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몰라도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여성들이 산처럼 쌓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건데, 우리가 사회생활을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어린이집 덕분이다. 그런데 내년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나이가 되면 아이의 하원 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빨라진다. 아내도 나도 아직 직장에 있을 시간이고, 아이를 맡아줄 친척은 주변에 없다.
유일한 방법은 사람을 고용해서 아이를 돌보게 하는 것인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문제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12시에 마치고 집에 와야 한다는 것이고, 요즘에는 학교가 온라인 전환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러면 사실상 아이를 종일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나마 학원을 뺑뺑이 돌리면서 버티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몇 주씩 학원이 강제로 문을 닫는 경우도 많고, 어디에서 확진자라도 생기면 당장 2주간의 자가 격리를 어찌할 방법이 없다. 너그러운 회사는 아무렇지 않게 휴가를 몇 주씩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런 회사가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을까? 혹은 초등학생이 되었는데도 한글도 못 뗀 채 집에 있거나, 혼자 점심 챙겨 먹으며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를 내버려 둘 부모가 몇이나 있을까?
육아휴직을 보장해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곤 하지만, 대부분은 출산 후 아이가 신생아이던 시절 육아휴직을 소진한 경우가 많다. 대체로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현실을 미리 알고, 육아휴직을 반년에서 1년 정도 남겨두기도 하는데, 당장 1년 뒤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코로나 이전에는 K-육아센터라는 ‘태권도장’이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와 밥 먹이고 운동시키고, 미술학원이나 피아노학원까지 보내주는 역할을 했다는데, 지금은 그조차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방과 후 돌봄교실도 운영되지 않는 학교도 있을뿐더러, 돌봄교실은 무언가를 가르치고 학습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을 방치했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도 많다. 그러다 보면 부모 둘 중 한 명은 직장을 그만두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대개 우리나라 맞벌이와 노동구조 현실에 남자가 소득이 월 100만 원이라도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경우 주로 여성들이 직장을 포기한다. 그렇게 한 번 직장을 그만두고 몇 년간, 적어도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 정도까지 일을 쉬고 나면 특별한 전문직이 아닌 한 직장으로 복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 경우 직장을 포기하지 않은 쪽이 외벌이로 가정을 지탱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어지간해서는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란, 우리 사회가 어떻게든 간신히 이어왔던 취약한 부분들이 폭로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태권도장 하나 문 닫아버리는 것으로, 경력단절여성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취약해진 어느 가정의 수입구조는 다시 빈부격차를 강화한다.
그 시점에 집이라도 하나 가진 사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을지 모르겠으나, 둘이 열심히 벌어 집 한 채 가지자고 마음먹었던 가정은 사실상 그런 최소한의 미래 계획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한 시대의 위기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비바람이라면, 다른 어느 가정, 어느 집단, 어느 계층에는 유달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든 말든, 직장을 다니든 그만두든 모두 개인의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선택은 집단적으로 아예 특정한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다. 특히 사회적인 위기는 그런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문제는 그 선택이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혼을 하는 것, 아이를 낳는 것, 직장을 포기하지 않는 것, 아이를 더 잘 키우고 싶은 것, 그 모든 선택이 딜레마의 극한에서 선택하는, 낭떠러지에서 어쩔 수 없이 내딛는 최후의 결단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인간이 살아갈 사회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더 나은 삶을 함께 살아가고자 만든 사회라는 것은,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온 어느 인간들을 낭떠러지까지 몰아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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