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의 10가지 혁신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드디어 중국 스타트업이 미국의 카피를 넘어서서 스스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변곡점에 이르렀구나”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틱톡의 10가지 혁신을 하나씩 보면, 대부분이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개념/방식이다. 이는 2000년 전후 싸이월드, 마이스페이스(MySpace), 프렌스터(Friendster)부터 시작해 지금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완성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익숙한 소셜 네트워크의 보편화된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스냅챗(SnapChat)이 가장 가깝긴 한데, 페북—스냅챗—틱톡의 스펙트럼으로 보자면 스냅챗은 페북과 틱톡의 중간 단계라는 판단이다.
결국 바이트댄스(Bytedance)라는 회사는 미국에서 시작한 기술(AI)을 가장 잘 활용해 미국에도 없는 수준으로 잘 응용된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Toutiao), 다음 단계에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도메인(소셜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서비스(틱톡)를 창조해 낸 셈이다.
2010년 전후 중국의 3대 소셜네트워크의 하나였던 렌렌(RenRen)의 전신 샤오네이(Xiaonei) 서비스가 페이스북을 거의 코드까지 복사하는 수준의 카피로 시작한 것이 불과 10여 년 전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이를 중국 스타트업의 제3세대라고 해석한다. 이제 바이트댄스부터 시작해 수많은 제3세대 스타트업들이 등장할 것이고, 어쩌면 핀뚜어뚜어(Pinduoduo), 헤마 프레시(Hema Fresh) 등 이미 우리가 아는 여러 업체가 원조 미국을 뛰어넘는 제3세대로 진화할지도 모른다.
이를 계기로 중국 스타트업 시장에 대한 시각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뭔가 일상적으로 보는 것보다 큰 변화의 흐름이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두 개의 인터넷’
워낙 중국 인터넷 시장이 크다 보니 여러 곳에서 중국 인터넷 시장에 대해 다룬다. 인터넷 시장에 대해 매크로 시각에서 가장 통찰력 있는 ‘메리 미커 인터넷 트렌드 리포트(Mary Meeker Internet Trend Report)’도 몇 년 전부터 힐하우스(Hillhouse)가 작성한 ‘중국 시장’ 부분을 포함한다. 다만 너무 매크로 뷰라서 실제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주 자세하게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a16z에서도 파트너 코니 찬(Connie Chan) 중심으로 중국 인터넷에서의 혁신을 커버하는데, 주로 중국 인터넷 서비스의 특징 중 비즈니스 모델, 스킬 등 미국 시장에서 참고할 만한 점을 소개하고 스타트업에게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데 집중해, 대부분의 스타트업에게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가 된다.
이 중에서도 중국 인터넷 환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 중 하나가 SCMP의 차이나 인터넷 리포트(China Internet Report)였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아래 슬라이드였다. 피상적으로는 어느 정도 알았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미국 인터넷에서의 주요 플레이어와는 완전히 다른 중국 로컬 플레이어가 시장을 장악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사실상, 중국 인터넷 시장의 거대한 방벽(Great Firewall)을 고려하면 사실상 중국인들이 쓰는 인터넷과 미국(에서부터 시작해 글로벌)에서 사용하는 인터넷이 서로 완벽하게 분리된 형태가 되어 버렸다. (야후 재팬, 네이버, 얀덱스 등 일부 시장의 아웃라이어는 논외로 하자.)
일명 스플린터넷(Splinternet)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른바 ‘두 개의 인터넷’ 개념이다. 마치 ‘병행 우주 이론’과 비슷하게 기술(underlying physics)은 같지만 사실상 두 개의 세상이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미국—중국 무역 분쟁의 일환으로 화웨이(Huawei) 등 중국 테크 회사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중국 핸드폰 제조사 중심으로 중국 외 시장에서 구글 플레이를 대체할 앱 마켓에 대한 움직임도 본격화했는데, 이렇게 되면 모바일에서도 ‘두 개의 인터넷’ 구조가 더 강화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두 개의 인터넷’ 세상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중국 시장에 대해 이제까지보다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할 변곡점이 되었다고 본다.
사족이지만, 이미 중국 내에서는 구글 플레이보다 중국 자체 앱 마켓이 훨씬 더 크다. 이는 중국 내의 개발자와 사용자만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 중국 외의 해외 시장으로도 이 구조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다. 무역 제재에 의해 중국산 핸드폰의 구글 플레이 및 서비스 접근이 제한되면 중국산 핸드폰을 중국 외 시장에서 판매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 구조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인데,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 속에서 실현 가능할지는 의문이 크다. 위의 기사가 나오자마자 모든 업체가 그 의미를 축소해서 설명하고, 화웨이도 공식적으로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인터넷 시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동안 직간접 경험 등에 의해 이해하는 중국 시장에 대한 시각을 몇 가지 공유해 본다. (아주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일부 사실관계에서 틀릴 수도 있지만, 큰 흐름에 집중해 보면 좋겠다.)
중국 스타트업 제3세대
중국 스타트업은 이제 1990년대 인터넷 붐 시절에 미국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해 중국에 이식한 BAT로 대표되는 1세대를 지나서, 미국에서 수입된 서비스를 현지화해 완전히 중국화 된 2세대가 시장을 주도한다고 본다.
미국의 테크 대표 기업을 FAMGA, FAANG 등 여러 가지로 부르듯이 일부에서는 그 대표 주자를 TMD(Toutiao, Meituan-Dianping, Didi Chuxing)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직 정착된 개념은 아니다. 또 기존의 BAT도 (바이두를 제외하고는) 모두 2세대를 거치면서 다른 2세대 주자와 비슷한 형태의 진화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변신해 왔다.
이 점에서는 국내의 1세대 인터넷 기업은 그 정도로 시장 변화에 따른 진화를 하지 못했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알리바바 계열 서비스들과 국내의 1세대 커머스 서비스들을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세대의 특징은, 수입된 서비스를 중국 현지화해 미국의 오리지널과 완전히 다른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작은) 혁신들이 만들어졌고, 이제는 미국에서 이런 작은 혁신을 배우려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알리페이(Alipay)와 위챗페이(WechatPay) 모바일 결제, 슈퍼앱과 미니 프로그램 환경, 미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유료화 모델 (심지어 하나의 서비스에서 여러 유료화 모델이 혼재되어 있기도 하다), 라이브 비디오, 인플루언서, 그룹 바잉(Group Buying) 등 다양한 커머스 기능과 서비스가 있다. (코니 찬의 〈Four Trends in Consumer Tech〉 발표 중 슈퍼앱, 커머스 관련된 내용을 참고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특히 커머스와 유통 분야에 관한 한 이제 중국 시장은 다른 어느 시장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혁신을 시도한다. 그룹 바잉(Pinduoduo 拼多多, Shehuituan 社会团), 라이브 비디오 커머스(Tmall Live, Kwai), 인플루언서 커머스(Xiaohongshu 小红书), 신 유통(Hema Fresh 河马先生), C2M(Consumer to manufacturer) 모델 등. 중국 내의 커머스 관련 주요 키워드는 이 자료를 보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세대에서 진화해 바이트댄스의 터우탸오(Toutiao), 틱톡을 필두로 새로 등장하는 제3세대는 수입된 미국산 기술과 사업 모델을 중국 현지화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까지 없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서 거꾸로 시장을 리드해 나가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틱톡 외에도 커머스, 특히 ‘신 유통(new retail)’과 ‘물류’ 분야에서는, 원조 미국을 뛰어넘는 혁신이 중국에서 나올 것이다.
중국은 인구수와 소득 수준에 의해 가장 큰 단일 시장이기도 하지만, 1–5선 도시 간의 소득 격차가 큰 사회 구조, ‘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제조업 집중 등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인프라 구조를 가져서, 유통/소매, 커머스 분야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혁신이 등장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이는 미국과도 다른 환경이고, 그 외 어느 나라도 이런 독특한 환경을 갖추지 않았다.
커머스, 유통 분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실험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실상 커머스와 유통에 관한 한 중국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알리바바, JD 등의 대형 업체뿐 아니라 새로운 스타트업까지), 그리고 아마존이 하는 일들을 보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 외 게임 분야도 사실상 이제 미국(+유럽)과 중국, 양대 시장으로 나누어졌다고 보는데, 이 시장은 그 자체로 독자적이고 독특한 시장이니만큼 논외로 한다.)
츄하이 Chuhai 出海
역사적으로 늘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장사를 해온 중국 상인들의 특징인지 모르지만, 중국 스타트업들은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 해외 시장 진출에 아주 적극적이다. 이 추세를 중국인 스스로 츄하이(Chuhai, 出海)라는 용어로 설명할 정도로 중요한 트렌드다.
이는 텐센트, 알리바바 등의 대규모 업체뿐이 아니다. 스타트업도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해외 진출에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적극적이고, 그 범위도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동남아, 인도 시장에 그치지 않고, 남미, 아프리카까지 이른다.
디디의 브라질 승차 공유(ride hailing) 서비스 99개 인수뿐 아니라 ‘우버 포 트럭(Uber for Trucks)’인 만방그룹(Manbang Group) 화차방(Huochebang)의 브라질 투자, 원래 오페라(Opera)가 설립한 아프리카의 핀테크 기업 오페이(OPay)를 중국 기업이 인수하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일, 아프리카 핸드폰 시장의 압도적 1위 업체가 된 트렌션(Transsion) 등이 모두 이런 중국 기업의 츄하이 흐름의 대표적 예이다.
그 결과 동남아 유니콘 중 중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인수를 받지 않은 기업이 1–2개 밖에 없고, 인도 모바일 앱 Top 100 중 대략 40%가 중국 기업이 만든 앱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낼 정도이다.
이는 우리가 ‘해외 진출’을 일종의 클리셰 같은 구호 수준으로 반복하는 것과 달리, 실질적인 시장 진출에 집중하는 중국 상인 정신의 결과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명나라 초기 정화의 원정과 비교할 수도 있지만, ‘명 제국의 건국을 널리 알리라’는 명분에 그친 정화의 원정과 비교해 보면, 이번에는 보다 실질적인 경제적 진출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미국 vs.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다. 이제 우리는 미국 시장 일변도의 이해에서 벗어나 중국과 미국을 가능하면 비슷한 비중으로 고민하고 기회를 만들어 가야 할 거라고 본다. 경제 전반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스타트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을 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연구하고,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는 실천이 필수적이 되었다고 본다.
굳이 비교하자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의 등장, 그리고 어떤 기술의 상업화 과정을 구조적으로 잘 시스템화하는 능력은 미국 시장에서 배우고, 이렇게 새로운 기술, 사업 모델/시스템을 수입한 후 어떻게 자기화하고 자기 시장에 맞는 혁신을 만들어 가면서 사업 기회를 만들어 가는지는 중국 시장에서 배우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 과정을 극히 단순화하자면, 해방과 함께 미국 중심의 경제 블록에 편입된 후, 1970–1980년대는 ‘세계를 잡아 먹을 듯이 성장하던’ 일본의 경제와 연동해 성장했고, 1990년대부터는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이 주춤하는 동안 ‘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결국 글로벌 Top 2 강대국이 될’ 중국의 경제 성장과 연동해 성장해 왔다고 본다.
급성장하는 양대 글로벌 경제 대국에 인접해 그들의 경제 성장의 과실을 가장 많이 누려온 이 과정은, 어찌 보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누리지 못한 행운이기도 하고, 오랜 역사 동안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주변국으로서의 줄타기를 나름 잘해왔던 우리의 능력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도 진행형이고.
아직도 중국을 ‘우리나라를 곧 따라잡을 나라’로 생각한다면 이제 그 생각은 접자.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중국이 우리를 앞서 나간 지 이미 오래고, 우리 세대는 어쩌면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통틀어 (GDP 기준으로) ‘중국보다 더 컸던’ 경험을 가지는 유일한 세대가 될 터이니.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