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즈 온 더 블럭’에서 드라마 작가 김은희 씨가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처음 드라마 〈싸인〉이라는 장르물을 하려고 할 때 다들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했어요. 누가 밤 10시에 배 가르는 거 보겠냐고. […] (성공한 뒤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내가 하자 그랬잖아!’ 그랬죠. (웃음)
항상 그렇지만 새로운 길은 불신과 걱정을 동반하고 성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죠. 흔히 홈쇼핑에서 성공하는 회사, 라이브 커머스에서 성공하는 회사들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오늘은 그런 소위 ‘될놈될 회사’의 비밀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쇼호스트로 일하면서 인상 깊었던 세 회사가 있습니다. 모두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을 만드는 회사죠. 홈쇼핑을 발판으로 코스피 상장까지 이른 성장의 아이콘과도 같은 회사들인데, 상품 또한 워낙 훌륭하다 보니 처음 나왔을 때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한 단계 더 큰 성장해야 할 시점에 특히 눈에 띈 회사가 그중 A사.
A사는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문제라는 인식이 만연할 때 채소와 과일을 좀 더 맛있고 다양하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한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세련된 디자인과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쓴 덕에 일찌감치 고급스러운 제품이라는 이미지로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도 마찬가지지만) 어릴 때 어머니가 녹즙기를 구입해서 몇 번 갈아주다가 어느샌가 서랍 어딘가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죠. 이런 제품들은 부지런히 만들어 먹지 않으면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산 주방용품이어도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제품이 과일주스로 눈길을 끌며 인기몰이를 할 때도 이 인기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곧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A사는 이미 같은 고민을 먼저 시작했고, 특히 이 고민에 대한 접근을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보완했기 때문입니다.
A사는 제품 판매 외에도 이 제품을 활용해서 주스를 만들어주는 카페를 운영했는데, 촬영 및 시장조사차 이 카페에 다녀온 뒤로 ‘잘되는 회사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단순한 채소, 과일 주스를 넘어 정말 다양한 주스를 개발 중이었습니다. 주스를 시각적으로 접근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재료의 온도를 다르게 해 재료 층이 분리되는, 마치 플루팅 칵테일 같은 건강 주스를 내기도 하고, 집에서는 먹기 쉽지 않은 신기한 재료를 사용한 메뉴도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일반 손님도 많았지만, A사 직원들이 주스를 마시며 회의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카페는 단순히 부수익 창출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이 제품이 지속적으로 많은 소비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거대한 연구 공간인 셈이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얼마나 소비자에게 선택받을지 사전 조사할 수 있는 마케팅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도 유기농 농산물을 더 잘 팔고 싶어서 채소소믈리에 자격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그 뒤에는 단순히 쇼호스트 석혜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채소소믈리에 석혜림으로 한 번 더 브랜딩되는 것처럼 A회사도 ‘파이토스 개발자’ 과정을 회사 안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교육시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식물이나 농산물이 가지고 있는 영양인 ‘파이토케미컬’ 에서 따온 이름일 듯싶습니다.)
교육을 이수한 사람은 따로 유니폼을 갖춰 입고 바리스타처럼 연구하거나 주스를 만듭니다. 외부에서 인정받는 자격증이 아니더라도 회사 내에 이렇게 자체적인 자격 과정을 만들어서 따로 역할을 만들면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비밀은 단지 가르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A사의 제품이 가진 단점 중 하나는 채소와 과일을 짜고 나면 꽤 많은 양의 찌꺼기가 남는다는 점이었는데, 직원들의 연구 끝에 이 찌꺼기를 사용해서 쿠키, 빵을 만드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계절에 맞춘 시즌 레시피를 만들어 웹사이트, 책자, SNS를 통해 제안하는 방식 또한 직원들의 주도하에 이뤄졌습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비밀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어차피 제품의 완성도는 출시 시점에서 90% 이상이라고 봅니다. 이런 초기 아이디어가 중요한 상품은 버전 2, 버전 3를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따라서 제품이 더 좋아질 수 없다면 이 제품을 꾸준히 사용할 수 있도록, 구입한 사람들이 ‘괜히 샀네’라고 후회하지 않도록 활용 방법을 계속 고민해서 제안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런 작업은 사장 한 명의 힘으로는 할 수 없겠죠.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직원들에게는 좋은 답도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회사는 직원들과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직원들에게 주도적인 마인드를 키워주어야 합니다. A사 곳곳에서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가치와 의미가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타트업〉이라는 드라마가 나올 정도로 스타트업 회사들이 늘었죠.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스스로 회사가 되고 사장이 됩니다. 창업에 관심도 많고요. 이렇게 시작한 회사는 투자를 받거나 그 가치를 인정받아서 소위 ‘유니콘’ 이 됩니다. 회사가 커지고 직원도 많아지죠.
아이디어가 중요한 회사들은 사회 환경이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 시대를 앞선 제품을 만들거나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이런 과정은 필수입니다. A사는 그 부분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회사 직원들과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는 작업에 큰 비중을 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넘어 유럽의 시장을 개척하는 모습에 감탄했어요. 유럽은 전통적으로 유기농 식재료와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굉장히 높은 시장입니다. 그런 유럽의 유치원과 학교에서 채소와 과일에 거부감을 가지는 아이들과 함께 직접 주스를 만들어 먹는 교육을 진행하고 이 과정을 판매의 활로로 삼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건강에 대한 고민, 올바른 식습관에 대한 고민은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의 공통 문제이며 앞으로 지구 환경이 변화될수록 그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A사의 이런 방식은 굉장히 효과적인 성공 비밀입니다. 이런 니즈를 파고들면서 동시에 제품 활용이 주는 가치와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한 것입니다. A사는 주방용품 박람회뿐 아니라 아예 건강 관련 해외 박람회에 진출해 제품의 니즈와 가치로 세계 판매의 활로를 찾고자 했고, 성공적으로 유럽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A사 제품의 원리가 엄청나게 새롭고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력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제품이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던 초기에 A사가 직원들과 구축해온 무형의 공감대와 자체적 브랜딩의 시도는 경쟁사에서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힘입니다. 제품이 지닌 가치나 회사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 공유, 회사와 직원 사이의 연대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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