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여성들이 어느 정도 아이를 키우고 다시 수익 창출하는 ‘일’을 하기 정말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소득공제, 세금 등등의 문제 앞에서 가성비를 따지면 애매하다는 것이다.
가령 남편의 소득이 주 소득인 가정의 경우, 아내가 자기 일 해서 연간 700만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소득공제 혜택이 없어진다. 반면 아내가 일용직 근로자(건설현장 근무 또는 3개월 이상 미고용 상태 입증 가능)일 때에는 1천만 미만은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내가 개인과외 교습을 하는데 연간 소득이 500 이상이 되면 공제를 받을 수 없다.
이외에도 자잘한 여러 케이스가 있다. 대충 종합해서 보자면, 초중고 재학 연령의 자녀가 있는 대졸 이상 학력의 경력 단절 여성이 다시 일하여 소득이 발생한다고 했을 때, 여성이 사업자등록을 하는 경우와 4대 보험이 별도 보장되는 곳의 취업이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셈이 복잡해진다.
- 이전에 남편 쪽으로 소득 공제를 몰았던 의료보험·공제·세금 등에서 새롭게 발생할 수 있는 부가적인 비용을 고려해야 하고(상당히 큼)
- 여성의 근무시간 중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추가적인 양육비용(부모 퇴근 전까지 아이들을 대신 돌보는 시간에 사용하는 그 모든 비용. 도우미, 학원비, 부모님 용돈 등등. 이것도 매우 큼)을 계산해야 하며
- 아무래도 소셜 생활을 영위하는 중에는 여성 자신도 이러저러한 개인 잡비가 부가적으로 더 발생하니(최소한 옷, 신발, 기본 미용비 등) 이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빼고도 비교적 손실 누수가 없는 상황이 되려면 최소한 연간 3000만원은 받아야 한다. (두 자녀인 경우, 사실 저 모든 비용을 제하고도 ‘이익’이 남겨지려면 최소 4500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여성일지라도 한 10여 년 경력이 끊겼고, 의료나 법률 등 특수한 전문 분야가 아닌 다음에는 연봉 3천 이상 주겠으니 오라는 곳이 거의 없다. 젊은 애들도 일 못 하고 있거늘.
고학력 여성이 번역 일을 종일 죽어라 해도, 혹은 이벤트 전시 기획의 외주를 파트 타임으로 해도 1시간당 근로 소득은 이래저래 따지면 마트 캐셔의 1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냉정하게 보자면 마트 캐셔 하루 5시간 근무가 번역 5시간보다 더 가성비가 좋다. (지난 15년간 내가 이것을 제대로 체험했다. 전공이 미술사, 미술교육이라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하고.)
실제로 꽤 많은 북미 지역의 한가정들도 한쪽 수입이 적정선일 때는 다른 한쪽 배우자가 일을 안 하고 가사 및 육아에 전담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미국, 캐나다의 여성 취업 현황이 우리보다 좋기는 하지만, 고소득 고학력일수록 남편만 일하거나 아내만 일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한쪽으로 수입원을 몰아주는 대신 각종 보험, 세제, 공제 혜택을 최대치로 당기는 작전이더라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북미 유럽 지역은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비율이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게 높다는 정도랄까.
아이들 아침밥 먹여 학교 보내 놓고 짬짬이 몇 시간 일하고, 오후에는 하교한 아이들 숙제 챙겨가며 학원 보내주고 장 보고, 청소와 빨래를 하며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 재우고 다시 서너 시간 정도 일거리에 집중하면 한 달에 100 만원 정도 수입이 생긴다. 남편이 청소와 빨래를 대신 하고, 그 시간에 더 일해서 수입을 올린다 한들 8개월 동안 800만원 벌면 손에 떨어지는 ‘수익’은 미미해진다.
연간 수익 700만 원을 넘을 때 이런저런 소득공제 혜택 없이 연말 정산을 하고 나면 200만원이 빠진다. 이걸 경험하고 나면… 내가 순수하게 내 재능 혹은 역량을 발휘하여 근로한 대가로 받는 돈은 말 그대로 개인 용돈에서 끝이 난다. 그러니 전업주부 수준의 육아를 하면서 가성비 좋은 수입 구조는 연간 700만 원 미만 수준에 맞추어 일하는 것이다. 정신 에너지 소모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이제는 고민을 다시 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당장의 가성비를 고려하며 이 상태를 유지한다면, ‘나의 커리어’는 점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총 이익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나의 일을 늦추어서는 안 될 터. 생각이 갈래 갈래, 실타래 갈래 길이다.
물론 제도 탓만은 아니다. 특히 내 경우는, 결혼과 동시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임신·출산·육아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력이 끊겼다. 국가나 시댁이, 혹은 어떤 조직이 강요한 것도 아닌 순수한 ‘나의 선택’이었다. 만약 결혼 후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아마도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녔을 것이고, 친정이든 시댁이든 SOS를 청했을 것이다.
그래서 ‘운명과 팔자’라는 게 있긴 있나보다 싶어지는 것이다. 이제 와서 내 보석 같은 남매와 그 시절을 되바꾸라고 해도 그건 거절이다. 또 내 아이들 잘 큰 거 생각하면 이만한 보상도, 연봉도 없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면, 여성들이여. 웬만하면 결혼 초기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멈추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 하라. 경력을 끊지 말라. 그리고 인문학 쪽을 전공해서 빨간펜 선생님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진지하게 특수 전문직 기술을 배울 것을 권한다. 이조차 싫으면 결혼을 하지 말자. 정확히는 아이를 낳지 말자.
아무리 당신이 괜찮은 경력을 가지고 있고, 영어·중국어·일어를 할 수 있다고 이력에서 쓴다 한들 1년에 700만 원 이상 벌면 손해가 될까 벌벌 떠는 고학력자라면 이미 절반은 패배했다는 이야기다. (응, 내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부탁인데 전업주부에게 “왜 자기계발 안 하냐고, 재능 썩히지 말고 자기만 생각하며 일 좀 하라고”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까워도 본인이 더 아까울 것이다. 집안마다 사정이 있다. 재능도 역량도 있는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무슨 가부장 그늘이 마냥 편하고 좋은 똥멍충이 ‘유한부인’이라서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일전에 누가 나보고 그러더라. “당신 커리어 잘못 쌓았다. 이제 애들 그만 챙기고 네 일이나 하라”고. 글쎄, 나는 그 말이 참 아팠다.
덧. 아, 현행 부동산법으로는 집을 구입해서 공동명의로 등록하고 싶어도 아내가 고정 수입이 없으면 수입 있는 남편으로부터 구입한 부동산 금액의 일부를 ‘증여’하는 형태로 빌려서(?) 등록해야 한다. 이거 사람들이 많이 모르더라.
덧2. 남편 연봉이 세후 1억 이상이면 700의 경계는 흐려질 것이다. 그러나 세전 5000에서 8000 사이인 경우 배우자가 700 이상 3000 이하를 벌면 두 자녀 4인 가족일 경우 대부분 똔똔 혹은 마이너스가 난다. 그러나 경력은 이어갈 수 있다. 다만 체력과 정신력을 갈면서 버텨야 한다.
원문: 송주영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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