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많은 기업이 전면적 또는 부분적 재택근무를 시행합니다.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좋고, 더 편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서 좋고, 무엇보다도 대인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부담을 덜 수 있어서 선호합니다.
하지만 경영진의 경우 여전히 출근 근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비대면 근무의 경우 출근 근무에 비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입니다. 지난 1,2차 유행 때는 반강제적으로 재택근무를 해야만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느낀 대표님들이 그때의 경험을 통해 다양한 경영상 판단을 하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재택근무를 희망하지 않았어도 해야만 하는 기간이 있었기에 이 수요를 맞추기 위해 다양한 비대면 업무 솔루션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협업 도구들은 물론이고, 출퇴근 기록 서비스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단순히 체크인/체크아웃의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바일 GPS기반으로 홈오피스 등 정해진 공간 반경 몇 미터 이내에서 로그인을 해야만 출근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을 갖추었더군요.
자리에는 앉아 있지만 모두 웹캠을 켜고 일하는 회사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컴퓨터에 마우스가 일정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자리에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관리자에게 알림이 가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어떠세요? 이런 관리 문화에서 더 나은 성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제가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신기한 게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경영이라고 하면 숫자를 중심으로 한 과학적 관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인사나 조직관리는 물론이고 마케팅, 경영전략, 심지어 SCM과 재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교과서에서 ‘신뢰’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굉장히 추상적인 단어이고 혹자는 사기꾼들이 가장 많이 쓰는 어휘라고도 하는데 이 용어가 실제 비즈니스뿐 아니라 경영학 이론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개념으로 쓰입니다.
관리자가 실무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기록하고 감시하는 환경은 그 이면에 ‘너를 믿고 맡기지 못하겠다’라는 인식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기에 몇 시에 출근하는지, 매시간 어떤 업무를 얼마나 근면하게 하는지, 업무 중 딴짓을 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고 합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것을 잘하는 관리자가 일을 잘하는 관리자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경영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시도가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약 130년 전
공장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옆에서 그들이 일하는 시간을 초시계로 측정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프레데릭 테일러입니다. 산업공학의 관점에서는 작업의 표준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경영관리의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이고, 그를 두고 피터 드러커는 “그의 과학적 관리법과 그 뒤를 잇는 산업공학(IE)이야말로 세계를 변화시킨 미국의 지혜”라고 극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인간을 도구로 보는 관점이라는 무한 경쟁에 강요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는 물론 자본가들에게도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테일러리즘의 장점을 받아들여 더 입체화시켜 그 부작용조차 극대화한 것이 헨리 포드입니다. 포디즘(Fordism)이라 불리는 컨베이어 공정은 말 그대로 노동자를 톱니바퀴의 부품 하나로 취급했고 각 공정의 시간과 효율을 줄이는 것이 산업공학의 과제였던 시절이었습니다. 회사는 미국식 자본주의 상징이 되어 막대한 부를 이루었지만 노동환경은 산업혁명 초기 이후 가장 열악한 상태로 몰렸습니다.
미국의 경영학자 맥그리거는 1960년대에 동기부여에 관한 유명한 이론인 XY이론을 발표했습니다. 경영학과 산업동기심리학의 고전입니다. 여기서 그는 두 종류의 관점을 대조합니다.
X이론
- 인간은 선천적으로 일을 싫어하며, 가능한 한 일을 하지 않고 지냈으면 한다.
- 기업 내의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통제, 명령, 상벌이 필요하다.
- 종업원은 대체로 평범하며, 자발적으로 책임을 지기보다는 명령받기를 좋아하고 안전제일주의의 사고/행동을 취한다.
Y이론
- 오락이나 휴식과 마찬가지로 일에 심신을 바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 상벌만이 기업목표 달성의 수단은 아니다. 조건에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목표를 향해 전력을 기울이려고 한다.
- 책임의 회피, 야심의 결여, 안전제일주의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 새로운 당면문제를 잘 처리하는 능력은 특정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 오히려 현재 기업 내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굳이 비교하자면 성악설/성선설과 비슷합니다. 당시에는 이를 관점의 차이로 보았습니다. 정답은 없으며 인간 본성을 X이론으로 보느냐 Y이론으로 보느냐에 따라 리더십이나 동기부여의 방법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쏟아져나오는 후속 연구들은 그의 고전 이론을 말 그대로 올드하게 보이게 했습니다. 정답이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여러분의 관리자가 어떤 관점으로 여러분을 보았을 때 동기를 받습니까?
1980년대에는 GE의 회장이었던 잭 웰치가 있었습니다. 헨리 포드가 노동자를 톱니의 바퀴로 보았다면 잭 웰치는 회계장부의 숫자로 보았습니다. 고정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1등 사업부가 아닌 사업은 과감히 철수하고 인력은 가차 없이 해고해 순이익률을 높이는 그의 경영 방식은 한때 전 세계 경영계의 스탠다드처럼 인식되었습니다. 지금도 단기 재무실적 개선만을 목표로 하는 회사들은 이 방식을 가장 효율적이라 신앙처럼 믿습니다. (당연히 수많은 경영학 연구들은 이 문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가족 세습을 절대악처럼 보지만, 서구에서는 가족 경영의 장점이 많다는 학자들도 제법 있습니다. 투자자본이 인수한 기업이나 고용된 전문 경영인이 운영하는 회사들은 단기 실적 개선의 늪에 빠져 장기 목표를 무시하는 데 반해, 창업자와 그의 자손들이 직접 경영하는 기업은 롱텀 플랜(Long-term plan)을 가지고 영속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숫자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경영으로의 전환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강조되어 왔습니다. 이어 CSR, CSV 최근엔 ESG까지 사람과 신뢰를 중심으로 한 경영이 대세가 된 시대입니다. 그러나 마인드는 테일러의 시대에 머무르는 경우를 여전히 더러 봅니다.
OKR에서 말하는 ‘목표’의 핵심, 동기부여
존 도어(John Doer)는 “가슴을 뛰게 하는 목표”를 세우라고 말합니다. 이런 목표는 결코 남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감시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남이 세운 목표에 몰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표 설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관리자의 역할도 명확해집니다. 실무자들이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움’과 ‘지지’를 해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맥그리거의 XY이론의 관점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자, 여러분이 관리자라면 아래 두 관점 중 어느 것이 서로에게 더 효과적일까요?
- “저 직원은 재택을 시키면 일하는 척만 하고 딴짓을 할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수시로 보고도 시키고 긴장을 주어야겠어.”
- “서로 약속한 목표만 도달할 수 있다면 그 과정은 직원이 창의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 보아야겠다.”
현대의 거의 모든 경영학 이론은 같은 답을 말합니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의심하게 되죠. 서로 못 믿는 이런 조직문화에서 어떻게 성과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럼 여기서 KPI에 관한 이야기를 또 안 할 수 없겠네요.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
피터 드러커의 말은 오늘날 경영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격언이 아닌가 합니다. 마치 격언처럼 외우고 다니시는 분들도 많이 보았고, 액자로 만들어서 걸어 놓은 회사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측정(Measure)”은 “평가(Evaluation)”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KPI는 핵심 성과 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의 약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I를 Indicator가 아니라 Index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구요. Index와 Indicator의 차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동차의 속도를 알려주는 계기판 있지요? 그게 Indicator입니다.
우리는 계기판을 점수를 매기기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평균 시속 100km/h의 도로를 운전하면서 계기판을 보았을 때 내가 80km/h이면 “내가 지금 천천히 가는구나, 조금 속도를 올려야겠다” 하고, 120km/h이면 “지금 과속하는구나, 조금 속도를 낮춰야겠다” 하는 목적으로 쓰는 것이 계기판입니다.
이렇듯 KPI는 현재 업무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계량적으로 판단하고, 향후 업무 활동을 정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업 문화에서 KPI는 그 자체가 최종 결과 지표로 사용됩니다. 마치 시험지의 정답처럼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MBO 기반의 성과관리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KPI를 최종 지표로 사용하기 때문에 과정이 무시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불완전 판매를 하는 영업사원들이 그렇습니다. 매출 숫자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부정한 방법이나 개인의 성과를 위해 팀의 성과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입니다. 또한 한번 세운 목표를 바꾸기 어려운 현상도 나타납니다. 그 자체가 전사 목표에 cascading down된 상태이기 때문에 애자일하지 못합니다.
도전적이지도 않습니다. 달성률을 기반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쉬운 목표만 세우고 달성하려고 엄살을 핍니다. “어렵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와 같은 태도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ALIGN’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개인의 KPI 달성을 위해 조직의 KPI를 간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부서간 경쟁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또한 당연히 단기 목표의 연속만 보기 때문에 장기 목표를 보기 어렵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성과평가의 폐단이 이러한 잘못된 성과관리로 인해 발생합니다. KPI는 최종지표가 아니라 경영 현황에 대한 계기판의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측정은 하되, 평가는 다른 관점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분이 혼란스러워하시는 존 도어의 말 “OKR은 보상에 사용하지 말라“는 이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관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어휘에 대해서도 한번 볼게요. 성과 “평가(Evaluation)”를 받는다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저 말이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당연히 평가를 위해서만 일을 보게 될 겁니다. 저 ‘평가’라는 말을 성과 ‘관리(Management)’로 바꾸면 어감이 어떤가요? 조금 부드러워진 느낌이 납니다. 만약 관리자의 역할이 성과평가나 성과관리가 아니라 성과 “코칭(Coaching)”이나 성과 “돕기(Supporting)”이라면 어떠세요?
‘평가받는다’는 것으로 동기부여 받는 직장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채찍질하면 말이 뛰어가는, 그야말로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급의 원시적 형태의 동기부여입니다. 스스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시켜주는 것, 서로 믿고 공동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협력해주는 것. 이것이 성과개발의 핵심입니다.
마치며
범죄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마을이 있다면 그곳에 경찰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부정한 행위가 하나도 없는 조직이라면 감사부서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완전히 상호신뢰하는 조직이 있다면 ‘평가’란 것은 없어도 됩니다. ‘성과’만 보면 됩니다. 그것이 오늘날 앞서가는 글로벌 기업들의 트렌드입니다.
제도보다 문화가 먼저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 한들 상호신뢰하는 문화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성과가 나나요.
원문: 최효석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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