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월 1일. 프랑스 파리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피비 파일로(Phoebe Philo).
피비는 부모님으로부터 천부적인 미적 감각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토지 표면의 형태, 고도, 면적, 위치 등을 측정하는 측량사였고, 어머니는 미술품 거래상이자 가수들의 앨범 표지를 디자인해주는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아버지의 꼼꼼함과 어머니의 섬세함을 가졌던 그는 14살이 되던 해에 재봉틀로 직접 옷을 만들어 입었다.
10대 소녀가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옷의 완성도가 높아, 구매하려고 했던 이웃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패션은 피비에게 놀이이자 행복이었다. 원단의 미묘한 촉감이나 색감을 구별하는 일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사람들이 좋아할 때 큰 행복을 느꼈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피비 파일로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에 진학해 예술 디자인을 전공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패션을 마음껏 공부하고 실력을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두 명의 디자이너를 알게 됐다. 바로 미니멀리즘 디자이너의 거장, 헬무트 랭(Helmut Lang)과 질 샌더(Jil Sander)였다.
1990년대의 패션계는 단순함보다 화려함에 무게를 두었다. 이런 주류에도 불구하고 헬무트 랭과 질 샌더는 절제된 디자인, 편안한 색 조화, 실용성과 착용성을 바탕으로 패션을 해석했다. 피비 파일로는 이들의 작품을 보며 단순한 시선으로도 패션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음을 배웠다. 이후 그의 패션 철학이 된 단순함(Simplicity), 실용성(Practicality), 착용성(Wearability) 이 세 가지는 훗날 그가 전설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순함, 실용성, 착용성
1997년, 피비 파일로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명품 브랜드 끌로에(Choloe)’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당시 끌로에의 수장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를 도우며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스텔라가 물러난 후,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피비 파일로는 끌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다.
그는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들고자 했다. 여성들이 ‘여성성’을 위해 짧고 타이트한 드레스, 신체 일부가 노출되는 옷 등을 더 이상 강요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위의 사진처럼 군더더기 없고(Simplicity), 품이 여유로우며(Practicality),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Wearability) 디자인에 집중했다.
피비는 자신의 스타일을 착실하게 지켜나갔다. 끌로에의 매출은 빠르게 상승했다. 매출 상승보다 눈에 두드러진 점은 전 세계에 피비 파일로의 여성 팬이 늘어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여성을 위한 진정한 옷을 만드는 그를 자신들의 뮤즈로 삼았다.
휴식이 주는 것
2006년, 피비 파일로는 출산을 위해 끌로에를 뒤로 하고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무기한의 휴식기를 갖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동안 쉴 틈 없이 일해온 탓에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친 상태였다. 무엇보다 태어나는 딸의 하나뿐인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라도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주변 동료들은 한창 커리어가 쌓이는 지금을 놓쳐선 안 된다고 만류했지만 피비는 자신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이 시기에 피비 파일로는 내적 성장을 경험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모성애의 따뜻함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창문 밖 나무와 꽃을 벗 삼아 명상을 하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또한 자녀를 위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자제력을 배웠다.
따뜻한 모성애는 부드럽고 유려한 라인의 디자인으로, 자연의 소중함은 베이지·브라운·카키색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으로, 자제력은 단순함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념으로 연결됐다. 이를 기반으로 피비 파일로는 프랑스 명품 패션 브랜드 셀린느(Celine)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유일무이한 디자인 철학
그는 끌로에에서 활동했을 때보다 발전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의류 장식이나 패턴이 간결해졌고 색감 활용은 무채색에서 베이지, 브라운, 카키 등의 톤 다운 컬러까지 다채로워졌으며, 옷 품은 크게 제작해 착용감을 강조했다.
팬들은 그의 복귀를 환영했다. 피비가 끌로에를 떠나고 난 후, 그 어떤 브랜드에서도 피비 파일로와 같은 패션을 보여주는 곳은 없었다. 심지어 끌로에조차 그가 떠난 자리를 온전히 채우지 못했다.
2008년 피비 파일로는 셀린느에서 첫 시즌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후로도 셀린느를 떠나는 2018년까지 여성들이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이제 셀린느에서 피비의 흔적을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그는 셀린느의 영원한 수장이자 여성을 위해 노력한 디자이너로서 기억되고 있다.
2018년 셀린느를 끝으로 그의 공식적인 활동은 없는 상태였으나, 2021년 7월 패션계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다국적 패션 기업 ‘LVMH’와 손을 잡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및 액세서리 브랜드를 준비 중이다. 패션계로 돌아오면 이번에도 피비 파일로만의 단순하고 실용적이며 착용감이 좋은 옷이 전개될 것이다.
마치며
누군가는 그의 패션이 진부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패션은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해야 하는 영역이 아니다. 트렌드만을 좇아 단기적인 멋을 표현하는 것보다, 디자이너의 색을 더한 멋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색은 곧 고유함이다. 그것은 하루 단위로 바뀌는 패션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게 해 주는 힘이다. 그 힘을 잃으면, 디자이너는 패션을 대하는 본인만의 기준을 잃는다.
피비 파일로를 보며 알 수 있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개인의 철학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피비는 어렸을 때부터 보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확고한 이정표를 완성했다. 환경이 변해도, 심적으로 부담을 느껴도, 몸이 고달파도 꿋꿋하게 한 방향으로 걸었다. 그렇기에 그가 추구하는 패션을 완성할 수 있었다.
현실은 잘못된 신념으로 가득하다.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모른다면 그 신념에 의해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 나를 규정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만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며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마치 피비 파일로처럼 말이다.
원문: 코지오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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