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을 탐방하면서 가장 놀랄 때가 언제일까?
그것은 ‘기상천외한 음료코너’도, ‘눈 깜짝할 새에 올라버린 물가’도 아니다. 최고의 콘셉트과 비주얼로 무장한 제품들이 모이는 오뜨 꾸뛰르 코너. 바로 ‘편의점 크래프트 맥주(수제맥주) 코너’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냐고? 에디터의 최애라면(이자 안주)이 맥주가 되어버렸더라고…
브랜드 간의 컬래버의 시대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브랜드가 의류나 굿즈가 되고, 전혀 다른 상품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그 최전선에 있는 식품이 ‘크래프트 맥주’다. 보기만 해도 빵 터지고, 마셔보지 않으면 궁금해서 참을 수 없거든.
이것은 한국 크래프트 맥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마시즘은 국내외 식품과 맥주의 컬래버 사례, 그리고 왜 브랜드들은 크래프트 맥주와 손을 잡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라면과 맥주의 만남? 오뚜기 X 어메이징 브루잉 ‘진라거’
2초에 한 개씩 팔린다는 히트작이다. 맥주를 사러 온 사람도, 라면을 사러 온 사람도 깜짝 놀라 볼 수밖에 없는 비주얼을 가지고 있다. 아니 ‘진매(진라면 매운맛)’가 왜 맥주코너에 있어? 이름이… 진라거라고?
그렇다. 언젠가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이하 어메이징)가 일(?)을 낼 줄 알았다. 마시즘피셜 한국에서 제일 독특한 콘셉트의 맥주 중 하나인 카레맥주(커리 위트 에일), 토마토케챱 맥주(토마토 블론드 에일)를 낸 곳이다. 2019년 5월 5일 오뚜기의 50주년 생일잔치에 만든 맥주였다. 잠깐만 ‘진라거’도 오뚜기와 컬래버다. 두 브랜드는 2018년부터 국내 효모 개발을 함께 해왔다고 한다. 어메이징도 갓뚜기도 먹을 것과 마실 것에는 진심인 곳이었다.
진라거에서 라면 맛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예상했다. 그런데 맛으로 충격을 받았다. 톡톡 튀는 비주얼에서 예상할 수 없는 찐(…) 아니 진한 라거 맛이 느껴진다. 도수도 제법 높고, 쌉싸레한 몰트가 느껴져 미국 크래프트 맥주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진라면 같은 매운 음식과의 페어링을 노렸다고 할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나는 ‘진매파’가 아니라 일편단심 ‘진순이’라는 거… 진순라거도 나왔으면 좋겠… 죄송합니다.
던킨은 크래프트 맥주였어! 던킨 X 하푼 ‘호박맥주와 커피맥주’
이런 컬래버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던킨(Dunkin)’에서는 가을을 맞아 크래프트맥주를 냈다. 미국의 하푼(Harpoon)과 컬래버해 독특한 크래프트 맥주를 냈다. 게다가 맥주에 진짜 도넛을 넣었다고?
던킨에서 나온 크래프트 맥주의 라인업은 4가지다. 에스프레소를 넣은 ‘커피 포터’, 호박과 호박파이가 들어간 ‘펌킨 에일’, 진짜 도넛과 카카오 닙스를 넣은 ‘보스턴 크림 스타우트’, 마지막으로 도넛과 라즈베리 퓌레를 넣은 ‘젤리 도넛 헤이지 IPA’다. 던킨과 하푼 역시 2년 동안 협업을 하며 가을 시즌마다 새로운 맥주를 낸다고.
문제는 도넛이 들어갔지만 도넛 맛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넛은 맥주 생산에 들어가는 재료 중 0.3%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어그로, 나쁘게 말하면 도넛이 족욕 정도 하고 나온 맥주라고 할까? 하지만 이 맥주의 존재만으로도 도넛이 먹고 싶어 지는 효과는 대단한 것 같다.
독특한 맥주와 착한 초콜릿의 만남, 브루독 X 토니스 초코론니 ‘화이트 초콜릿 IPA’
크래프트 맥주의 매력적인 점 중 하나는 예측 불가능한 제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영국의 ‘브루독(Brewdog)’은 기상천외한 맥주를 많이 만들기로 유명(이라고 쓰고 악명이라고 읽는다)하다. 이런 맥주회사가 공정무역을 추구하는 네덜란드의 착한 초콜릿 브랜드 ‘토니스 초코론니(TONY’S Chocolonely)’를 만났다. 악동과 천사의 만남. 대체 누가 이런 조별 모임을 짠 거지?
그것은 ‘브루독’이 ‘토니스 초코론니’ 브랜드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견이 같은 것. 그렇게 올해 6월에 영국에 출시된 ‘화이트 초콜릿 & 밀크쉐이크 IPA’가 출시되었다. 한정판으로 판매된 이 맥주는 코코아 농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위해 기부되었다고.
초콜릿 알을 품은 거위, 구스 아일랜드 X 캐드버리 크림 에그 ‘크림 에그 초콜릿 맥주’
브루독보다 빨리 초콜릿 브랜드와 컬래버한 양조장도 있다. 바로 ‘구스 아일랜드(Goose Island)’다. 구스 아일랜드는 ‘캐드버리 크림 에그(Cadbury Creme Eggs)’라는 달걀 모양의 초콜릿 과자의 50번째 생일을 맞아 맥주를 냈다. 앞서 어메이징 브루잉과 오뚜기의 사례와 같다. 브랜드의 생일 기념 크래프트 맥주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구나!
맥주와 초콜릿의 컬래버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독특한 조합은 아니다. 다만 캐드버리 크림 에그의 생일을 맞아 과자의 포장처럼 패키지를 만들었더니. 스타우트 흑맥주에서 나오는 초콜릿 풍미가 더 어릴 때 먹는 크림 에그 초콜릿처럼 느껴진다. 토니스 초코론니부터 캐드버리 크림 에그까지 맥주가 되어버리다니. 한국은 어떤 초콜릿과 맥주가 어울릴까? 가나초콜릿? 크런키? 아니면 몽쉘?
다른 것은 맛있겠는데 마요네즈는 좀… 챔피언 브루잉 X 듀크 마요 ‘패밀리 레시피’
앞선 조합들이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조합이었다면, 이름만 봐도 충격을 주는 조합이 있다. 바로 미국 버지니아주의’ 챔피언 브루잉 컴퍼니(Champion Brewing Company)’와 마요네즈 브랜드 ‘듀크 마요(Duke’s Mayo)’의 만남이다. 챔피언 브루잉의 팬도, 듀크 마요의 팬도 놀랄만한 결정이었다? “대체 왜 이걸 만들지?”
다행인 점은 이 맥주에 ‘마요네즈’를 넣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크래프트 맥주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브랜드인 마요네즈가 만난다는 이야기였다. 이 맥주의 이름은 ‘패밀리 레시피(Family Recipe)’다. 듀크 마요의 창립자가 만들고 여전히 100년 넘게 사용되는 레시피에 대한 찬가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안 어울릴 듯하면서 어울리고, 장난인 듯하면서 진지함이 있는 묘한 브랜드 간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다.
브랜드들은 왜 크래프트 맥주를 찾는 것일까?
먹는 것과 마실 것의 만남. 식품 브랜드들이 크래프트 맥주와 손을 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 가장 실험적이고, 가장 젊은 느낌을 가진 식음료가 크래프트 맥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식품 브랜드에게는 젊고 트렌디한 감성을 주고, 떠오르는 크래프트 맥주에게는 대중들에게 평범한 맥주가 아닌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을 어필할 기회를 준다.
반대로 단순히 독특해 보이는 조합만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마시는 사람이 바로 평가하는 것은 ‘맛’이다. 더 나아가 마신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은 컬래버한 두 브랜드의 ‘이야기’다. 마시즘이 소개한 크래프트 맥주들 역시 ‘어그로’로만 만난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야기를 전달한다.
때문에 기대가 더욱 된다. 식품 브랜드도,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도, 이걸 마시는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할 만한 컬래버 맥주들의 탄생을.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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