 삼겹살은 한 번만 뒤집는 것이 효율적이었을 것입니다. 두께가 0.7cm로 두껍지 않은 삼겹살은 대충 이 정도면 익었다 싶을 때 뒤집고 반대편마저 익혀주면 안 익는 부분 없이 속까지 잘 익힐 수 있습니다. 괜히 조급하게 뒤적거리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구워낼 수 있죠. 충분히 기다리다가 한 번만 뒤집으라는 뜻에서 이런 출처 불명의 미신이 나온 것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삼겹살을 작정하고 풍차처럼 돌리지 않는 한, 여러 번 뒤집는다고 맛이 없어지거나 육즙이 빠지거나 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삼겹살은 한 번만’의 미신에서 벗어나 마이야르 반응이 제대로 일어났는지(노릇노릇하게 색이 올라왔는지)만 확인하시고 마음 편히 뒤집어 주시면서 타지 않은 맛있는 삼겹살 드세요!
여기서 똑똑하신 분은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삼겹살 두껍게(2cm 이상) 해서 잘 익혀 먹고 싶은데 그럼 어떡하지?’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
참고
- J. 켄지 로페즈-알트 지음, 임현수 옮김, 송윤형 감수, 『더 푸드 랩』
- 가와테 히로야스 지음, 용동희 옮김, 『고기굽기의 기술』
- 시바타쇼텐 편집, 김선숙 옮김, 『고기마스터』
- 「Flip Your Steaks Multiple Times for Better Results」, The Food Lab
- ‘How Frequently Should you Flip a Steak?’, Steak Experi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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