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시절 학습을 통해 그리고 길지 않은 컨설턴트 생활에서 보고 배우며 맥킨지식 로지컬 씽킹에 대한 딱 그 정도의 지식과 경험이 있었다. KB 계열사에 로지컬씽킹 기반 문제해결 과정 영업을 위해 방문했다. 당일 갑자기 부사장이 직접 들어 보겠다 해 1:1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온갖 아는 척을 했더랬는데…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건 그가 맥킨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고 파트너까지 올라갔다가 스카우트된 사람이었다는 거. 두고두고 이불 킥 감인 그날 이후 어디 가서 함부로 뭘 안다고 얘기하는 걸 무척 두려워하고 되도록 이론적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 직장 이직 초반 배운 것, 인정받던 것들로 훈수(!) 두 듯 말했다. 그러나 내가 들어간 그 기업은 국내 어느 기업보다 HR 트렌드에 민감하고 리서치를 중시했으며, 벤치마킹도 타스크도 교육투자도 많이 하면서 정말 많은 시도를 하던 기업이었다. 의지의 문제였든, 조직문화의 문제였든, 실행력의 문제였든, 결과가 어땠든 중요한 건 몰라서 하지 않았던 건 없었단 거다.
한 때 열렬히 쫓아다니던 온갖 스터디와 교육을 어느 순간부터 거의 가지 않는다. 정작 내 조직에서 못 찾는 존재감을 그런 모임에 와서 한 발 떨어진 이들에게 찾는 이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작은 성공 경험이나 얕은 지식으로 ‘가르치는’ 사람, 또 그것에 “대단하세요, 멋져요” 하며 서로 우쭈쭈 하는 이들과 있다가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 같아서. 조직의 지침도 있었지만, “동료에게 조소당하지 않겠다”며 스스로도 외부 강의나 발표를 제한하고 스터디도 가려 참여하며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 데나 집중하겠다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스터디에서 열정적이고 실력 있어 뵌다 해서 실제 그가 ‘진짜’인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모임에서 만들어진 네트워크와 이미지의 힘은 꽤 강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누군가를 전문가로 둔갑시키는 걸 쉽게 본다. 더구나 요즘처럼 매체가 다양해지고 온라인 강의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스타트업계엔 그렇게 부풀려진 사람이 참 많구나 한다. 네트워크가 넓을수록, 어딘가에 노출이 많이 될수록, 뭔가 많이 나누고 설명할수록.
그러나 이런 거품들보다 힘든 건 실제 성과를 내 본 사람, 실력도 있는 사람, 인정도 꽤 받는 사람들의 ‘한 수 가르침’ 태도다. 주로 must, must not으로 상황을 보고 말하는 이들. 남의 말도 이렇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 워낙 엄지 척 해주는 이들이 많아 어느새 본인이 정답이라 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본인이 알거나 확신하는 것들을 다른 이들은 몰라서 못 하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결코 내가 많이 알아서는 아니다. 다만 모 기업 재직 중 감사하게도 회사가 내게 투자한 교육비를 얼추 따져도 기천 이상이고, CEO 스태프로 일하며 밥 먹고 하는 일이 온갖 리서치였으니 이런 말 할 최소 요건은 갖춘 것 같아 굳이 궁시렁거려 보자면. 적어도 상대가 내게 기본 이론부터 설명할 때 ‘당신보단 내가 훨씬 더 많이 아는 거 같은데…’ 싶은 때가 있다. 더구나 HR 관련이라면.
그래도 예전엔 “그건 아니까 됐고, 다음!” 했지만 요즘은 그냥 “아~ 그렇군요, 그렇죠” 한다. “그래, 어디 얘기해 봐”도 아니지만 몰라서 듣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거. 그저 그 속에 ‘척’이 있는지는 몰라도 눈을 빛내며 열심인 게 좋고 어쨌든 잘해보려 하는 모습이 좋으니 호응할 뿐.
이제 생각하면 예전 그 부사장은 내가 얼마나 가소로웠을 것인가. 그럼에도 그는 비웃는 표정 한번 짓지 않고 1시간을 들어주었다. 심지어 질문도 해가며. 전 직장의 동료나 선배들도 “그걸 우리가 모르겠니” 하긴 했어도 내가 열심히 준비한 걸 격려하며 한번 해봐라 했다. 이쪽 업계에 오고 나서 낯선 환경, 리더십 등 상황이 달라도 조직을 운영하는 데 관통하는 뭔가는 똑같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방법론이나 관점을 변화시켜야 할 수 있겠구나’가 지난 반년간의 결론이다.
그런 내게 ‘왜 이렇게 하냐’ 또는 ‘왜 이렇게 안 하냐’며 ‘이건 ~라는 건데 ~해야 하고’라는 인사 이론을 얘기하고, 온갖 용어를 넣어 정리한 자료들을 보여주며 가르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솔직히 가끔은 이론과 자료의 수준을 보며 뭘 저리 자랑스럽게 말하는 걸까 어이없을 때도 있지만…
이럴 때면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떠벌리고 가르치려 들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량한 지식으로 무시하는 같잖은 오만을 부리고 살았을까 반성하곤 한다. 부사장과 선배들이 내 얘길 그냥 듣고 있었듯, 이미 많은 시도를 했음에도 어려웠듯, 이미 알면서 익숙하고 능숙히 해오던 일을 안 하거나 못 하고 있을 땐 그 이유가 뭘까부터 이해하는 게 먼저다.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닐 수 있는 거. 아무리 잘나도 이걸 무시하고 얘기하는 이들은 시시하다. 애초에 정답(?)이 존재하는지 의심하고, 무려 그 정답이 나라고 하지 않으려 기 쓰고 노력하는 데에도 오래 걸렸고, ‘정답’을 주장하는 이들의 말을 이전보단 웃으며 끝까지 들으려 하는 데도 꽤 걸렸다. (물론 지금도 노력 중이라는 거지 자주 욱한다.) 그래도 타산지석을 통해 오늘도 한 뼘 더 ‘성숙’해진다 믿는다. 지긋지긋한 ‘성장’ 대신 말이다.
원문: Lotus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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