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퇴사하고 시작한 사업이 오랫동안 지지부진하자 고통스런 우울증이 영혼에 흔적을 남기고 지나갔습니다. 그땐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자책만 했죠. 자취방이 숨 막혀 새벽길을 어슬렁거리기도 했고, 까닭 없이 베갯잇을 적시곤 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저는 일상을 회복했고, 자책만 하던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증을 다방면으로 취재하여 『아임낫파인』이라는 영상 시리즈물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럴 때 제가 건넸던 말이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냥 조금 넘어져 있어도, 다시 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뜻이었죠.
그래서 책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를 만났을 때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나의 위로가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여기에 우울증으로 부터 빠져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감.
우울증으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이 쓴 편지
엮은이 제임스 위디는 정신병동에 입원하기 전, 자선단체에서 자살 예방 강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 정신병동에서 자살을 시도하지 않는지 관찰당하는 입장이 되었죠. 전문가도 우울증을 피해갈 수는 없었던 건데요. 단 한 사람만이 그에게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턴이었죠.
제임스, 우울증은 치유될 수 있어요.
제임스는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고, 제임스는 자살시도를 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죠.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죽고 싶다는 얘기를 솔직하게 말하자, 희미하지만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제임스는 ‘치유의 편지’라는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우울증에서 치유된 사람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준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2012년부터 시작한 ‘치유의 편지’ 웹사이트에서는 누구나 편지를 쓸 수 있고 또 읽을 수 있습니다. 책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에는 사이트에 올라온 편지 중 66편이 실렸습니다.
나약하기 때문에 우울증을 겪는 것은 아니에요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저는 가정의학과나 심리상담센터를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특히 남자들은 이를 더 어려워합니다. 실제로 상담센터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이 여자라고 하는데요. 책 속의 ‘로나’의 편지처럼 우리가 우울이나 슬픈 감정을 갖는 건 나약하다고 배워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나약하다는 말을 들었나요? 나약하기 때문에 우울증을 겪는 것은 아니에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죠… 제가 나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한 줄기 빛이 보였어요. 저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또 한심하지도 않았죠.
- p.24
저는 슬프거나 힘들면 항상 이성으로 도망가곤 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하고, 상황이나 혹은 제 감정을 통제하려고 하고, 더욱 하던 일에 전념하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죠. 하지만 이 역시 방어기제의 일환이고, 나아지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상담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울증의 범위를 정확히 알고 싶었고, 내가 그냥 우울한 건지 우울증인건지 구분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든다면 전문가를 만나야 할 때입니다. 우울증이 회복될 수 있다는 가장 긍정적인 신호는, 의사를 만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괴로움을 인지할 수 있다면, 인정할 수 있다면 이미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부 다 괜찮은 척하는 일을 그만 두세요
이 책은 실제로 우울증에 깊이 잠겼던 사람들이 쓴 편지인 만큼, 진실하고 사려 깊은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깊은 우울감과 무력감에 침잠해 있을 때는 활자조차 읽을 힘이 없겠지만, 내가 점점 우울의 늪으로 들어간다고 느껴질 때, 혹은 빠져나올 동아줄이 필요할 때를 위해 구비해둘 것을 추천합니다.
절망적인 때는 누군가의 한 문장, 한 문장에 매달리고 싶고 부여잡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한번이라도 검색창에 ‘우울증의 증상, 죽고 싶을 때’ 등을 검색해본 사람이라면 그 절실함을 이해할 테니까요.
우울증에 관한 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전문가가 쓴 전문 도서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같은 수기인데요. 우울증을 겪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은 없었죠. 제가 만난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은 우울증이 덮칠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구체적인 지침이 실린 책이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도움이 될 만한 지점들이 많아 몇 문장을 공유합니다.
상담 치료를 꼭 받으시길 바랍니다.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세요. 약으로 기분이 나아질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증상을 완화시키는 역할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울증을 혼자만의 비밀로 감추지 마세요. 우울증은 추잡한 비밀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일찍 말할수록,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 혹은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을 더 빨리 만날 수 있습니다.
- p. 70
기운 내세요, 씩씩하게 일어나세요”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자신을 아껴주세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 p. 71
우울증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당신의 몸은 공격받았고 뇌는 타격을 입었을 거예요. 우울증의 여정에는 산봉우리도 있고 계곡도 있어요. 이를 지나고 나면 평탄한 도로를 마음껏 달릴 수 있어요.
- p. 81
고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요
모든 편지에서 공통으로 언급되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지나간다는 것이죠. 우울의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고통 너머에 다른 삶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죠. 하지만 분명히 끝이 있고,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괴로움을 견디기가 훨씬 수월해진다고 말합니다.
아마 당신은 오늘 치유되지 않을 거예요. 다음 주 어쩌면 내년에도 치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하지만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해줄 수 있습니다.
- p. 101
그리고 더 중요한 진실은 삶을 전부 잃었다가 되찾은 사람보다 삶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숨쉬기도 버거운 날들이지만, 오늘 숨쉬기만 잘 해내면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이 편지를 보내는 이들이 입을 모아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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