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우울증과 싸우며 보냈습니다. 공황이 닥쳐올 때는 기분이 바닥을 쳤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무언가와 싸워야 했어요. 기분이 괜찮은 날에는 세상이 눈부시게 보이지만, 느닷없이 기분이 가라앉으면 제 존재의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들곤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얼굴에 드러나지도 않는 질병을 앓게 되어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도 못하게 된 것일까요….
우울증은 질병이 아닌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시도 때도 없이 드리우는 먹구름 아래에서 살아가는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외톨이, 실패자, 쓰레기가 된 기분이 들었어요. 우울증을 겪고 있을 때는 이러한 감정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우울증은 네가 나약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네가 너무 오랫동안 강하게 살아왔다는 신호야.
누군가가 저에게 건네준 이 말이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정말 그랬어요. 저는 가족을 돌보며 그들의 짐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그 짐이 켜켜이 쌓여 결국 우울증으로 번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울증은 많은 사람이 겪는 평범한 질병일 뿐이에요. 저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날도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일어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저에게 의지하는 소중한 가족이 있거든요. 혼자 살고 있다면 억지로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그럼 고립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을 테죠.
가족의 짐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는데,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저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이에요.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과 자신은 그저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상담이나 약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권유받을 수도 있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구하는 일을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모두는 가끔씩 힘을 잃기도 하니까요. 최근에 상담사를 통해 ‘대인 관계 치료’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치료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상태입니다. 지금은 항우울제인 시탈로프람을 복용하고 있지만 전에는 프로작도 복용했어요. 혹시 당신도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계속 드시길 바랍니다.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것은 어때요? 반려동물은 사람을 평가하지 않아요. 기분이 최악일 때도 그들은 당신의 곁에서 함께할 거예요. 무척 힘이 되는 존재죠.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포옹도 좋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제가 울고 있을 때마다 따뜻한 포옹을 건넵니다.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순간이에요.
즐겨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아주 작은 일이라도 괜찮습니다. 그저 한번 시도하기만 해도 괜찮습니다. 매일 삼십 분만이라도, 걱정을 떨치고 가라앉는 기분을 잊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일이에요. 건강을 돌보고 자신을 아껴야 합니다. 더불어 자신보다 남을 더 챙기는 일을 그만두세요. 이제 스스로를 돌볼 차례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저 가벼운 산책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만 해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많습니다. 모임이나 단체에 가입해도 좋고, 자원봉사 기회를 활용해도 좋아요. 물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아요.
스물한 살 때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공황 장애, 강박 장애, 불안증이 계속되었고 심지어 몇 년 동안은 모든 증세가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했죠. 이제 마흔두 살이 되었는데, 꽤 강해진 느낌이 들다가도 갑자기 제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느낌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것이 아닌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행복하게 했던 것 혹은 행복하게 하는 것에 집중하고, 불행한 것은 마음 저편으로 보내려고 애씁니다.
저는 자연을 좋아해요. 그래서 우울한 날에 찌르레기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짓고 담장에 앉아 있는 개똥지빠귀나 아름다운 꽃, 창 너머의 햇살을 보며 몸과 마음을 추스립니다.
저는 우울증이 치료될 수 있다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대신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법과 우울증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쩌면 우울증은 저절로 치유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타인과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마냥 행복하게만 보이는 사람도 가면 뒤에 진짜 감정을 감추고 있기도 하거든요. 우리는 그 가면을 쓰고 있는 날이 더 자주 있을 뿐이에요.
이 편지에 애정과 용기를 함께 담아 보냅니다. 우울증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일이 고되기도 할 테지만, 힘내시길 바랍니다. 절대 당신이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말길 바라요.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니까요.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 이 편지는 「완전히 회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도움될 거예요」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