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환경은 교육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나아가 교육의 환경을 통제함으로서 교육의 내용까지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학습자의 환경을 세팅하는 것은 교육 기획자나 운영자의 중요한 역할이자 실력입니다.
현장에서 자주 접하는 오류는, 교육의 내용과 맞지 않는 배치를 한다거나 아니면 실무자가 어떤 배치가 가장 적절한지 판단하지 못하고 그냥 강의식이냐 토론식이냐로만 구분하는 것입니다. 토론식이냐 실습식이냐에 따라서도 다르고 실습도 퍼실리테이션인지 롤플레잉인지에 따라 다 달라야 합니다. 학습 목표에 따라 최적의 환경 설계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교육 기획자라면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한 번 정리해봅니다.
1. 교실형 / 스쿨형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교육장입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사용하던 교실의 형태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반적인 교육장이나 연수 시설도 퀄리티와 사이즈만 다르지 사진과 같은 형태입니다.
조직 문화의 대가인 헤이르트 호프스테더는 일찍이 “조직 내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권력 거리(Power Distance)가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스쿨형 배치는 그 형태 자체가 위계가 있는 모습입니다. 우선 앞에는 내용을 전달하는 한 명의 교사가 있고, 마주 보며 다수 학생이 그것을 듣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소통에 제한이 있고 일방향성 강의를 할 수밖에 없는 형태입니다.
- 장점: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정보를 전달하는 형태의 교육, 제한된 시간에 많은 내용을 알려줘야 하는 교육에서는 사실 가장 효율적인 형태입니다. 단 이 장점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특징이 단점입니다.
- 단점: 소통이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교사와 학생 간의 질의와 응답 수준을 넘지 못하며 학생 간 소통도 어렵기에 교육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습 같은 활동에도 제약이 있는 형태라 사실상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많은 진도를 빠르게 나가야 하는 암기식 교육에 최적화된 형태입니다.
2. 세미나형 / 콘퍼런스형
이 형태는 스쿨형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다만 더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교육자와 교육생(이 형태에서는 보통 연사와 청중)이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콘퍼런스 이후에 IT 솔루션을 이용해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기술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형태를 조금이라도 보완하기 위한 것이지, 이 형태에서는 근본적으로 상호작용이 거의 일어날 수 없습니다.
보통 대학교의 대형 강의나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 콘퍼런스에서 사용하는 형태입니다. 이런 형태의 세션에서는 사실상 정보를 전달하는 형태의 교육 외에는 효과를 거의 낼 수 없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거의 같습니다. 유능한 스피커는 저런 자리에서도 관객들의 미세한 현장 분위기에 맞추어 분위기를 끌어갈 수 있지만, 매우 고도의 기술입니다.
- 장점: 한 명의 강사(연사)로 매우 많은 인원에게 정보를 전달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사업적으로는 인당 교육비를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또한 완전히 구조화된 교육을 하기 때문에 즉흥적인 실수가 잘 나지 않습니다. 빠른 시간에 준비된 내용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 단점: 인터랙션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실 연극에 가까운 장르입니다. 준비된 내용 외적인 것은 커버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육의 전이(transformation)는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 교육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3. 토론형 / 콜로퀴움형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즘 대학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강의실의 형태는 위 사진과 같은 콜로퀴움형 강의실입니다. U자형 또는 ㄷ자 형으로 단차를 두게 설계하여, 교수자와 학생들의 거리를 위계를 두고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학생들끼리도 얼굴을 보며 토론을 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최근 개보수되는 대학의 대형 강의실은 이러한 형태가 많으며, MBA를 운영하는 비즈니스 스쿨은 이 형태가 스탠더드입니다. 왜냐하면 미국 Top MBA는 모든 수업을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형태 자체가 주어진 토픽 시나리오를 가지고 학생들끼리 내내 토론하는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육 방식에 가장 적합한 형태입니다.
- 장점: 스쿨형의 단점을 보완해, 대규모 인원이 참가할 수 있으면서도 사각지대 없이 모두가 참여 가능한 형태입니다.
- 단점: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에는 유리하나 그룹 활동에는 제약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즈니스스쿨에서는 이런 강의실에서는 전체 토론을 하고, 그룹 활동은 다른 소강의실로 분반해 진행합니다. 액티비티를 할 수 없다는 한계점도 명확합니다. 딱 케이스스터디를 위해 최적화된 강의실 형태입니다.
4. 팀 테이블형
일반적으로 기업교육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형태입니다. 개인 책상 3개를 붙여서 조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세팅한 구성입니다. 평소에는 스쿨형으로 사용하다가 필요 시 그룹형으로 바꿔서 하는 등, 구성의 유연성이 있기 때문에 기업 연수원 등에서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이 세팅이 가장 많이 쓰이는 이유는 범용성에 있습니다. 앞에서 나왔던 형태들의 장점을 골고루 취합니다. 앞에서 교수자가 설명을 할 때는 전면을 집중 할 수 있으며, 위치를 옮기지 않은 상태에서 그룹 활동이 가능하고, 토론에도 용이하고, 필요 시 자리 배치도 바꿔가며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규모이면 좋지만 대규모 워크숍에도 쓰일 수 있습니다. 이 배치는 보통 6인 1조로 진행되며, 실습의 비중이 많이 있는 교육일지라도 숙련된 강사의 경우 4–5개조, 즉 24–30명 정도까지는 커버할 수 있습니다. 보조 강사가 있는 경우 더 많은 인원도 가능합니다.
- 장점: 모든 형태의 장점을 고루 갖춘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 단점: 마찬가지로 다른 형태의 단점들도 고루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적으로는 가장 편하기에 가장 널리 사용됩니다.
5. 연회형 / 타운 미팅형
팀 테이블형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테이블이 원형이라는 것 외에도 큰 차이들이 있습니다. 우선 일자형 테이블 세 개를 붙여 만든 팀 테이블(현장에서는 주로 T 테이블이라 부릅니다)은 사실 완전히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자리에 따라 거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짝 작업(Pair-work)를 할 때도 옆자리 가까운 사람과만 하게 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그에 반해 라운드 테이블은 집단으로 토론을 할 때 보다 균일한 거리에서 진행이 가능합니다. 별 차이가 아닐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이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홀 전면에 슬라이드나 연사가 있을 경우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이런 세팅에서는 앞에서 중앙 진행을 할 때는 등을 돌린 사람들은 자리를 돌려야 하는 불편이 있습니다. T 테이블의 경우에는 뒤를 돌지는 않고 옆으로 보면 되기 때문에 자리를 옮길 정도의 불편은 아닙니다.
사실 이 테이블의 가장 큰 문제는, 자리가 형식을 만든다고, 이 테이블에서 진행하면 워크숍만 하고 끝나는 경우를 거의 못 봤습니다. 대부분 다과나 식사를 함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활동 그 자체에 집중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장점: 같은 테이블 내에 위계가 없습니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 단점: 등 보이게 앉은 사람은 매우 불편합니다. 식사를 기다리게 됩니다.
6. 갤러리형
요즘 가장 선진화된 교육에서 많이 사용하는 형태는 갤러리형 형태입니다. 형태라기보다는 형태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주어진 장소가 아닌 자유로운 공간에서 최대한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공간 그 자체가 교육의 요소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디자인 싱킹이나 퍼실리테이션, 액션 러닝 등의 교육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 장점: 자유도가 높고 학습자의 참여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강의 좀 하신다는 분들은 거의 다 이 방법을 사용합니다.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단점: 자유도가 높고 비구조화된 커리큘럼을 주로 하기 때문에 교수자의 역량에 따른 편차가 큽니다. 또한 교실형과 반대로 진도나 속도가 더디다고 인식할 수 있고, 소수의 인원으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인당 비용 관점에서는 매우 비싼 편입니다. 경험 학습(Experiential Learning)에는 적합하나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7. 온라인
사실 온라인은 one of them이 아니라 결국 온라인 vs 오프라인이지요. 코로나 이후 교육의 현장이 온라인으로 매우 빠르게 전환됩니다(이건 워낙 큰 담론이라 차후에 별도의 글로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중 어떤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은 “온라인이 해보니까 효과가 더 좋더라” “아니다 오프라인 경험 없이 무슨 교육이 제대로 되겠느냐”며 갑론을박합니다. 그런데 사실 포인트는 이것이 아닙니다. 어느 것이 더 낫다가 아니라 온라인에 적합한 교육이 있고, 오프라인에 적합한 교육이 있습니다.
서로의 매체별 특징을 잘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논의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매체 설계에 대한 고민 없이 교육 설계가 이루어지는 경우입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교육은 온라인의 특성에 맞도록 짜야 하는데, 오프라인에서 모이지 못하니 같은 내용을 온라인에서 설명한다는 접근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마치며
이 글의 제목에서와같이, 교육의 성과는 자리의 배치에서 이미 결정된다고 한 이유는 “내용은 형식을 따른다”는 명제가 여기서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갤러리형으로 절대 불가합니다. 토익 수업을 액션 러닝으로 진행하는 건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그냥 족집게식으로 알려주고 외우는 게 가장 좋습니다. 콜로퀴움형 배치에서는 퍼실리테이션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강의 현장은 스쿨형인데 매우 교육생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하는 후기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애초에 웬만해서는 인터랙션을 일으키기 매우 어려운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교육 기획자들은 수업을 설계할 때, 중요한 요소로서 자리 배치를 고려하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제가 가장 선호하는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아래 그림과 같은 형태의 워크숍을 가장 선호합니다.
디자인 싱킹이나 퍼실리테이션에서 주로 하는 방식인데 참여-기록-설명이 동시에 일어나는 형태입니다. 또는 아래와 같이 완전히 비구조화된 상태에서 그룹 코칭 형태로 진행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애초에 슬라이드 같은 건 사용하지 않고 진행합니다.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비구조화 또는 반구조화된 형태로 진행하기 때문에 진행자의 역량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특징이 있지만, 그것이 잘 받쳐주었을 때는 다른 어떤 교육보다 효과가 크다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보시는 기획자님들도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을 기억하시면서 여러분의 기획에 맞는 환경 설계에 더욱 관심을 가져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원문: 최효석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