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이라는 직업의 한계와 어려움을 잘 안다.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 역시 어떻게 하면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분투했다.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현대판 노예에 빗대는 이유와 속성 역시 어떤 부분은 공감이 간다. 의사결정권이 없고, 결국 상명하복해야 하는 존재. 언제든 필요에 의해 버려지고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애로사항이 십분 공감된다. 회사는 결정적인 순간, 개인의 성장보단 조직의 유지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사실 대체로 그렇다).
그럼에도 그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 정해진 월급을 받으면서 최대한 많은 것을 우리 역시 득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1. 비용 최소화: 똥도 회사에서 싸자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통쾌한 농담 중 하나였달까.
야, 나는 똥도 돈 받으면서 싸.
그게 무슨 말이야?
난 무조건 똥을 회사에서 근무시간에 싸거든. 회사원은 결국 시급제인 건데, 똥 싸면서 돈 버는 거잖아. 난 그래서 집에서 똥 안 싸.
낄낄대며 웃고 나서 동료가 한 말의 진의를 생각해보면 이렇다. 회사 밖에서 돈을 벌기 위해 분투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교통비, 식비, 사무용품비 등 온갖 잡비들이 든다. 회사 다닐 땐 당연하게 쓰던 것들이 내 돈 내고 하나씩 준비하려면 어찌나 아까운지. 절로 투철한 절약 정신을 겸비하게 된다.
회사를 다닐 때와 같은 근무 여건을 갖추고 일하려면, 비용까지 감안해 내가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더 큰 수익을 목표로 해야 함은 물론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아낄 수 있는 비용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적지 않다. 법카를 함부로 둘러쓰거나, 횡령에 준하는 행동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결국 개인의 생산성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물론 그에 인색하게 굴며, 개인의 노동력을 뼛속까지 착취하려 드는 경영자와 관리자가 적지 않은 것을 알지만.
임원이 된다는 것은 어깨에 장착된 ‘뽕’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노예의 종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나, 한 회사에서 임원급에 들어서면 회사에서 대부분의 비용을 지원한다. 차, 기사, 심지어는 집을 지원하는 곳들도 있다.
즉 회사에서 누군가를 임원으로 픽한다는 것은 개인이 오로지 최대의 생산성을 내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외의 모든 비용을 회사가 지불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내가 번 수익으로 비용을 지출할 일이 대부분 사라지고, 내 수익은 오롯이 보존되어 나의 부로 쌓을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2. 경험 최대화: 기업 활동에 대한 감을 익히자
결국 직업은 선택이고, 회사원이 아닌 직업을 선택해 더 승승장구하는 사람과 사례는 널리고 널렸다. 프리랜서든 창업이든, 어떤 형태로든 개인은 결국 자신만의 경제 활동을 해야만 하는 자본주의적 숙명이 있다. 그 단계로 진입했다 치자. 그다음은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
우리는 반드시 지속성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내가 주체가 되어 일하고, 꼴 보기 싫은 동료들을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행복하다(해보니 진짜 그렇다!). 그렇다면 이 좋은 걸 지속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우린 다시 남이 주는 월급이라도 아쉬운 대로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결국 시장에서 크게, 오래 버틴 기업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의사결정을 거치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개인은 결국 이미 존재하는 기업들이 거친 과정, 고민, 의사결정과 매우 유사한 걸 해야 하는 순간들을 맞이한다. 해결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활동 내 미션은 대체로 유사하다.
실제로 젊은 나이에 창업, 프리랜서 등으로 자신만의 일을 시작한 많은 사람은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가는 것, 그 길에서 내려야 하는 의사결정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이 있다. 큰 기업이 항상 답을 가진 건 아니지만 돈, 인력 등 많은 재원을 가지고 내린 의사결정과 그 이유는 무엇인지 갈구하게 된다.
회사원의 경험을 거치고 창업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경험치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알게 모르게 회사 다니면서 보고 들은 것, 조직의 변천사, 정치 대립, 업무의 전개 과정들이 탈회사해 일할 때도 나의 능력치와 경험치, DNA로 살아 숨 쉼을 느낄 때가 많다. 작을수록 더 재빠르게 의사 결정하고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때 그런 경험치가 동물적인 감이 되어 더 나은 의사결정과 행동력의 바탕이 되어줄 때가 상당히 많다.
3. 시간 활용 최대화: 반드시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걸 이용하자
나는 결국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하고,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더 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으니 여기서 더 얘기하진 말자.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를 그만두면 그 자존감이 갑작스럽게 회복되며 행복할까.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안다. 존재와 직업의 회의감에 발버둥 치는 것도 한때고, 그 뒤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체념하거나 혹은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하게 된다. 그때 무슨 행동을 하는 개인이 될 것인지는 모두 각자의 선택이다.
비약적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새로운 기업이 탄생하면서 기성세대는 그 기회를 충분히 활용했다. 그들은 여전히 그 기회를 꽉 쥐고 더 많이, 더 오래 가지기 위해 분투하며 청춘들의 숨통을 조인다.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 평생을 바친 뒤 남는 것이 그리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기성세대가 증명해줬다. 그럼 청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반드시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이용하자. 회사에는 공백이 있다. 미친 듯이 야근할 때가 있지만, 반드시 한가할 때가 있다. 할 일이 많지만,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많다. 공백을 활용해, 회사라는 존재 없이 내가 중심이 되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스스로 증명하자.
꼭 큰돈을 벌 필요는 없다. 회사 밖에서 어떤 식으로, 어디에서 돈을 벌 수 있는지 나를 끊임없이 노출하는 게 중요하다. 최대한 많은 재료와 방식에 나를 노출하면서 탈회사 후에 자립할 수 있는 작은 경험과 성공을 축적해두자.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게 가능할까? 쉽진 않다.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달린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를 찾고, 그들과 어울릴 다양한 방법을 찾아나가자.
일단 그걸 맛보지 않으면 회사원의 삶이라는 테두리 밖으로 발을 떼는 것은 연차가 쌓일수록 매우 어려워진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그것을 놓는 게 어려워진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반드시 퇴직/퇴사하게 되고, 좋은 기업은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개인이 기업에게 반드시 진다. 우리는 기업을 이기려 들 게 아니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익혀나갈 필요가 있다.
4. 사례 수집의 최대화: 남들을 구경하자
회사를 나왔다 쳐보자. 창업을 하든 개인으로 일하든 이제 세상과 직접 부딪혀야 한다. 회사라는 울타리 밖에서 만나는 또라이들은 회사 안에서만큼이나 상상 이상이다. 회사 안이든 밖이든, 멀쩡한 사람, 상식 내에서 일하는 사람, 일정을 잘 맞추는 사람, 비즈니스 매너를 갖춘 사람 등은 항상 수요가 높다. 신기하게도 그런 멀쩡한 사람들을 찾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선배와 조직에게 닦여가면서 기름칠이라도 되지만, 회사 밖에서는 아무도 기름 쳐주지 않는다. 그냥 선택되지 않을 뿐이다. 다시 기회라는 것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엉뚱한 시장과 정부를 탓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문제는 그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 자체에 있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는 경우도 생각보다 허다하다.
회사 내에서 최대한 많은 선배, 동료, 후배들의 성공과 실패를 구경하자.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잘되었는지. 그 모든 구경을 내 것으로 흡수해, 결국 제일 나은 비즈니스 스킬을 터득해나가는 것은 굉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회사 밖에서도 결국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렇지 않은 방법으로 탈회사 한 사람들이 있다면 축하한다. 부럽다.
마치며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반드시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괜찮다. 회사를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것,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극대화하자. 원치는 않았지만 길어진 수명 덕에 우린 기성세대보다 더 오래, 많이 일해야 한다. 조급해하거나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하고, 더 많은 가치가 충돌하며, 복잡하게 세분화한다.
기존과 같이 한 가지 방식으로 살아남는 사람들도 더러 있겠지만, 분명 우린 과거보다 더 많은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하며 다양한 방식을 습득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에 진입했다. 이것은 진화일 수도, 고통일 수도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원문: 작가 물킴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