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담당자를 정한다면 우리 회사의 ‘세계관’을 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종의 ‘사회실험’의 룰을 정하고, 우리가 합의한 룰에 의거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상과 벌을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느 정도 행복하게 살며 비즈니스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성과를 내는… 뭐 그런 집단이다.
창업을 하면 주변 창업가로부터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곤 하는데,
-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 인사가 만사다.
- 결국은 사람이다.
-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
등등… 상황에 따라 그 복잡미묘한 상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주는 말들을 듣는다. (하루 동안 인간을 대하는 극단의 반대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인사 담당자는 조직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뭐 기본적으로 몇 배는 더 이런 현타가 온다. 회사의 룰을 한번 바꾸거나 새로운 제도가 셋업되면, 대표한테는 말 못 하거나 전달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수준으로 카톡, 이메일, 슬랙, 직접 대면 등의 방식으로 전달된다. 릴리즈 한번 하고 나면 CS가 마구 들어오는 것과 비슷하다.
직원들은 인사 담당자가 경영진(대표) 편이라고 생각하고, 경영진은 인사 담당자도 결국 직원이라고 생각하니 이들은 이도 저도 아니어서 외롭다. 대표는 같이 창업한 이사들이라도 있지. (종종 대표가 공동 창업자 없는데 이후에 입사한 인담이랑 급격히 마음의 위로를 서로 해주기도 한다. 인담 입장에선 ‘내가 직원들 고충도 들어야 하는데 사측인 대표 한풀이도 들어야 하나’ 싶어 더블업으로 괴롭고.)
여하튼, 인사 담당자와 잘 이야기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몇 개 이야기하자면.
1. 대표자가 사람을 대하는 철학 명확히 하기
성선설 VS 성악설. 사실 이 노선만 정해주어도 매우 편하다. 사람들은 선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굳건히 믿는 넷플릭스나 구글 스타일인지 아니면 사람은 원래 탐욕 가득하게 태어났기에 통제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이에 따라서 인담이 설계해야 하는 제도는 매우 달라진다. 예를 들어 ‘업무에 필요한 것들은 회사에서 다 해드립니다’ 했는데, 사람들을 성악설적 관점으로 바라보느냐 성선설적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담은 회사 비품 신청에서 관리까지의 과정에 대한 언어 설계와 방법이 매우 달라질 수 있다.
- 면접 볼 때 아예 처음부터 물어보면 좋을 듯.
- 특정 사건이 한 번씩 있으면 뒤통수 씨게 맞고 급돌변해 30년간 가져온 인간에 대한 생각이 정반대의 철학으로 바뀔 수 있다.
2. 내가 하고자 하는 이유와 얻고 싶은 결과 설명하기
갑자기 “우리도 OKR 하자” 내지 “우리도 이번 분기부터 평가 보상 제도를 만들고파”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대부분 다른 대표님의 강의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고 그러시는 경우가 많다. 하고 싶으시다면 인담들에게 설명을 해주면 목적한 바를 더 잘 얻으실 수 있다. 예를 들어,
평가 보상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어요.
왜냐면(여기 중요) 처음에 선발되신 신입분들이 2년이 지나니 각각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람마다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니 그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근데 그 대우를 해드릴 때 그래도 각기 어떤 기준으로 이런 보상을 받는지 알고 싶어 하실 거고… 다른 회사에서 데리고 갈까 봐 걱정이고… […]
그래서(더욱 중요) 인담님께서 사람들을 평가/피드백하는 여러 방법과 사례를 좀 알아봐 주시고, 우리 조직에 잘 맞는 것이 뭔지 제안해주시고, 필요한 예산과 시기와 방법 등등을 알려주셔서 함께 논의하시면 좋겠습니다.
라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문화도 회사의 설립도 너무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다른 스타트업 대표님이 만든 평가-보상 엑셀 테이블을 들고 오시거나 ‘우와 넷플릭스 이렇게 한다던데 우리도 이걸루!’ 하며 삘 충만해 인담에게 ‘당장 다음 달부터 시행하면 좋겠어요’ 이거 노노… 가끔 이런 대표님들 때문에 급하게 앞뒤 설명 없이 우선 평가/ 보상 관련 로직이나 엑셀 시트 달라고 하시는 분들 여럿 만났다. 종종 이런 분들 보면 퇴사를 권유하고 싶다.
3. 향후 회사 계획 공유해주기 (최소 6개월 전)
인력난이라 사람을 뽑겠다고 마음 먹으면 뭐 다음 달에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다. 보통 작은 기업의 경우 인담이 경영진/이사급인 경우가 드물다. 그렇다 보니 회사의 방향성이나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빠르게 알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인력난으로 채용이 정말 어렵다 보니 최소 6개월 전 정도부터는 채용 계획을 짜는 게 좋다. 그래야 사람도 알아보고 채용 과정도 거치는데 뭐 ‘당장 다음 달에 이거 신사업 할 거니 사람 뽑아주세요’ 진짜 이러지 말자. 헤드헌터 쓰고 광고 돌린다고 우리같이 작고 귀여운 스타트업에 그렇게 빨리 사람이 오지는 않습니다.
4. 추가로 해주면 좋은 배려
다양한 인사 협업 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
플렉스, 핏플, 레몬베이스, 시프티 등 좋은 툴 많아요. 노가다로 엑셀 스프레드 만들고 f/u하기에 인담이 처리하는 행정 서류는 느므 많습니다. 슬랙, 구글 스위트 쓰셔서 편하시잖아요. 디자이너에게 모든 이미지를 직접 그리고, 직접 사진으로 찍어서 쓰라고 하시는 거랑 다를 바 없습니다.
법무사, 노무사, 세무사, 변리사, 변호사와의 협업으로 마음의 짐, 리스크 줄여주기
인담에게 종종 법무 서류를 변호사 없이 검토하라고 요청하거나 여러 계약 서류를 구글에서 서칭해서 (10년 전 거) 다운받거나 다른 회사에서 쓰던 것으로 주며 돈을 아끼고 그 엄청난 부담을 개인에게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디자이너에게 상업용 아닌 개인용 불법 이미지, 폰트 쓰라고 하는 리스크랑 비슷합니다.
학습과 다양한 모임 지원해주기
인담은 인담끼리 모입니다. 뭐 대표님들도 대표끼리 모이시며 어려움을 이야기하시잖아요? 인담들도 다양한 교육도 듣고, 모임에도 가며 다른 회사의 ‘사회 실험’의 결과를 듣고 우리 조직에도 반영하고 공부도 합니다. 이런 모임도 적극 지원해주세요. 우리 회사에서의 제도 정착 및 실험 비용을 세이브할 수 있습니다.
예산 배분해주기
마케팅 담당자 뽑았다고 모든 고객이 오가닉으로 유입되는 것이 아니듯, 인담 뽑았다고 채용 막 잘 되고 그렇지 않습니다. 헤드헌터도 쓰기도 하고 복지를 위한 예산 배분도 인사담당자도 조직을 위한 A/B 테스트도 해볼 수 있도록 예산의 권한을 잘 배분해주세요.
좋은 노트북 사주기
들어가야 하는 정부 사이트 엄청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양 낮은 노트북 버버버벅 하고 맛 갑니다. CTO 급은 아니라도 ‘개발자/디자이너 아니니 한글만 열리면 괜찮지?’ 급의 노트북 말고 좋은 거 사주세요. 정부 프로그램 10개 깔면 맛 갑니다.
‘잡일’ 아닙니다. ‘전문 영역’ 입니다.
인담들이 하는 일은 정말 버라이어티한데, 이 영역을 ‘단순행정잡일’ 이라고 종종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슬픈 일입니다. 혹여라도 채용 공고에 이런 이야기 써 놓으셨다면 냉큼 지우세요. 지원자가 믿고 거르는 회사 됩니다.
지금 당장 팀원이 어려우면 인턴이라도 좀 보태주세요.
행정 일들은 오늘 안 하면 티가 안 나지만 이 일들을 효율적으로 해놓을 때, 향후 여러 노무 리스크가 줄고(열심히 번 돈 벌금으로 나가면 매우 아깝…) 향후에 투자 시 서류 준비 등에서 매우 빠르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이 부분은 노가다+ 물리적 시간 업무가 많은데요. 이를 위해 인담 옆에는 전용 스캐너+프린터 하나 놔주시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인턴이나 알바가 필요한지 종종 물어봐 주세요.
마치며
인담들은 퇴사를 경영진과 상의하지 않고 조용히 옮깁니다. 요즘 개발자만큼이나 스타트업의 경험을 가진 인담을 뽑기가 정말 어려워요. 내부에 있는 인담들이 우리 회사에서 경험한 것을 다른 곳에 가서 꽃피우지 않도록 있는 분들 아껴주세요. 오늘도 [전체 공지] 한 번에 DM 문의를 수십 개씩 받으시고 우리 아이가 왜 인턴에 떨어졌는지 해명해 달라는 부모님과 통화해야 하시는 인담들을 위로하며…
아… 추가로 본인보다 높은 쥬니어 개발자 연봉 테이블과 남은 런웨이 자금 사이에서 이러려고 창업했나 하시는, 아직은 작고 귀엽지만 데카콘을 꿈꾸는 대표님들을 +1만큼 더 위로합니다. 아… 추추가로 그 사이에서 투자 후 사람 구해달라는 대표님들의 고민을 들어주시고도 뭘 어쩌지 못하시는 VC들도 위로 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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