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후드(Robinhood)는 미국의 대표적인 주식매매 앱이다. 2013년 설립되어 2015년 앱을 출시했고, ‘무료 수수료’를 앞세워 급성장했다. 가입자가 3천만이 넘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부자와 전문가가 아닌 대중과 젊은 세대를 위한 쉽고 재미있는 투자, ‘투자의 민주화’를 표방한다.
근데 투자업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투자자 중 하나인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는 최근 인터뷰를 포함하여 기회가 될 때마다 로빈후드를 맹비난한다. 투자자들의 투기적 행위를 조장하고 주식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로빈후드는 이를 ‘업계 고인물들의 꼰대성 발언’ 정도로 치부한다. 정말 그럴까?
도박판에는 ‘게임이 몇 판 돌았는데 누가 호구인지 모르겠다면, 당신이 바로 호구’라는 명언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당신이 어떤 제품을 쓰는데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당신(정보)이 바로 팔리는 상품’(If you’re not paying for the product; You’re the product)라는 말이 유명하다. 로빈후드의 사업모델은 이 두 개의 명언이 동시에 들어맞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로빈후드 고객들은 주식 거래에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로빈후드는 2020년 745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어떻게 직원들 월급을 주고, 어마어마한 시스템 운영비용을 감당했을까? 이들은 과거 자신들의 수익 모델을 자세히 공개하기 꺼렸는데, 2–3년 전 그 내용이 드러나며 논란이 되었다.
2020년 1분기 기준 로빈후드 수익의 70%는 PFOF, 15%는 대출(주식담보), 15%는 수수료였다.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PFOF(Payment for Order Flow)는 로빈후드가 사용자들의 주문 정보를 제삼자에게 팔아서 얻은 수익이라는 뜻이다. 시타델 같은 헤지펀드나 퀀트 트레이딩 회사들은 로빈후드에 연간 수천억 원을 지불하고 데이터를 사 간다. 불법은 아니다.
고객의 주문 정보는 바둑으로 치면 그 사람의 모든 기보이고, 도박으로 치면 그 사람의 모든 게임 히스토리다. 과거 어떤 상황에서 어떤 플레이(베팅)를 했었는지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데이터를 통해 개인이나 집단의 성향과 행동 패턴을 파악하는 기술은 엄청나게 빨리 발전해왔다.
로빈후드의 데이터를 사간 회사들은 첨단 알고리즘과 고성능 장비를 가지고 로빈후드 고객들의 행동패턴을 분석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게임을 즐긴다. 개미들의 데이터를 사는데 수천억을 쓴다는 것은, 그걸 활용해서 개미들로부터 수조 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로빈후드가 중간에서 장난을 치든 말든 투자자가 중심을 잡고 건전하게 투자하면 되는 것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맞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무의식, 본능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면 말이다.
아무리 건전한 투자를 다짐한 사람도 주식 앱이 계속 시장의 새로운 정보와 계좌의 수익률을 푸시로 띄워대면 자꾸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거래를 하고 싶어진다.
게다가 ‘무료’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심리적 경계를 무너뜨린다. 왠지 거래를 하지 않으면 손해 같다. 투자자의 뇌는 점점 도박꾼의 뇌로 변해간다. 거래를 더 많이 하게 되고, 더 위험한 거래를 하게 된다. 그럴수록 상대방의 손에는 더 많은 데이터가 쥐어진다.
2020년 6월, 로빈후드 사용자인 20세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옵션 마진 거래에서 8억 원이 넘는 예상 손실이 뜬 것을 보고 좌절한 것이다.
데이터로 무장한 기관이 개미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을 때 선호하는 게임은 뭘까? 승률이 높고, 승부가 빠른 게임이다. 주식보다는 옵션이 그렇고, 거기다 상대에게 돈을 빌려줘서(마진) 판돈을 키운다면 더 빨리 게임을 끝낼 수 있다.
사람은 불안하고 절박한 상황일수록 본능에 의존하게 되는데, 본능은 이성보다 예측하기 쉽다. 기관의 승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옵션 마진 거래의 미친 듯한 변동성은 개미의 멘탈을 뒤흔들고 순식간에 잔고를 제로, 심지어 마이너스로 만들어버린다. 이 대학생의 계좌처럼.
‘타짜’들이 ‘공사’에 들어갈 때, ‘호구’에게 접근해서 ‘신변을 파악’한 후 ‘본 게임’으로 꼬셔오는 역할을 ‘모집책’이라 한다. 로빈후드가 하는 일이 그거 아닌가? 다른 점이라면, ‘투자’의 탈을 쓰고 온라인에서 ‘스타트업’ 방식으로 대규모로 효율적으로 한다는 것?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알고리즘에 얼마나 취약한지 피부로 느낀다. 일어나 눈꼽을 떼기도 전에 스마트폰에 손이 갈 때, 잠깐 알림이 와서 스마트폰을 들었는데 한참 다른 짓을 하는 나를 발견할 때, 연속해서 재생되는 동영상을 보다 보니 몇 시간이 지났음을 깨달을 때, 그렇게 울고 짜증 내던 아이가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순간 조용해질 때, 타임라인에 뜬 광고가 마침 내가 구매하려고 했던 거라 뭔가 무서운 기분이 들 때…
사실 데이터 알고리즘은 우리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우리의 행동을 들여다보고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좀 불편한 느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부작용이라 해봤자 광고를 보는 귀찮음, 소소한 충동구매, 약간의 시간 낭비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하지만, 개미들이 금융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이런 데이터 알고리즘을 적으로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로빈후드는 잘 보여준다. 개미들은 자신이 어떤 함정에 빠졌는지도 모르고 죽는다. 그냥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한다(물론 잘못도 없진 않지).
뭐 세상에 착한 비즈니스만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카지노도 있고 담배회사도 있으니까, 사람들에게는 바보짓을 할 자유도 있으니까, 로빈후드 같은 회사도 존재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가증스러운 이유는 소위 ‘투자의 민주화’를 외치며 보통 사람들을 위한 ‘로빈후드’가 되겠다고 떠들어대기 때문이다. 회사의 모든 시스템이 ‘카지노의 대중화’라고 외치는데, 간판에는 ‘투자의 민주화’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로빈후드에 6,500만 달러의 벌금을 때렸다. 고객의 정보를 팔아 수익을 내왔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다. 미국 금융산업규제국(FINRA) 또한 로빈후드에 7,000만 달러에 달하는 역대 최대의 벌금(배상금 포함)을 부과했다.
옵션거래에 부적합한 투자자들에게 옵션거래를 허용하고, 마진거래처럼 위험한 투자와 관련해 고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으며, 신분 도용 및 사기 연루 의심 고객에게 신규 계좌를 열어주고, 시스템 장애로 고객의 거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뉴욕주 금융당국 또한 로빈후드의 자금세탁방지규정 위반에 대해 벌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이 정도면 거의 ‘미안하지만 너네 좀 망해주면 안 되겠니?’ 수준 아닌가.
로빈후드는 코로나 이후 급등한 실적에 힘입어 7월 1일 나스닥 상장을 위한 IPO 서류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 대학생의 유족은 로빈후드와 합의했다.
국내에도 ‘한국의 로빈후드’를 꿈꾸는 회사들이 좀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증권사들도 PFOF를 안 했다 뿐이지, 무료 수수료를 기반으로 고빈도/고위험 거래를 통해 먹고사는 구조는 오히려 로빈후드보다 한참 선배다(일부 이런 구조를 벗어나고자 하는 곳도 있다).
어쨌든 ‘로빈후드’를 꿈꾼다면, 자신이 꿈꾸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길 바란다. 알고도 그 길을 가겠다면 두 손 모아 실패를 빌어주겠다. 돈은 좀 벌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신의 충성고객들은 대부분 불행해질 것이고, 당신은 감독당국, 검찰, 법원이랑 아주 친하게 지내야 할 것이다.
8/30 추가
SEC 의장인 게리 겐슬러는 고객 주문정보 판매(PFOF)가 근본적 이해 상충 문제를 내포한다며, 이를 전면 금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상장 후 85달러까지 치솟았던 로빈후드 주가는 한 달도 안 되어 40달러대로 떨어졌다.
원문: 변화와 혁신, 금융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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