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즘. 그는 5년 전만 해도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을 위협하는 영화키드였다. 어쩌다 쓴 이야기가 시나리오가 되고, 지원금을 받고,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다. ‘될놈될(되는 놈은 무얼 해도 된다)’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촬영과 편집 시사까지 완벽했다. 이 작품은 단편영화임에도 무려 500…명의 관객만 기록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이 영화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 바로 ‘음료’다. 리얼리티가 생명인 영화에서 아무도 무엇을 마시지 않다니. 이렇게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 오늘은 영화와 드라마의 성공 공식이 되어버린 음료에 대한 이야기다. 젠장 이걸 알았으면! 지금쯤 스필버그의 손을 잡고 용가리3를 찍고 있었을 텐데.
부시맨 X 코카콜라
참신한 시나리오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아프리카 초원에 코카콜라 한 병만 떨어뜨리면 된다. 1980년에 만들어진 영화 ‘부시맨’은 전 세계 관객들을 휩쓸었다. 이 영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코카콜라 병’을 신의 선물이라고 여기는 부시맨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았다. 세상에 코크를 모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단 말이야?!
이 영화에서 주연은 ‘코카콜라’다(코카콜라가 등장하지 않는 2, 3, 4, 5편은 다 망했다). 코카콜라가 음료인 줄 모르는 이들은 코카콜라 병으로 낱알을 거두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사용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료의 인지도 덕분에 잔잔할 법한 이야기가 극적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코카콜라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냐고? 집 앞 마트에 가면 된다. 우리는 이 위대한 음료를 30년간 변함없이 마실 수 있다.
응답하라 1988 X 크라운맥주
사람들의 감성적인 부분을 터치하는 것도 좋은 시나리오를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옛 음료들을 보여줌으로 시청자들을 과거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특히 크라운맥주가 내뿜는 향수는 대단했다. 당시에는 흔한 맥주였지만, 지금은 단종이 되어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인기에 하이트진로는 단종된 ‘크라운맥주’를 재출시했다. 1차 생산량이 보름 만에 완판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의 인기도 있었지만,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중들과 교감을 쌓아왔던 크라운맥주의 역할도 컸다. 사라진 맥주가 드라마를 살리고, 드라마가 사라진 맥주를 재출시한 격.
백 투 더 퓨처 2 X 펩시 퍼펙트
2015년 10월 21일은 이미 지나갔지만 여전히 설레는 ‘미래’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2〉에서 30년의 세월을 거슬러간 미래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는 2015년 미래에서 공중을 떠다니는 호버보드를 타고, 자동으로 끈이 묶이는 나이키를 신고, 펩시 퍼펙트라는 음료를 마신다. 물론 그런 미래는 다가오지 않았…
…을 거라 생각했는데 각 브랜드가 2015년에 맞춰 제작을 시작했다. 로고부터 병의 모양까지 독특한 펩시 퍼펙트는 6,500병 한정 판매가 되었다. 한 병에 무려 20.15달러의 가격이었지만, 영화 속에서 간절히 펩시를 찾던 마티 맥플라이 복장을 한 사람은 공짜(뉴욕 코믹콘에서)라는 것이 함정. 잘 만든 영화 덕분에 사람들도, 음료 모두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007 X 하이네켄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마티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다. 더 이상 제임스 본드는 젊지 않고, 얼리어답터 같은 무기를 쓰지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한물간 오빠. 하지만 50주년을 맞이한 〈007 스카이폴〉은 내가 본 007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이었다.
〈007 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의 변화를 가장 크게 나타낸 것은 ‘마티니’ 대신 ‘하이네켄’ 맥주를 마신다는 것이었다. 단지 주종을 바꿨을 뿐이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관객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형 이제 독한 술은 끊는 거야?”).
하이네켄은 4,500만 유로(약 555억 원)를 들여 007 시리즈의 파트너십을 했다는 후문. 새로 나온 007 시리즈를 보며 제임스 본드가 새겨진 하이네켄을 마시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겠다.
킹스맨 2 X 올드 포레스터 스테이츠맨
새로운 시대의 007은 킹스맨이 이어받았다. 지난해 「킹스맨 2에 등장하는 술」에서도 밝혔지만, 1편을 포문을 여는 술이 비싸기로 유명한 달모어였다면 2편은 미국의 ‘버번위스키’를 찾아가는 음주 여행이었다고 할까?(아니다) 미국 요원들 이름부터 테킬라, 샴페인 막 이래…
〈킹스맨 2〉의 무대는 버번위스키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그리고 이 영화의 미국 요원들의 이름을 딴 위스키가 실제로 출시되었다. ‘올드 포레스터 스테이츠맨 에디션’이다. 그렇다면 〈킹스맨 1〉을 대표하는 술은 판매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음 있기는 한데… 배경이 된 달모어는 2억이 넘는다.
왕좌의 게임 X 화이트 워커
‘WINTER IS COMING’으로 시작되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한 잔의 음료가 등장하면 어떨까? 아마 마시기도 전에 잔혹하게 게임오버가 돼버리겠지. 하지만 이름만으로도 음료를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이 있다. 드라마 속에서 공공의 적인 화이트 워커… 백귀 형님이다. 뭐… 무슨 워커요?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 내가 아는 음료계의 워커. 조니워커에서 화이트 워커 에디션을 낸 것이다. 기존의 양복을 입었던 스트라이딩 맨이 갑주를 입고, 화이트 워커 눈을 했다(“형 눈을 왜 그렇게 떠?”). 발매 소식을 들은 왕좌의 게임 팬들이 화이트 워커 정벌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드라마 속 화이트 워커는 무섭지만, 술은 덜 무서우니까 덤벼.
영화 속에서 당신의 기억에 남는 음료는?
영화나 드라마에 잠깐 등장한 음료가 기억에 남는 이유.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언제나 음료를 마시기 때문이지 않을까? 때문에 잘 넣은 음료는 이야기를 공감이 가고 풍성하게 해준다. 물론 그만큼 잘 알기 때문에 뜬금없는 음료의 등장은 평점을 자이로드롭 시킨다.
나의 잠수로 인해 마치 겨울 같았던 한국영화계의 지난 5년(사실 엄청 잘 됨)을 끝낼 답을 찾았다. 다음 영화에는 무슨 음료를 넣을지 결정만 하면 되는 것이다. 후후… 식혜영화는 어떨까, 콜라는…
원문: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