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올까
어른들은 말했다.
열심히 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야.
스펙, 돈, 능력, 이렇다 할 빽은 없지만 대신 내가 가진 거라고는 ‘열심’으로 풀 충전된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열심‘이란 단어에 갇혀 단순, 무식하게 20대, 30대를 살았다. ‘열심‘의 가치를 일말의 의심 없이 믿었다. 나태가 두려워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잠을 줄이고, 사생활을 멀리 미뤄두고 ‘열심’이란 무기를 장착해 일에 올인했다.
그런데 열심히 살아도, 겨우겨우 그 자리였다. 난 분명 앞으로 나가기 위해 열심히 뛰었는데 제아무리 안간힘을 써봤자 제자리였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어른들의 말을 곱씹으며 참았다. 나의 ‘열심‘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선배들은 말했다.
열심히는 누구나 다 해. 그러니까 잘하는 게 중요해.
잘하는 걸 못하니까 열심히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깨에 힘을 빡 주고 열정적으로 일에 달려들었다. 나중에 이 말을 했던 선배들의 연차가 되고서야 알았다. 열심히 하는 건 열심히 하는 거고, 잘하는 건 잘하는 거였다.
일 잘하는 사람이 잘 쉬기도 했다. 쉬는 동안 충분히 일로 소모한 자신을 위해 새 에너지로 채웠다. 그 힘으로 더 여유롭게 목표에 도달했다. 일 못하는 사람은 쉬어야 할 시간에 ‘난 왜 못하지?’라며 문제를 끌어안고 끙끙거렸다. 끙끙거리는 그 시간도 일을 위한 일종의 ‘열심 행위’로 착각했다. 멍청하게도 난 지극히 후자였다.
어느 날 ‘습관성 열심 주의자’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상대를 밟지 않으면 내가 짓밟히고 마는 치열한 회의가 이어지던 사무실.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회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를 빙빙 맴돌 뿐이었다. 첨예한 의견 대립이 오가고 참석자들 사이에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다들 지칠 대로 지쳐갔고, 저녁 6시 공조실 직원들의 퇴근 시간이 지나면 분명 난방을 껐을 텐데도 계속 점점 실내에는 뜨거운 기운이 꽉 찬 기분이었다. 점점 숨이 가빠지더니 호흡 곤란이 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왔을 때, 도망치듯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빽빽한 빌딩 숲 사이 벤치에 덩그러니 앉아 거친 숨을 토해냈다. 꺽꺽하고 동물의 울음 같은 소리와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열심’이 유일한 내 무기인 줄 알았는데, 그 무기가 내 폐부를 제대로 찔렀다. 이 야심한 시각에 난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원론적인 질문이 화살이 되어 나라는 과녁에 꽂혔다. 한참을 덩그러니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시리도록 푸른 달빛 아래에서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열심’! 이제 안 해!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정리하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회의는 거의 끝나는 분위기였다.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 거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사무실을 뛰쳐나간 사람이 한참을 사라졌다 돌아오니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을 하고 조용히 짐을 쌌다. 그날의 ‘월하(月下) 통곡 파티’ 이후 난 좀 많이 달라졌다.
이 빌어먹을 열심 이제 안 해!
제일 먼저 애쓰는 걸 멈췄다. 생각해 보니 나의 ‘열심’은 무언가를 위한 ‘열심’이 아니었다. 어느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의 말처럼 ‘열심’을 모으기만 하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멍청히 목적도 없이 요령도 없이 열심히만 했다.
결과보다는 난 최선을 다했으니까, 난 열심히 했으니까 하며 자위만 하고 있던 거다. 어른들이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온다고 말했으니까 그 표면적인 말만 어리석게 믿은 것이다. 결승선이 어딘지도, 얼마만큼의 거리인지도 모른 채 달리는 무식한 마라토너였다. 난 42.195km를 달려야 하는데 100m 단거리 선수처럼 매번 전력 질주를 했다. 그 ‘열심’의 대가는 성공이 아닌 번아웃과 공황장애였다.
전전긍긍, 일희일비하며 애쓰던 날들을 떠나보낸 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나를 갈아내면서까지, 내 능력 밖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애쓰는 것을 멈췄다. 선을 넘는 부탁은 손톱깎이처럼 딱 잘라냈다. 그전까지 만해도 내가 거절하면 상대방이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부탁을 들어줬던 때가 있다. 남들의 눈치를 보고,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지나고 보니 거절한다고 나에게 서운해할 사람은 뭔 짓을 해도 떠나갈 사람이다. 내가 능력이 있고, 가치가 있으면 사람들은 내 곁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곁에 있는 사람의 숫자가, 휴대폰 안 연락처의 개수가 내 인간성의 척도는 아니라는 걸 인생에서 여러 사람을 떠나보내고 또 새로 맞이하면서 알게 되었다.
일과를 마무리하는 자영업자처럼 퇴근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셔터’를 내렸다. 사무실을 나오면 일 관련 모든 연락을 껐다. 업무 관련 카톡 방은 무음 처리를 하고, 메일을 열어 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밤 10시, 11시에 온 연락은 곱게 씹었다. 그때 처리하나 다음날 아침에 처리하나 대세에 지장은 없었다. 다음 날 몸이 안 좋아서 약 먹고 일찍 잠들었다고 웃으며 하면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밤늦게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이제 내 개인 시간이 더 소중하게 여기기로 한 것이다.
또 자주 쓰는 것들을 지극히 내 취향의 물건으로 바꿨다. 조금씩 자주 행복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거절하지 못해 쌓아 두었던 누군가 주었던 선물, 사은품 등 내 취향이 아니거나 못생긴 물건들을 처분했다. 그리고 빈자리에 새 물건들을 채워 넣었다.
촌스러운 로고가 박힌 사은품 볼펜 말고, 쓸 때마다 스걱스걱 종이와 닿을 때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만년필로! 선물로 받았지만 버릴 수 없어 하기 싫은 숙제처럼 꾸역꾸역 썼던 머스크향 향수 말고 달콤한 복숭아향+살구향이 나는 향수로! 노트북에 늘 껴두는 USB에는 좋아하는 작은 피겨를 달아 두었다. 메모할 때마다, 달달한 향이 코끝에 스칠 때마다, 달랑거리는 피겨를 볼 때마다 작게 웃음이 번진다.
빌어먹을 열심, 안 해도 꽤 살만해요
내가 죽도록 밉고 싫었던 날들이 있었다. 왜 남들처럼 단단하지도 못하고 대범하지 못할까? 그런데 난 천성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란 사람은 말랑하다 못해 물렁한 순두부에 가깝다. ‘번아웃’이 왔을 때 진흙 괴물처럼 기분 나쁘고 끈질기게 나를 괴롭힌 질문이 몇 가지 있다.
무엇을 위한 ‘열심’이었을까? 누구를 위한 ‘열심’이었을까?
목적 없이, 요령 없이 열심히만 했던 20–30대의 내가 안쓰러웠고, 나에게 미안했다. 일과 나를 구분하고, 일로 가득했던 나의 일상에 하나둘 내 취향의 행복들을 스며들게 하면서 그 미안함과 안쓰러움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혹시 과거의 나처럼 ‘열심’에만 매달려 있을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말하고 싶다.
그 빌어먹을 열심, 안 해도 꽤 살만해요. 아니, 안 하니까 더 살만해요.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