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특권이 있다면 맥주와 EDM 음악과 새벽까지 지속되는 의미 없는 대화로 여름을 낭비할 권리일 것이다. 20대에는 클럽에서 밤새도록 노는 것이 허용된다. 아니, 권장된다. 그렇게 해야만 진정 한 번뿐인 청춘을 아낌없이 즐기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어쩐지 토요일 밤에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은 재미없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고백하자면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모든 EDM 콘서트를 쫓아다니고, 주말마다 바와 클럽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진 토닉을 물처럼 마시던 시절. 아비치(Avicii)의 죽음은 멀게만 느껴지던 삶의 끝이 처음으로 가까이 와 닿던 순간이었고, 우리는 체인스모커스 (The Chainsmokers)의 노래 가사처럼 살고자 했다. 수많은 노래 가사가 말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청춘을 즐기라고. 과연 술과 파티를 즐기지 않으면 단 한 번뿐인 청춘을 낭비하는 것일까?
그 시절 나와 친구는 조급했던 것 같다. 빨리, 이 젊음이 사그라들기 전에 더 많이 놀고 즐겨야 해. 청춘을 낭비해서는 안 돼. 어찌 보면 이는 젊은 우리의 종교였고, 유일한 스트레스 방어기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저 놀았을 뿐인데 세상은 우리를 칭찬했다. 너희 정말 재미있게 사는구나. 젊음을 잘 보내는구나.
친구들과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가기로 한 전날 밤이었다. 다음날 계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금을 이대로 날려 보낼 수 없었던 나는 이태원으로 출동했다. 진 토닉 한 잔만 마시고 간다는 것이 두 잔이 되고 세잔이 되고… 결국 새벽 3시까지 이태원의 유명한 클럽을 모두 찍고 나오기에 이르렀다.
다음 날 아침. 어마무시한 숙취가 올라왔지만 이미 선금을 지불한 터라 패러글라이딩을 취소할 순 없었다. 친구들은 내가 하늘에서 진 토닉 10잔을 뱉어내는 거 아니냐고 놀려댔지만 나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다행히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전 숙취가 멈췄지만 여전히 컨디션이 바닥이었기에 하늘에 있었던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
그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청춘을 낭비하는 게 무서워 열심히 클럽에 가고 술을 마시며 놀았지만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청춘을 낭비하는 것 아닐까. 생산적인 경험과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었던 시간들을 술에 취한 채로 흘려보낸 것 아닐까.
‘포모 증후군(FOMO: Fear of Missing Out)’이라는 말이 요즘 눈에 자주 띈다. 소셜 미디어를 보면 토요일 밤 모두가 즐거운 파티를 하는 것 같은데 나만 집에 처박혀 있는 것 같다. 다들 제 인생을 최대한의 속도로 즐기는 것 같은데 나만 뭔가 빠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게 바로 포모다. 친구가 초대한 파티에 가지 않은 그 날 하필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초조함 말이다.
포모는 사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에 생겨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확신이 없기에 외부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춘은 싸구려 맥주와 EDM에 낭비되어야 한다는 말을 헌장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위스키와 콜라 대신 스무디와 요가를 즐긴다. 주말에 뭐할 거냐는 회사 사람의 질문에 아침 요가를 하고 브런치를 먹으러 갈 거라고 하니 아직 젊은데 너무 재미없게 사는 거 아니냐는 말이 돌아온다. 유치하게 ‘저기요, 제가 아르민(Armin)만 실물로 세 번 본 사람이거든요…’라고 대답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냥 허허 웃으며 넘긴다.
누군가 청춘인 당신에게 술과 음악을 권유한다면, 그러나 그게 당신 것이 아니라면 굳이 애를 써가며 즐기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에 당신의 것을 하면 된다. 여행이든, 독서든 그 무엇이든. 그게 바로 당신의 청춘을 낭비하지 않고 잘 보내는 일이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든 노래 가사와 영화는 파티와 술과 약물을 즐기는 청춘들을 묘사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현자인 양 집안에 가만히 있는 사람보다 밖에 나와 술과 주말 밤에 돈을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사실 화려한 토요일 밤의 파티 너머에는, 모든 미디어가 청춘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고 떠들어 대는 그 밤의 너머에는, 정말 별것 없다. 일요일 아침의 공허함과 잃어버린 카드지갑, 그리고 몇 개의 흑역사뿐이다. 모두 잘 아시겠지만 말이다.
원문: 최지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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