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삼겹살, 노릇노릇 삼겹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삼겹살 사랑은 유별나다. 본격적으로 삼겹살을 먹게 된 건 80년대 후반부터고, ‘삼겹살’이 국어사전에 등재된 건 1994년의 일이라니 이토록 짧은 역사에 우리나라 식문화를 석권한 게 놀라울 따름이다(삼겹살이 인기인 이유와 그 밖의 사항은 c일보의 2007년 기사에 정리가 잘 되어 있다).
하지만 돼지 114kg짜리 한 마리를 잡았을 때, 삼겹살은 10.6kg(12.1%, 퍼센티지가 다른 이유는 114kg 전부가 고기가 아니기 때문)밖에 나오질 않는다. 이렇게 생산량이 적은 부위인 삼겹살엔 소비가 몰리고 반대로 생산량이 많은 저지방 부위엔 선호도가 떨어지다 보니 수급불균형이 굉장히 심하다. 오죽하면 저지방 부위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 이렇게 법까지 뜯어고치려고 하겠나. 여기에 구제역에 그에 따른 무분별한 수입까지 더해 요즘 양돈업자들이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번 글에선 삼겹살에 관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대패삼겹살
보통 돼지는 약 6개월 동안 105~115kg 정도로 자랐을 때 출하가 된다. 이 정도 자랐을 때가 육질 등 식용 고기로써 최상의 상태이기 때문이고, 육가공시설도 이 크기에 맞춰 세팅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새끼 출산이 목적인 어미돼지(모돈)는 건강한 새끼를 낳을 때까지, 보통 4, 5번 출산을 하고 식용으로 출하된다. 출하 시 무게는 보통 200~250kg. 그렇게 도축되는 모돈은 늙었고, 크고, 출산을 반복하며 체내 영양소도 많이 빠져나가는지라 고기가 질기고 냄새가 심하다. 그래서 1+등급, 1등급, 2등급이 아니라 ‘등급 외’ 판정을 받는다. 물론 저렴하다.
대패삼겹살이란 이름은 얼린 고기를 얇게 썰었더니 그 모양이 대팻밥 같이 말려있는 데서 파생되었지만, 그렇게 ‘얼린 고기’를 ‘얇게 써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앞서 말한 모돈의 고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육질이 나쁘고 냄새가 심하니 생고기를 유통하려 해도 할 수가 없고(그래서 얼려야만 하고), 또한 얇게 썰어야만 그 나쁜 질감과 맛과 냄새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모돈이 대패삼겹살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햄, 소시지 같은 가공육으로도, 일반 ‘값싼’ 식당에도 쓰인다). 물론 일반 삼겹살도 얼려서 얇게 썰면 되지만 그렇게 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다.
나는 이런 사실을 일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이미 2012년 3월경 JTBC <미각스캔들>이란 프로그램에서 ‘초저가 삼겹살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소개가 된 바 있었다. 동영상 볼 시간이 아까운 분들을 위해 한국일보와 미각스캔들 기사를 정리해보자면, 모돈은 다음과 같은 고기이다.
– 육가공업자 사이에서는 ‘딱통’으로 불리는데 ‘그냥 줘도 안 먹는 고기’로 통함
– 일반 삼겹살 두께로 썰어 먹으려면 질겨서 틀니를 껴야 할 것
–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심하고 고무 씹는 것처럼 질김
– 결국 상품가치가 거의 없는 질긴 돼지고기를 씹기 쉽게 얇게 썰어 ‘대패삼겹살’로 포장해 판매
미추리
월간 한돈(로그인해야 함. 회원가입은 무료)을 읽다 보니 ‘독일이 고가 삼겹살 전략으로 미추리가 짧은 삼겹살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응? 미추리가 뭐지? 그게 얼마나 안 좋길래 짧을수록 고급이라는 건가? … 검색을 해보았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생생미추리>란 프랜차이즈점에 대한 맛집 포스팅들이었다. 그 중 하나를 보니 이런 설명이 있다.
그냥 기름기가 없어서 건강한 부위란다. 응? 기름기가 없으면 건강한가? 아무튼 미추리란 거 엄청 좋아 보인다. 종류도 4가지나 된다. 그런데 다른 건 모르겠는데, 갈매기미추리는… 그냥 갈매기살인데 저런 이름을 갖다 붙인 것 같다. 천정살이나 돈제비추리는… 관련 사이트 다 뒤져봐도 이 식당 외에는 자료가 나오질 않는다.
어쨌건 양돈잡지에서 박사 타이틀을 건 사람이 미추리는 좋지 않은 거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생생미추리를 제외하고 더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삼겹미추리를 엄청난 신메뉴처럼 소개하는 이런 블로그가 뜬다. 이 역시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래서 홍보성 글을 제외하고 더 찾아보았다.
결국 네이버 지식인과 네이트 지식에서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정리해보면, 미추리란 다음과 같다.
– 삼겹살에서 뒷다리 쪽에 붙은 부위
– 고기결도, 지방과 살코기의 비율도 나빠 짧을수록 좋은 부위
– 굳이 분류하면 삼겹살에 속함에도 맛이 없고 뻣뻣해 식당에선 삼겹살 메뉴로 내보내는 대신 찌개나 두루치기 등 사이드 메뉴의 재료로 쓰는 부위
– 업계 용어로 찔찔이라고도 불림
그래서 먹으면 안 되는 것인가?
대패삼겹살도, 미추리도 삼겹살임엔 틀림없다. 다만, 질이 낮을 뿐이다. 그렇다면 질이 낮은 부위는 먹으면 안 되는 것일까? 상품가치가 낮은 부위는 판매하면 안 되는 것일까?
대패삼겹살에 관한 기사들은 하나같이 대패삼겹살을 두고 ‘얄팍한 상술’ 혹은 ‘소비자 기만행위’ 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왜 그게 얄팍한 상술이고 기만인가? 대부분의 대패삼겹살 가게는 뛰어난 맛보다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장사를 한다. 소비자 역시 낮은 가격에 매력을 느끼고 또 만족한다. 모돈이 국내산 암퇘지인 것도 맞다. 속이는 게 아니다. 단지 ‘등급 외’ 품목임을 밝히지 않는 것이다. 그 또한 제도(2012년10월부터 일부 브랜드업체 등을 대상으로 돼지고기 이력제를 실시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리고 아직도 소매에서 돼지고기 등급을 밝히는 게 의무가 아니다) 상 밝히는 게 의무가 아니었으니 불법이나 위법이 아니다. 이 과정 어디에 기만(남을 속여 넘김)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황교익 씨의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상한 게 동영상에서 한 말과, 이 기사에서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모돈은 구워서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아닌데 이를 암퇘지 대패삼겹살로 파는 건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라고 하는 것과 뉘앙스 차이가 너무 크다. 프로그램 전체를 보면 저렇게 이야기를 하나? 모를 일이다.)
돼지 등급을 의무적으로 밝히라는 제도도 없는데 굳이 식당에서 먼저 ‘이거 졸 저질ㅋ 그래서 저렴ㅋ’ 이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똑똑한 제도도 필수다.)
하.지.만.
황교익 씨의 말대로 맛있는 집으로 포장하면 아니 될 이야기다. 저질의 재료일지라도 못 먹는 게 아닌 이상, 저렴한 가격이든 그 외의 것으로 고객에게 만족을 줄 만한 요소를 찾을 수 있고, 그걸 살려야 한다. 고객이 식당에 바라는 것이 뛰어난 맛이 1순위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저질 재료로 만든 음식을 굉장히 맛난 것으로 포장하고 광고를 한다면 그것 거짓이다. 설령 여전히 가격이 저렴하더래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저질의 삼겹미추리를 팔기 위해 갈매기미추리, 천정미추리 등 보도듣도 못 한 부위를 꾸며내고 그게 엄청난 신메뉴인 것처럼 과장하는 <생생미추리> 같은 식당이나, 공중파에까지 나와 이런 이야기를 한 백종원 씨 같은 사람을 난 싫어한다.
특히 백종원은 특허로 등록된 대패삼겹살을 만들게 된 이유로 “원가절감과 신선도 유지를 위해 고기를 써는 기계를 직접 구입했는데 햄을 써는 기계를 잘못 샀다”고 설명했다. (출처)
특허? 신선도 유지? 특허정보검색서비스에서 ‘대패삼겹살’, ‘백종원’이란 키워드로 각각 검색을 해보면 특허는 없고 대패삼겹살로 상표 등록한 것만 나온다. 신선도? 앞서 말했듯 대패삼겹살은 모돈이고, 얼린 고기다. 신선도가 나올 수가 없는 메뉴. 그리고 원조라고? 굳이 힐링캠프 방송 게시판에 달린 이 글이 아니래도 과거에도 얼린 고기나 모돈을 처리해야 했음을 고려하면 참으로 의심스럽다.
(물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신선도 유지를 위해’ 라는 말 대신 ‘신선해 보이지 않을까 해서’ 라고 말했다. 뉘앙스가 크게 다르긴 하다. 원조 드립도 사실 흔한 일이다. 하지만 기계를 잘못 사 우연히 발명했다는 디테일한 스토리는 도를 넘은 게 아닐까? 또한 방송에서도 그는 특허와 상표등록을 혼용한다. 하지만 홍보는 특허로 했을 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허라는 개념에 민감한 걸 생각하면 사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판타지와 거짓의 경계에서
그런데 참 미묘한 문제이긴 하다. 질 나쁜 재료지만 저렴한 가격 등 다른 요소를 내세우는 것(판타지), 질 나쁜 재료를 좋은 것처럼 속이는 것(거짓). 두 경우 모두 사람들이 만족한다면, 판타지는 칭찬하고 거짓은 비난할 이유가 딱히 없지 않을까? 루디 님의 말처럼 많은 경우, 전문가는 일반인이 누려야 할 즐거움을 빼앗아 가는 경우가 허다한데,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선택할 수 있게끔 알려야/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판타지와 거짓을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냥 거짓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건 그들의 선택이다. 하지만 빨간 약을 선택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순박한 무지만이 만연한다면, 진상떠는 바보가 룰을 만들어 거기에 맞춰 사회 전체의 기준이 낮아지고, 그게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 비단 먹거리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