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국제대학원 조영남 교수는 중국정치 전문가다. 중국은 공산주의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이행했다. 실제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조영남 교수는 이에 대한 정치적 이행과정을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민음사) 3부작을 통해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용과 춤을 추자』(민음사)는 2012년 6월에 출간된 책이다. 9년 전도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2018년 트럼프에 의한 ‘무역전쟁 선포’가 미-중 관계의 새로운 전환점이긴 하지만, 책의 시의성이 떨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1–2장)에서는 총론 및 4개의 질문을 던진다. 2부–5부는 4개의 질문에 대해 각각 해답을 구한다. 4개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중국은 미국을 추월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인가? (2부, 3–5장)
- 중국은 지난 30년처럼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될 것인가? (3부, 6–8장)
- 중국이 과거 소련처럼 붕괴하거나 정치적 민주화할 가능성은 어떠한가? (4부, 9–11장)
- 한국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중국 정책은 무엇인가? (5부, 12–14장)
이를 편의상 다음과 같은 표현해본다.
- 중국의 미국추월 가능성
- 중국의 지속성장 가능성
- 중국의 정치체제 전망
- 한국의 바람직한 정책
책 전체의 구성은 3-3-3 법칙을 따른다. 예컨대 중국의 미국추월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①중국이 지역강대국에서 글로벌 강대국이 될 것인지? ②미국, 일본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의 대응은? ③20년 후 동아시아 지역 질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이렇게 3가지를 살펴보다. 그리고 다시 ‘중국이 지역강대국에서 글로벌 강대국이 될 것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①경제력 ②군사력 ③소프트 파워 3가지를 살펴본다.
결과적으로 책 전체의 구성은 4개의 큰 질문+각 질문의 관전 포인트 3개+관전 포인트별 3개의 세부 이슈를 검토하는 방식을 취했다. 대략적으로 볼 때, 4×3×3 = 36개의 세부 논점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 이는 다분히 교과서적 구성이다. 교과서적 내용을 대중적인 방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그렇기에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서술은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이제, 위에서 언급한 4가지 질문 각각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1. 중국의 미국추월 가능성
첫 번째 질문은, 중국은 미국을 추월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중국의 국력을 ①경제력 ②군사력 ③소프트 파워.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경제력
중국은 2010년 총GDP 규모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가 됐다. (중국은 5.8조 달러, 일본은 5.6조 달러) 2020년 기준으로, 중국은 미국 GDP의 약 70% 수준이 됐다. 많은 경제연구소는 2028년을 전후해서 중국의 총GDP가 미국의 총GDP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한다. (*코로나 이전, 2019년 기준, 미국은 21.5조 달러, 중국은 14.3조 달러였다. 중국 GDP는 미국 GDP의 66%였다.)
군사력
이를 살펴보려면 경제성장률 추이를 먼저 봐야 한다. 2001년 WTO 가입 이후 약 10년간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12% 내외였다. 경제성장률이 워낙 가파르다보니 국방비 증가율 역시 매우 가팔랐다.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이 발표한 국방비 증가율은 연평균 12.9%였다. 2002년 대비 2011년 중국의 국방예산은 무려 4.6배 증가했다(80쪽). 세계에서 가장 빠른 증가율이다.
1998년 대비 2010년의 국방비 증가 규모를 비교하면 미국 2.7배, 중국 7배, 일본 1.1배, 영국 1.8배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비중은 미국에 비해 더 많다. 요컨대, 중국 GDP가 미국을 제치는 2028년경에서 약 10년의 기간 이내에, 중국의 국방비 절대규모가 미국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
소프트 파워
중국은 대외정책의 한축으로 소프트 파워를 활용한다. 크게 세가지 축이다. 베이징 컨센서스, 유가 사상의 세계적 보급, 정교한 외교정책. 베이징 컨센서스의 핵심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돕는 것이다. 다만 독재 여부, 권위주의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이런 나라들은 대부분 미국과 서구에 비판적인 나라들인 경우가 많다. 중앙아시아, 중동, 남중국해를 관통해서 유럽과 해상로 및 육로를 개척하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 정책 역시 베이징 컨센서스의 일환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베이징 컨센서스와 일대일로 정책은 중층적 성격을 갖는다. 첫째, 중국의 SOC역량 강화 정책이다. 둘째, 미국과 서구에 비판적인 권위주의 국가들과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정책이다. 이는 마치,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소련이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며 서방 자본주의의 포위를 탈출하며 ‘국제적 통일전선’을 구축하려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베이징 컨센서스와 일대일로 정책이 권위주의 개발도상국 버전의 소프트파워 정책이라면, 선진국 버전의 소프트파워 정책은 유가 사상의 보급이다. 핵심은 공자학원의 설립이다. 중국은 2004년부터 세계 각지에 공자학원 설립을 추진했다. 2010년 10월 기준, 91개 국가 322개가 설치되어 있다. 2021년 6월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2020년 말 기준 전 세계 162개국 총 541개 공자학원이 운영”된다. 다만 최근 선진국에서는 공자학원이 폐쇄되는 추세라고 한다.
공자학원은 설립 대학에 약 10억 원을 지원하고, 매년 운영비로 약 1–2억 원을 주고,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의 이념을 선전하는 역할을 한다. 매우 ‘중국 공산당스러운’ 사업 방식이다.
조영남 교수는 중국의 부상은 과거 영국과 미국이 ‘글로벌 강국’으로 부상할 때와 다르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부상’이 갖는 특징으로 3가지를 꼽는다. ①불균등성 ②지역성 ③취약성이다.
불균등성이란 중국의 경우 경제력은 향후 미국을 제칠 가능성이 높지만 군사력은 ‘지역강대국’ 수준으로 봐야 하고, 소프트파워는 한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의 팍스 브리타니카와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의 경우, 경제력, 군사력, 소프트파워 모두에서 우위였다. 지역성은 중국의 관심사가 (아직은) ‘글로벌 이슈’ 전반이 아니라 대만해협 문제, 동중국해, 남중국해 이슈에 국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취약성은 불평등, 격차 확대, 급격한 초고령화 등 중국 내부 문제를 의미한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대응 및 향후 동아시아 지역질서 형성에 대한 조영남 교수의 전망은 2가지 지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첫째, 조영남 교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전망함에 있어 글로벌 강대국, 지역 강대국, 중견국가, 지역 다자주의의 중층적 개념을 활용한다. 여기서 ‘글로벌 강대국’은 미국과 중국이다. ‘지역 강대국’은 러시아, 일본, 인도를 의미한다. ‘중견국가’는 한국, 호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해당한다(4장–5장).
둘째, 조영남 교수는 향후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좌우하기 어렵다고 본다. 글로벌 강대국, 지역강대국, 중견국가, 지역 다자주의 체제가 뒤섞여서 작동하는 중층적 혼합 체제=무지개 색깔의 시루떡 체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할 수 없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일본, 인도의 역할에 따라 ‘힘 대결의 우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조영남 교수의 분류법에 의하면, 한국은 호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 함께 중견국가에 포함된다. 무난한 분류라고 생각한다.
2. 중국의 지속성장 가능성
두 번째 질문은, 중국은 지난 30년처럼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될 것인가이다.(3부) 조영남 교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중국의 국가발전 전략을 살펴본다. 중국 국가발전 전략은 4개 분야를 살펴보면 된다. 3부(6–8장)의 핵심 내용이다. 4개 분야는 ①정치전략 ②경제전략 ③사회전략 ④외교전략이다.
정치전략의 핵심은 의법치국이다. 경제전략의 핵심은 과학적 발전관이다. 사회전략의 핵심은 조화사회론이다. 외교전략의 핵심은 평화발전론이다. 이에 대해 각각 살펴보자.
첫째, 정치전략
정치전략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이다. 이는 법치국가와 유사한 개념으로 보면 된다. 다른 하나는 집권능력 강화다. 의법치국은 국가의 운영 방식이고, 집권능력 강화는 역량의 문제다.
의법치국은 1997년 제15차 당 대회의 결정사항이다. 중국 공산당은 1987년 제13차 당 대회에서 ‘당정분리’를 추진했다. ‘공산당의 권력집중’ 해소를 개혁과제로 상정했다. 그런데, 1989년–1991년 동독, 동유럽 공산주의, 소련 붕괴를 지켜보며 ‘당정 분리’ 노선을 폐기한다. 이후 채택한 대안적 노선이 의법치국이다. 의법치국은 마오쩌둥 방식의 1인 독재와 대비되는 것이며, 동시에 정치 민주화 노선과 대비되는 것이다.
조영남 교수는 중국의 정치민주화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민주화에 관한 정치학계의 논의 중 크게 두 가지 이론을 소개한다. 하나는 근대화론이다. 근대화→산업화→도시화→중산층의 형성→민주화의 경로를 의미한다. 한국과 대만의 사례가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행위자 중심론이다. 엘리트 내부의 역학관계를 중시 여기는 이론이다. 한국과 대만이 민주화를 하던 1986–1988년 기준, 1인당 GDP는 약 4,000달러였다. 중국은 이미 그 수준을 지났다. 중국에서 ‘근대화론’에 입각한 정치민주화가 추진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내 생각을 보태면, 조영남 교수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정치민주화가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역사에서 확인되는 내전 가능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주나라 이후 현재까지 약 2,400년이 흘렀는데 약 1,400년은 통일 왕조기였고, 약 1,000년은 내전기였다. 비율로 치면 약 60%가 통일 왕조기였고 약 40%가 내전기였다.
다르게 말하면, 중국 국민들에게 실제로 주어지는 정치적 선택지는 자유민주주의적 다당제에 기초한, 내전의 일상화인지, 유능한 공산당 1당 통치에 기초한, 평화체제를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는 중국의 지리 정치학적 특징과 인구 규모 때문이다. 중국은 ‘통일된’ 단일 국가를 구성하기에는 사이즈도 너무 크고 다양성도 큰 반면, 그렇다고 ‘별개의’ 국가로 운영되기에는 지리적으로 광대한 평야지대이며, 역사적-문화적 일체감이 너무 높다.
덩샤오핑은 중국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에 관한 3단 논법을 전개한다. ①중국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성장이다(온포, 소강, 대동의 3보(步) 전략). → ②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정치적 안정이 절대적이다(덩샤오핑 왈, “안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 ③정치사회적 안정을 위해서는 공산당의 일당 통치가 필요하다. 중국은 92%의 한족, 55개의 소수민족이 공존하고, 13개 국가와 국경선을 마주 하기에, 내전(內戰)을 막고, 안정을 위해서는 공산당의 일당 통치가 중요하다.
정리하면 덩샤오핑의 논리구조는 ①경제성장의 중요성 → ②사회·정치적 안정의 중요성 → ③공산당 일당통치의 불가피성의 3단 논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공산당의 ‘집권능력 강화’에 관한 내용이 흥미롭다. 혁명당(Revolutionary party)에서 집권당(Ruling party)으로의 전환이라고 표현한다. 현재 한국의 민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에 빗대면 반독재, 사회운동당에서 집권당으로의 전환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둘째, 경제전략
경제전략의 핵심은 과학적 발전관이다. 참고로 ‘과학적 발전관’이라는 용어는 후진타오 시기(2002–2012)에 주로 사용한 개념이다. ‘과학적 발전관’의 연장으로 3가지 정책 전환을 추진한다.
-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성장 방식의 전환이다. 투자와 수출 중심 경제를 내수(소비) 중심 경제로 전환하고, 제조업 중심을 서비스업 중심으로, 에너지 다소비형 성장을 과학기술, 혁신중심 성장으로 전환한다.
- 균형 발전이다. 지역 간 격차, 도시/농촌의 격차 완화를 위한 서부대개발이 대표적이다.
- 지속 가능 발전이다. 환경 및 에너지 문제를 고려하는 성장이다.
경제 전략을 살펴보면서 흥미로운 점은 소련식 붕괴와 중국식 번영의 차이점에 대한 조영남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두 가지를 짚는다.
- 첫째, 정치 전략의 차이다. 소련은 정치 민주화를 추진했는데, 중국은 정치 제도화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정치 민주화는 자유민주주의, 다당제를 의미한다. 정치 제도화는 국가권력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고, 정치와 사회의 간극을 좁히는 것을 의미한다.
- 둘째, 경제 개혁 전략이 달랐다. 소련은 ‘충격요법’ 방식으로 시장도입을 추진했다. 반면, 중국은 점진적·계획적 시장도입을 추진했다. 시장은 ‘무정부 상태’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유능하고 좋은 정부가 있어야 좋은 시장이 작동한다.
내 생각을 약간 보태면, 우리는 ▴시장 ▴기업 ▴국가를 모두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개념적으로 ‘주체’(행위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룰이 작동하는 ‘어떤 공간’을 의미한다. 경제적 행위주체는 기업(가)이다. 국가는 제도를 설계 및 감시하는 주체이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이 제대로 기능해야 하고, 제도 설계자로서 국가 역시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시장과 기업을 개념적으로 혼동하면 안 된다. 하나는 ‘무대=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자’이다. 속성상 기업은 독점, 지배, 초과이윤을 추구하고, 시장은 경쟁과 질서의 조화를 추구한다. 예컨대, 반(反)독점법은 ‘시장’의 순기능을 살리기 위해, ‘기업’의 탐욕을 견제하는 법이다.
셋째, 사회전략
사회전략의 핵심은 조화사회론이다. 2012년에 출간된 이 책에도 ‘공동부유론’이 나온다. 특히 3대 민생을 강조한다. 교육, 의료, 주택이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일자리를 포함하면 4대 민생의제로 볼 수 있다. 4대 민생의제는 어느 나라든 항상 중요하다.
(넷째 외교전략은 생략한다.)
3. 중국의 정치체제 전망
세 번째 질문은, 중국이 과거 소련처럼 붕괴하거나 정치적 민주화의 가능성은 어떤지의 문제를 다룬다(4부). 내용적으로 볼 때, 중국의 정치구조를 크게 3가지를 다룬다. 중국의 정치안정 비결, 중국 정치의 미래, 중국 공산당의 성공비결이다.
중국의 정치안정 비결
조영남 교수는 중국의 정치안정 비결을 ▴정치 ▴행정 ▴이념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정치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엘리트 지배연합의 안정화다(9장). 마오쩌둥이 지배하던 대약진 시대(1958–1960년)와 문화대혁명 시대(1966–1976년)에는 ‘숙청’과 ‘인민재판’이 작동하던 시대였다. 엘리트 지배연합의 불안정기였다.
덩샤오핑이 주도하던 개혁개방기는 ‘정치적 과도기’로 볼 수 있다. 1986년 학생운동으로 인한 후야오방의 퇴진, 1989년 천안문 시위와 자오쯔양의 퇴진은 정치적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이후 장쩌민 시대(1992–2002년)와 후진타오 시대(2002–2012)는 매우 순조롭게 권력이 이양됐다. 엘리트 지배연합의 안정화를 보여준다.
이념 측면에서, 마오쩌둥은 ‘평등사회 실현’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이었다. 사회, 정치, 경제 모두를 핍폐하게 만들었다. 1989–1991년 기간에는 동독, 동유럽, 소련이 몰락해버렸다. ‘사회주의 이념’은 중국인들에게 매력이 없어졌다. 1989년 천안문 사태와 1991년 소련 붕괴를 겪으며, 중국은 이념의 재정비 작업을 한다. 핵심은 ▴사회주의 ▴민족주의 ▴유가사상의 짬뽕이다.
내용적으로 보면, 1992년 제14차 당대회때 채택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론과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 사회주의와 경제론의 절충으로 볼 수 있고, 1997년 제15차 당대회 때 채택한 의법치국론이 사회주의와 정치론의 절충으로 볼 수 있다.
현행 시진핑 체제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중국몽)에 대한 강조는 아편전쟁(1840년) 이후 100년의 치욕을 지렛대로 하는 중화 민족주의를 상징한다. 최근 다시 이슈가 된 ‘공동부유론’은 사회주의적 문제의식의 재환기다. 중국은 앞으로도 사회주의, 민족주의, 유가사상의 짬뽕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조영남 교수는 중국 정치의 미래를 ‘경우의 수’로 나눠서 살펴본다.(10장) 크게 다섯가지 모델이 있다. ①전체주의(totalitariannism) ②민주화 ③연성 권위주의(soft authoritarianism) ④강성 권위주의(hard authoritarianism) ⑤정치적 붕괴다.
- 마오쩌둥 체제는 전체주의, ‘1인 독재’였다.
- 민주화의 대표 사례는 한국과 대만이다. 한국과 대만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화로 이행한 경우다.
- 연성 권위주의는 싱가포르가 해당한다.
- 강성 권위주의는 1인 독재인 전체주의와는 구분되지만, 다당제와 민주적 시민권의 보장이 매우 제한적인 모델이다.
- 정치적 붕괴는 동유럽과 소련이 해당한다.
이중에서 현재 중국정치, 그리고 향후 중국 정치의 미래 역시 ④강성 권위주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싱가포르는 인민행동당이 실질적으로 일당지배를 하지만, 정치적으로 다당제가 보장되어 있고, 민주적 선거를 실시한다. 중국 정치와 구분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11장. 중국공산당의 성공비결이었다. 이 단락이 재밌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내가 여전히 좋은 정당 만들기에 많은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조영남 교수는 중국 공산당의 성공비결을 3가지를 꼽는다. ①유능한 통치엘리트의 충원 및 육성 ②공산당 운영의 정상화와 제도화 ③공산당 당내 민주 확대다.
이중에서 특히 중요한 분야는 ①유능한 통치엘리트의 충원 및 육성 방식 ②공산당 운영 방식이다. 1982년 대비 1997년 통치 엘리트 변화의 특징에서 가장 두드러진 측면은 기술관료의 전면적 부상이다.
여기서 기술관료의 정의는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하고, 일정기간 엔지니어 및 전문적 업무에 종사하고, 최고 관리자 및 지도자로 승진한 경우다. 3가지를 ‘and 조건으로’ 충족한 경우다.
기술 관료의 부상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국무원 부장(장관급)의 경우, 1982년은 2%에서 1997년은 70%로 바뀌었다. 성(省)의 당 서기는 1982년은 0%에서 1997년 74%가 됐다. 성급 정부 수장의 경우(성장, 부성장) 1982년은 0%에서 1997년은 77%가 됐다. 중앙위 위원을 보면 1982년은 2%에서 1997년은 51%가 됐다.(p.282–284, *첨부 파일 참조.)
왜 중국은 기술관료가 급증했을까? 기술관료 급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그 이유를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공산당의 ‘미션’이 경제성장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제성장을 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관료적 리더십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경우 박정희식 개발독재와 연계한, 관료주도 경제성장 모델이 작동했기에 동아시아 경제기적의 한 주체가 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2000년대 이후 중국은 다시 사회관리형 리더십이 부상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전공은 인문, 사회과학 분야다. 2007년 상반기, 2008년 기준, 사회관리형 엘리트의 비중은 약 75%–82%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진핑이다. 시진핑은 칭화대 법학 박사 출신이다. 반면 국무원 총리인 리커창은 베이징 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이다(285–287쪽).
중국 공산당 조직 체계도 매우 흥미로웠다. 중국 공산당의 의사결정기구는 당대회 → 중앙위 → 정치국 →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체계를 갖는다. 당대회(전국대표대회)는 5년에 한번 개최한다. 중앙위는 총 371명이다. 중앙위는 1년에 1회 가을에 개최한다.
정치국은 총 25명이다. 중국공산당의 실질적인 최고 지도부는 정치국이다. 매월 1회 이상, 수시로 개최한다. 후진타오 체제(2002–2012년)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은 총 9명이다. 보통 매주 1회 이상, 수시로 개최한다. 이들은 ‘고유 역할’이 정해져 있다. 각자는 고유 역할을 넘어 월권을 해서는 안 된다.
9명의 역할은 각각 ①국가주석, ②국가 부주석, ③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위원장, ④국무원(행정부) 총리, ⑤국무원 부총리, ⑥통일전선 담당, ⑦이념-선전 담당, ⑧규율 담당, ⑨정법(치안) 담당이다. 2012년 출범한 시진핑 체제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은 7명으로 줄었다. 국가 부주석과 국무원(행정부) 부총리 자리가 사라졌다.
4. 한국의 바람직한 정책
네 번째 질문은, 한국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중국 정책은 무엇인가이다(5부). 조영남 교수는 한국입장에서 중국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을 ‘정책 3중주’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정책 3중주’의 주요 내용은 남북관계를 중심축으로 관여 정책, 위험분산 전략, 다자주의 정책을 펴는 것이다.
대체로 수긍 가능한 이야기다. 맥락으로 볼 때 세계 질서를 글로벌 강대국, 지역 강대국, 중견국가, 지역 다자주의로 이해하는 것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고, 향후 세계질서를 혼합체제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강대국은 미국, 중국이며, 지역 강대국은 일본, 러시아, 인도가 해당하고, 중견 국가는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호주가 해당하고, 아세안의 다른 나라들이 다자주의에 해당한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심화될 경우, 남북관계의 안정적 유지가 가능한지다. 조영남 교수는 한미 동맹은 북한의 위협에 한정된, 안보동맹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중국 포위동맹으로 작동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미국 입장에서, 한미동맹의 본질이 정말로 북한 위협에 대한 방어 동맹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미국 입장에서 한미동맹의 역사적 본질은 미국의 체제경쟁자였던, 소련에 대한 방어 동맹으로 봐야 한다. 한반도의 분단, 38선의 획정, 한국전쟁의 발발, 압록강에서 중공군의 개입에 의한 1.4후퇴, 1953년 현행 휴전선의 획정과 정전협정 체결 등 일련의 과정은 남북관계가 남과 북의 민족적 대립관계가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학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해방 직후 38선은 미국과 소련의 ‘균형선’이었고, 1953년 한국전쟁 직후 휴전선 역시 북한, 소련, 중국을 한편으로 하고, 미국, 한국을 한편으로 했던 힘과 힘이 부딪히는 균형선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과거 체제경쟁자’는 소련이었다. 소련 포위가 가장 중요했기에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과 1979년 미국과 중국의 수교가 맺어졌다. 반면 지금 미국의 체제 경쟁자는 단연 중국이 됐다. 한국은 결국 선택해야 한다. 경우의 수는 총 5가지다.
- 미국과 손잡는다.
- 중국과 손잡는다.
- 둘 다 거리를 두며, 아무런 동맹을 맺지 않는다.
- 미국과 손잡되, 중국과도 비교적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한다(강조점은 한미동맹).
- 중국과 손잡되, 미국과도 비교적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한국의 현실적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 ④번이다. 미국과 굳건하게 손잡되, 중국과도 비교적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먼 미래에는 변경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이 선택이 불가피하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킬지 여부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본질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역사적 산물로 봐야 한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때 글로벌 스탠다드는 권위주의 체제가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결국 자신의 체제를 ‘이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소련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경제체제는 계획경제와 국유화, 정치체제는 일당독재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조영남 교수의 『용과 춤을 추자』가 갖는 매력은 중국을 둘러싼 국제정치 지형, 중국의 경제성장 전략, 소련과 중국의 차이점, 중국식 정치체제의 저력, 중국 공산당의 저력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조영남 교수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중국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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