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오늘 늦을 것 같아. 미안해.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시청 공무원으로 일할 때, 함께 일하는 주무관님은 매일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때마다 아이에게 전화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이는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며 스트레스에 가끔은 남편과 다투기도 하셨다.
옆 팀의 주무관님은 출산 후에 육아휴직을 하셨는데 결국 1년 후에 도저히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가 어렵다며 일을 그만두셨다. 또 다른 주무관님은 출산 후 업무에 복귀해서도 매일같이 아이를 맡기는 친정엄마한테 너무 미안하고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이런 모습을 매일같이 마주하는 결혼 안 한 직원들은 ‘결혼은 뭐 어찌하더라도 아이는 진짜 고민을 많이 하고 가져야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공무원만한 일이 없다는데?”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내가 매일같이 만나는 공무원 엄마들의 일상은 그렇게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며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는 직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이 나라에 내가 일할 수 있는 직장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그만둔 데는 정말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어쩌면 그중 가장 큰 이유가 이곳에서의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여기서의 직장생활을 이어가더라도 나는 ‘엄마 늦어’라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가 되거나, 아이가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일을 그만둔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일과 가정의 밸런스를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내 평생의 숙원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내 일도 잘 해내고 가정도 잘 보살필 수 있는 여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러한 고민 끝에 찾은 방법이 프리랜서가 되는 것이었다. 업무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고 업무량도 내가 정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프리랜서가 되기 위한 준비로 세계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도 해보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하고 싶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지금은 내가 꿈꿨던 삶의 방식에 가까워져 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기를 가진다는 것의 의미
결혼도 하기 전부터 육아에 대한 고민을 했으니 너무 앞서나갔다는 생각도 든다. 결혼하기 전에는 빨리 아이를 낳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를 어렵게 가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를 가지기 위해서 노력한 지 1년이 지나자 불안함에 난임검사를 예약했는데 검사날짜가 오기 전에 내가 생긴 것을 알게 된 엄마 아빠는 눈물을 터뜨렸다고 했다.
나이 서른이 다가오자 주변에서 선배들의 난임클리닉 방문기가 적지 않게 들려왔다. 그때부터 내가 얼마나 소중한 딸인지 말해주기 위해 들려줬던 엄마의 이야기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엄마 딸인데 혹시 나도 아기가 어렵게 생기는 체질이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 시작되면서 한 살이라도 어리고 건강할 때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에 결혼을 서두르고 싶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적절한 시기에 좋은 사람을 만나 작년 10월 결혼을 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육아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당장 아이를 낳는다? 집과 함께 얻어진 대출금, 아이를 잘 키우는 엄마가 되겠다며 너무 미리부터 포기한 직장, 프리랜서로 더 성장하기 위해 필요할 자기계발 등등. 결혼하기 전에는 막연했던 부담이 두 세배는 크게 느껴졌다.
만 서른 전에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결혼은 했는데 대체 아기는 언제 가질 수 있는 것이며, 내가 아기를 가질 수나 있을까?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했는데 육아 때문에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새로운 도전에 머뭇거리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이를 가질 용기는 없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고민하며 점점 쪼그라드는 나의 모습이 찌질하게 느껴질 때쯤 ‘퇴사학교’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강의를 발견했다.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워킹맘 관련된 포스트 하나를 읽고 너무 마음이 동해 타임라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내렸던 페이지가 있다. 그때 처음 접했던 ‘내가니엄마’라는 페이지의 운영자인 이혜린 강사님의 강의라고 했다. 아직 엄마도 아닌 나지만 그녀도 나와 같은 고민을 거쳐왔다는 위로와 응원을 듣고 싶어서였는지 바로 수업을 신청했다.
“일하는 여자로 남아주세요. 제 딸을 위해서.”
강연 마지막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이기적인 부탁을 하고 싶다는 서두를 던지면서 말이다. 4살 딸아이를 키우며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루하루를 아주 ‘빡세게’ 살고 있다는 그녀는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해보면 어느 순간 모두 해결하고 있다는 위로를 전했다.
일과 육아. 말 그대로 아주 빡세고 힘들지만 병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놓지 않는 워킹맘들이 세상에 많아져야 미래 우리의 딸들 역시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여자로 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어찌나 큰 응원이 되던지.
우리나라의 수많은 엄마들은 여자가 육아와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했던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어려웠다. 그렇게 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안타까워하며 자랐던 딸인 내가, 내 딸에게도 그런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 딸 역시 그런 엄마가 되길 바라지 않기에, 지금의 나는 아주 많이 ‘빡세더라도’ 절대 일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여기서 ‘일’은 직장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 엄마가 아닌,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내 이름 석 자로 사회에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술을 전공한 우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즉 밥솥에 밥을 앉힐 수 있을 만큼 컸을 때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고도 없는 지방에 아빠를 따라가 10년 동안 나와 동생을 키우는 데 전념하다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엄마는 출근을 시작했다. 10년이라는 경력단절이 있었으니 쉬운 건 없었다. 비정규직 미술강사로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출강을 하고, 작가로서 틈나는 대로 조금씩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쯤 엄마는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하는 작가가 되었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가 되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쯤 엄마는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고, 지금은 심리상담센터를 직접 운영하는 대표님이 되었다.
10년의 경력단절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엄마는 한 번도 ‘일’을 쉰 적은 없었다. 집에서 우리를 키우면서도 동네 내 친구들을 모아서 미술을 가르쳤고, 학교에서 학부모 방과 후 교사도 하고, 어린 우리들을 재워놓고 어두운 거실에서 작은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엄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놓지 않았기에 10년의 공백기 이후에도 다시 자신만의 진짜 ‘일’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항상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재주가 많은 우리 엄마를 자랑하고 싶어 학교에서 ‘엄마 동원령’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손을 들고는 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나는 우리 엄마가 ‘일하는 여자’라 자랑스럽다.
인생의 선택은 ‘내’가 해야 감당할 수 있다
아동발달과정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사로 일하신다는 이혜린 강사님은 아이에게 생각보다 많은 인풋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상황에 의해, 환경에 의해 ‘나’를 희생한 엄마들이 오히려 아이에게 강압적이고 더 많은 기대로 아이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며 사례들을 들려줬다.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엄마, 그래서 행복한 엄마가 아이의 정서 발달에 더욱 좋다는 것이다.
일하는 여자들은 같은 고민을 한다.
- 결혼을 할 것인가.
- 아이를 낳을 것인가.
- 일을 그만둘 것인가.
이 세 가지의 선택은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그런데 그 선택을 ‘내’가 한 게 아니라면 그 뒷감당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그 선택으로 인해 얻게 되는 후회와 우울감은 누구의 몫이 될 것인가. 강사님은 이러한 선택의 중심에 ‘내’가 있지 않다면 그에 따르는 고통스러운 결과를 감내할 수 없다고 강조하셨다.
요즘 부쩍 더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의 사고는 참 자기중심적으로 설계되어있다. 어떠한 인생을 살더라도 결국 내가 현재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해왔던 나의 모든 선택이 옳았다고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선택이 아닌 경우에는 불행의 원인을 주변에 돌릴 수 밖에 없다.
그 화살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돌아간다면 얼마나 마음아픈 일일까? 그래서 내 아이를 키울 때도 다른 주변 어떠한 말에도 흔들릴 필요 없이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나에게도, 나의 아이에게도 의미 없는 희생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출산이, 또 육아가 두려워 일에 대한 도전을 망설이고 있던 내가 얻어온 해결방법은 아주 클리쉐하게도 “할 수 있다”였다. 조금 빡세긴 하지만, 그리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당연 내가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비용이 있을지라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아니기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본인의 성장을 위해 아무리 작은 노력일지라도 절대 놓지 않았던 엄마를 내가 자랑스러워했던 것처럼, 나의 딸도 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나의 딸도 그런 여자이자 엄마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내 또래의 수많은 재능있는 여성들도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직장, 어떤 가족, 어떤 환경 등 나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 결정한 ‘내’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한 ‘나’로 살아주면 좋겠다.
사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과 우리 사회가 꼭 이렇게 ‘빡센’ 삶을 마주하고 있는 여성들을 더없이 지지해주고 응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건 또 다른 문제로 나중에 다시 글을 써보고 싶다.)
원문: 윤지민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