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열정을 따르세요(Follow Your Passion).
이 얼마나 상투적이면서도 우주의 진리인 양 떠받들어지는 조언인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밤이 다가오면 너무나 아쉬워했으며,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다음 날 아침이 흥분될 정도로 기다려졌다고 한다. 나는 나 또한 그런 열정을 찾아야 된다는 압박 속에 살아왔다. 가슴 두근거리는 소명.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진정한 이유 따위의 것들 말이다.
사람들은 열정을 발견하지 못하면 내 인생이 가치 없이 허비되고 말 것이라고 겁을 줬다. 그 누가 자신의 진정한 가능성을 실현하지 못하고 죽고 싶겠는가? 덕분에 이 협박은 고전적으로 먹힌다.
나는 열심히 열정을 찾아 헤맸다. 초등학생 때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다. 물론 그 나이 때의 꿈이 그렇듯 그냥 내 눈에 멋져 보이는 것을 장래희망에 적어 냈을 뿐이었다. 고등학교 때 몇몇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작가가 되는 것? 글쎄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여행과 대외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시도해봤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없었다.
열정이 있는 척 연기도 해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커리어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자 내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러다가 ‘홍보업(Public Relations)’이 눈에 들어왔다. 적당히 돈도 벌고 내가 잘하는 글짓기 실력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으로 보였고 나는 스스로와 타협했다. 그리고 마치 원래부터 홍보에 열정이 있었던 사람인 마냥 자소서를 썼고, 결국에는 홍보 에이전시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턴 생활을 할수록 나는 ‘가짜’임을 절절히 느꼈다. 사실 인턴 생활 자체는 순탄했다. 일을 꽤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아침에 억지로 눈을 떠 회사로 향해야만 했다.
인턴 생활을 마치고 회사에 취직해 전략팀에서 일했다. 처음 발을 들인 홍보에서 전혀 다른 커리어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이 역시 세상에서 제일가는 전략가가 돼야겠다는 따위의 열정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혀 백그라운드가 없는 분야라 고생도 많이 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서류를 집에 가져와 읽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내 실력은 나아졌고, 그러다 보니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열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년간 업무 일지를 빼곡하게 적은 다이어리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열정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공들인 시간과 노력에 의해 발굴된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만나온 열정의 화신 같은 몇몇 사람은 자기가 지금 하는 일과 동떨어진 전공을 가진 경우가 허다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처음에 내가 이 일을 하게 될지 전혀 몰랐지만 어쨌든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잘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인정을 해줬다. 그래서 나도 이 일이 더욱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열정은 첫눈에 반하는 여름 사랑 같은 게 아니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롱텀 릴레이션십 같은 것이다. 나는 열정이란 찾는 순간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고 배경에는 폭죽이 터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찾으면 그냥 그 자체로 완성이 되어버리는 것 말이다.
하지만 실상 열정을 발굴해내는 것은 첫눈에 반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같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끌림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찰나의 감정을 넘어 진정한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열정도 그런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공기가 바뀌면서 차차 내가 이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구나 깨닫는 과정이다.
모차르트는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쳤고, 피카소도 자기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창조하기까지 당대 사회가 요구했던 미적 틀에 들어맞는 그림들을 수천 장 그렸다. 그들의 창조성은 하늘에서 번개처럼 내려오는 찌릿한 영감이 아닌 수많은 인내와 시간 속에 피어난 산물이었다.
열정을 따르라는 조언은 틀렸다. 이 단순한 조언은 너무나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마치 자신의 소명을 찾아내면 그 순간 인생이 백팔십도 달라지고 모든 게 온전해질 거라고 착각하게끔 만든다. 그러니까 당신도 열정을 찾지 못해 방황한다면 부디 자책하지 말길 바란다. 열정은 단순한 설렘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치를 매기고 삶을 투자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작품이니까.
원문: 최지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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