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샌드위치를 사랑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써브웨이 애호가다. 써브웨이를 처음 알게 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10년간 꾸준히 써브웨이를 애용해왔다.
가난하고 지지리 궁상맞던 일본 유학 시절, 써브웨이는 큰돈 들이지 않고 채소를 듬뿍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주 2–3회 이상은 써브웨이에 출근도장을 찍는다(수입이 생겼다고 해서 입이 갑자기 고급으로 바뀌는 건 아니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간 한결같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써브웨이에는 항상 감사하지만, 써브웨이에 갈 때마다 항상 느끼는 불편한 점도 10년간 너무 한결같아서(?) 살짝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써브웨이의 아쉬운 점 3가지
첫 번째, 채소를 더 달라고 요청할 때의 민망함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하는 나는 써브웨이에 갈 때마다 채소를 ‘많이’ 달라고 주문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주는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대부분 양상추나 양파 한두 조각 추가로 찔끔 얹어주고 끝이다. 항상 채소량이 성에 차지 않지만, 좀 더 많이 달라고 말하기도 민망해서 그냥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일본 써브웨이에는 채소량을 주문할 때 한국에서 말하는 ‘많이’와 더불어 ‘상한(上限)’이라는 개념이 있다. ‘상한까지 주세요’라고 말하면 보통 채소량의 2배를 제공해준다. 한국보다는 채소량의 기준이 명확해 훨씬 낫긴 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상한까지 달라고 말하는 걸 주저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다.
나만 민망하게 느끼는 건지 궁금해서 구글 저팬에 ‘써브웨이 상한(サブウェイ上限)’이라고 검색해보니 첫 번째 연관 검색어로 ‘써브웨이 채소 상한까지 달라고 말하는 거 창피해(サブウェイ上限まで恥ずかしい)’라는 키워드가 뜬다. 역시 인간의 심리란 만국 공통인가 보다.
두 번째, 그때그때 달라지는 샌드위치의 퀄리티
써브웨이에 갈 때마다 신기한 건 분명 같은 재료를 쓰는데도 만드는 직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내가 자주 가던 써브웨이 서울숲 지점에 샌드위치를 기가 막히게 맛있게 만들어주던 직원분이 계셨는데, 그 직원분이 없는 날은 같은 메뉴를 주문해도 어김없이 맛이 달랐다.
야채를 그냥 있는 대로 때려 넣고 소스도 대충 뿌려서 주는 경우, 높은 확률도 맛이 없지만 역시나 그냥 주는 대로 먹는 수밖에 없다. 좀 심하게 대충… 만들어주셨을 때는 차라리 인공지능 로봇이 레시피대로 정량에 맞게 샌드위치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로봇이라면 바쁜 시간대에도 당황하지 않고 레시피에 따라 동일한 품질의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세 번째, 사람에 따라서는 난감할 수 있는 맞춤형 주문 시스템
난 개인적으로 빵부터 야채, 토핑, 드레싱까지 내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는 써브웨이의 커스터마이징 주문 시스템이 극히 선호한다. ( I♥써브웨이 주문 시스템!) 친구도 지금은 나 때문에 써브웨이에 자주 가지만, 예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선택해야 하는 게 귀찮아서 써브웨이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전혀 공감할 수 없었지만, 생각보다 친구 같은 사람들이 은근히 많아서 놀랐다. 특히 어르신들이 써브웨이를 방문하셨을 때 헤매시는 걸 자주 목격하면서 사람에 따라서는 써브웨이의 맞춤형 주문 시스템이 고역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퇴근길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써브웨이에 들를 때면 ‘아무 말 안 해도 알아서 척척 내가 원하는 메뉴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꽤 있다.
일본 써브웨이의 신박한 인공지능 실증 실험
선택지가 많다는 건 나같이 입맛이 까탈스러운 고객 입장에선 기쁜 일이지만, 딱히 기호가 없는 고객이라면 너무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일본에도 ‘어떤 메뉴를 골라야 할지 몰라서’ 또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써브웨이에 가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최근 일본 써브웨이는 이런 부류의 고객들을 위해 말하지 않아도 고객이 원하는 메뉴를 알아서 추천해주는 독심술사 같은 주문 시스템을 실험 도입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지난 8월 써브웨이 저팬은 일본의 통신기기 회사 ‘오키전기공업(이하 OKI)’과 함께 시부야 사쿠라가오카 지점에 사람의 감정을 읽는 인공지능(AI)을 주문 시스템에 실험적으로 도입했다.
여기에 도입된 기술은 주문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AI가 고객의 표정과 시선을 읽고, 주문자가 먹고 싶어 할 만한 메뉴를 판단해 추천하는 ‘제안형 주문 시스템’이다. 말 그대로 마음을 읽는 기술인 것이다. AI가 도대체 무슨 수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흥미로운 실험인 건 분명하므로 한국에 계시는 독자님들에게도 공유해보려고 한다.
AI 제안형 주문 시스템의 구체적인 사용 절차는 다음과 같다.
- 먼저 주문 키오스크 앞에 서서 AI 써브웨이 점원에게 인사를 건넨 후, 시작(スタート) 버튼을 누른다.
- 키오스크의 메뉴 선택 화면에 나타난 샌드위치 메뉴를 편안하게 본다. 총 스무 종류의 메뉴가 있으며, 한 화면에는 여섯 종류의 샌드위치를 보여준다. 제품명과 제품 사진, 가격, 칼로리 그리고 당질까지 보여준다(일본에서는 최근 몇 년간 당질 제한 붐이 일었다). 그냥 쳐다보면 자동으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서 전체 20 종류의 메뉴를 다 보여준다.
- 메뉴를 멍 때리며 보다 보면 AI 점원이 내 표정과 시선을 날카롭게 분석하기 시작한다. 아래 사진의 하늘색 윤곽선이 바로 내 시선과 관심이 향하는 곳이다.
- AI 점원은 내가 나도 모르게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주시한 메뉴와 긍정적인 표정으로 쳐다본 메뉴를 ‘주문자가 먹고 싶어 할 만한 메뉴’로 판단하고, 가장 관심도가 높았던 상위 3개 품목을 추천한다.
- 마지막으로 AI 점원이 추천해준 3개 품목 중 가장 끌리는 메뉴를 선택하고 주문표 발권을 요청하면 주문이 완료된다. 만약 AI 점원이 내 마음을 미처 알아주지 못해서 추천 메뉴 중에 마음에 드는 메뉴가 없다면, 당연히 되돌아가서 다시 주문할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은 AI가 주문자가 가장 먹고 싶어 할 만한 메뉴를 추측할 때 주문자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긍정적인 표정’으로 주시했는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단순히 긴 시간 주시한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표정으로 주시했냐를 함께 고려해서 사람들의 관심도와 흥미를 파악한다.
그럼 AI는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긍정적인 표정을 판단할 수 있을까? AI 기술을 개발한 OKI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긍정적인 표정’이란 「웃는 얼굴에 가까운 뉘앙스를 풍기지만 대놓고 입가가 올라가진 않은 상태로, 무언가를 먹고 싶다고 느낄 때 사람들이 짓는 오묘한 표정」이라고 한다.
인간의 표정이란 참으로 심오하고도 복잡하다고 새삼 느낀다. 이 어려운 걸 AI가 판단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OKI는 AI에게 엄청난 양의 표정 데이터를 학습시켰다고 한다.
앞으로 기대되는 인공지능의 활약
OKI에 따르면 써브웨이 주문 시스템에 실험 도입된 AI 기술은 아직 어디까지나 연구개발 단계이기 때문에, 상용화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써브웨이를 넘어 각종 음식점 및 쇼핑몰 등 소비자가 ‘선택’을 해야 하는 모든 곳에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AI 기술이 더욱 발달한다면, 단지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보조적인 역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AI 로봇이 고객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 ‘채소 좀 더 많이 주세요’라고 굳이 민망하게 말하지 않아도 AI 로봇이 내 마음을 읽고 내가 원하는 양만큼 알아서 척척 넣어주고, 내 취향에 딱 맞는 샌드위치를 제공해줄 그런 날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 일본 써브웨이에 도입된 AI 기술에 대해 살짝 더 알아보고 싶다면: 일본 써브웨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알아주는 AI가 있다?
원문: Moonlight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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