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을 뒹구는 어린아이의 순박한 미소, 풋풋하고 싱그러운 청춘의 기억, 쏟아지는 태양의 강렬함과 그것을 다 받아내는 대지의 든든한 기운, 비릿한 내음이 진동하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어지럽게 얽힌 빨랫줄과 그 위에서 펄럭이는 자연 소재, 총천연색을 과시하는 향긋한 꽃과 신선한 과일이 넘쳐나는 인생의 행복한 순간.
프랑스를 대표하는 12년 차 패션 브랜드 자크뮈스를 떠올리면 이렇게나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생의 현장과 이미지가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인스타’ 깨나 한 사람이라면 자크뮈스의 컬러풀하고 센슈얼하며 섹슈얼한 공식 인스타그램 이미지의 무차별 공습에 잠깐의 소중한 시간이나마 내어줘도 봤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브랜드는 대체 뭘까?’라면서.
오늘 ‘구하다’에서 소개하고 싶은 패션 브랜드는 소셜 미디어의 시대, 이미지의 집중포화 속에서 자연을 닮아 ‘순수하고 날 것처럼 ‘정제되지 않은’ 디자인과 이미지로 개성적인 매력을 튼튼히 다졌다. 또 각박한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은 꿈 같은 일상의 단면과 꾸밈없이 적나라한 개인의 사생활을 담은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통해 결과적으로 그 어떤 빅 하우스 브랜드보다 ‘영특한’ 마케팅 전략전술 실행에 성공한 곳. 바로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자크뮈스다. 말이 길다.
절망 속에서 꽃피운 사랑
예상치 못한 인생 최대의 절망을 자기 의지와 자기 확신으로 이겨내면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정립한 어린 청년이 꿈을 향해 맨손, 맨몸으로 뛰어든다. 자크뮈스의 창업자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 같다.
프랑스 남부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며 시금치와 당근 등을 재배하던 ‘농부’ 부모님(하지만 예술적인 감성은 그 누구보다 풍부했던)과 함께 자연 속에서 순박하고 평온한 삶을 살던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는 18살이 되던 해에 대도시 프랑스 파리로 넘어가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패션 스쿨 에스모드에 입학한다.
하지만 파리에 올라온 지 1달 만에 그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이는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변화한 계기가 된다. 유한한 시간에 대한 집착,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해진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잠시 패션 매거진에서 아트 디렉터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다가 19살에 곧장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설립한다. 브랜드명은 그의 어머니의 성씨 자크뮈스를 빌려와 그대로 사용했고, 브랜딩의 목적의식과 철학도 단순했다. 그저 그리운 ‘어머니’를 위한 사랑을 담아내는 것.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당신은 농부 집안 출신이니까 패션이나 뷰티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요. 농부들은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가장 시적인 사람들입니다.
- SSENSE INTERVIEW, 2017.3.1.
소설 같은 시작점
빈손으로 시작한 패션 브랜드 자크뮈스, 창립자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가 브랜드를 설립하고 ‘첫 번째로 만든 스커트’에 얽힌 이야기는 소설 속의 한 장면 같다. 몽마르트르 인근의 마르셰 생피에르를 돌아다니다가 커튼을 만들던 소녀를 붙들고 커튼을 만드는 데 얼마가 드느냐고 물었다는 그에게 돌아온 답변, 150유로.
결국 흥정에 성공한 그는 이튿날 100유로와 함께 커튼 천을 가져가 주머니가 없는 스트레이트 스커트 제작에 성공한다. 주머니 제작은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기에 그는 의도하진 않았으나 ‘미니멀리즘’ 패션이라는 딱지를 그의 첫 작업물에 붙이게 된다.
패션 교육도 받지 않고 관련 지식이나 패션 신의 규칙에 대한 이해도 전무했던 그에게 실전 패션 학교이자 인생 학교가 되어준 곳은 꼼데가르송의 파리 부티크였다. 울 소재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자크뮈스의 세 번째 컬렉션을 우연히 본 꼼데가르송의 창업자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가 어린 청년의 단단하고 남다른 크리에이티브에 극찬을 올렸다.
이후 그녀의 남편 아드리안 조페(Adrian Joffe)를 만난다. 아드리안 조페는 꼼데가르송의 최고경영자이자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공동 창업자였다. 자크뮈스의 간곡한 부탁에 따라 자크뮈스는 꼼데가르송 파리 부티크의 세일즈맨으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들의 취향, 패션 브랜드의 운영과 경제적 관점, 패션 디자인의 미학적인 관점 등을 총체적으로 학습한다. 하지만 개인 프로젝트로서의 패션 디자인 또한 멈추지 않고 병행한다.
세계관이 있는 스토리텔링
설립 3년 차인 2012년, 22세의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는 파리 패션위크 공식 쇼에 데뷔한 최연소 디자이너가 된다. 패션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미성숙한 아마추어가 만든 겉멋 든 패션 브랜드, 빅 하우스 브랜드를 모방하기에 바쁜 어설픈 디자인 등 여기저기서 비판과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으나 그 모든 이야기를 꾹꾹 누르고 튀어 오른 자크뮈스의 매력은 ‘패션 디자인’ 그 이상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것을 매혹적으로 풀어낸 스토리텔링의 힘이었다.
자크뮈스는 하나의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마치 영화와 소설, 시 한 편을 구상하듯 특정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가 좋아하는 옷, 음식 등을 상상하면서 구체적인 줄거리와 테마를 설정한단다. 자국 프랑스에 대한 지극한 사랑, 특히 시크하고 도시적이며 꾸밈 있는 파리지앵의 무드가 아닌 자기를 편하게 드러내며 꾸밈없는 프랑스 소녀의 이미지는 컬렉션 구성의 디폴트 값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의 감정이 깊이 박혀 있다. 자크뮈스의 영원한 뮤즈는 정상급 모델도 배우도 아닌 어린 나이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의 ‘어머니’인 셈이다.
먼저 끌어당기면 트렌드가 된다
자기 안에 ‘이브 생로랑’이 있다면서 팔리는 옷, 커머셜한 옷,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대중적인 옷을 만든다고 말하는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 글쎄? 그에겐 무엇보다 트렌드를 만드는 천부적인 감각이 존재하는 듯하다. 모든 일은 순서의 문제이니까.
그가 쏟아내는 자크뮈스의 패션, 디자인 이미지 다발에 무심코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내리던 사람들은 반응한다. 고개를 돌리고 몸을 돌린다. 자크뮈스가 쏟아내는 감각적이고 이미지적인 ‘세계’에 동참하고 싶은 다수의 욕구와 생각은 한데 모여 즉각적인 이미지를 소비하는 인스타그램의 시대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핫’하고 매혹적인 패션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었다.
나도 저 브랜드 알아!
나도 저기 놀러 가고 싶어!
나도 저렇게 입고 자연 속에서 뛰놀고 싶다!”
프렌치 미니멀리즘, 바다와 하늘, 대지의 빛깔을 담은 자연의 색감, 더없이 편하고 느슨한 슬라우치 스타일, 1960–1980년대 프랑스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레트로 룩, 순수한 장난기가 묻어나는 비대칭적 구조와 해체까지. 사실 자크뮈스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스타일을 가지고 시대의 입맛에 맞게 해석해 느낌 있게 내보이는 데 선수다.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 본인도 인정한다. 자기는 ‘혁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지루하되 좋은 방식으로 일할 뿐이라고. 그래서 다만 지루하지만 ‘강력한’ 패션 디자인을 선보인다고!
뭘 좋아하는지 아니까
2019년 6월, 자크뮈스는 브랜드의 10주년을 기념하는 2020 봄/여름 컬렉션을 통해 라벤더가 흐드러진 프랑스 프로방스의 자연 속 핑크 패브릭 캣워크 위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페인팅을 연상케 하는 그야말로 예술적이며 컬러풀한 쇼를 선보였다.
자크뮈스 컬렉션의 감각적인 사진과 영상은 일상에 영감을 주는 느낌 있는 사진을 찾아 헤매며 심미적 재미를 좇는 인스타그램 피플을 열광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강력한 이미지 몇 장으로 일대 소란을 일으키며 그는 새 시대의 성공적 패션 브랜딩을 증명했다.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는 1990년생 인터넷 키드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이미지로 가득한 블로그로 사람들과 소통했고 그쪽 동네에서 꽤 유명 인사였다. 또 브랜드 설립 직후에는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팔았고, 페이스북 페이지로 자신의 컬렉션을 홍보했다. 소셜 미디어가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는 그는 신세대 스마트폰 유저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자기만의 경험칙을 토대로 간파한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자크뮈스의 공식 인스타그램 위에 그는 자신의 일상을 거리낌 없이 노출한다. 공사를 구분하라는 일갈과 함께 소셜 미디어 마케팅, 브랜딩 전문가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는 짓만 그는 골라서 한다. 그런데 그것들은 먹혔다. ‘혹시 그 포스트 봤어?’
팔려야 예술이다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의 인터뷰 기사를 살펴보면 그가 유난히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몇 가지 눈에 걸린다. 바로 ‘집착’과 ‘순진함’ 그리고 ‘자유’이다. 프랑스 남부의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자연과 벗하며 자유롭게 살았던 그는 주변 친구들이 미국 랩뮤직에 심취하고 미국적인 것들에 휘둘릴 때 홀로 프랑스의 음악을 듣고 프랑스의 영화와 드라마만 보았단다.
그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언뜻 국수주의적인(?) 발언도 꽤 눈에 띄는데 그의 말마따나 그의 컬렉션이 결국 자기의 확장이자 자전적인 스토리의 연장선이라면 패션 브랜드 자크뮈스는 프랑스 남부에서 지극히 프랑스스러운 것들에 둘러싸여 순진무구하게 살아온 한 청년이 ‘파리’라는 대도시에 입성해 좌충우돌하는 동안 옛것을 그리워하고 지난 시절의 자유로운 생활 감각을 다시 소환하고자 애를 쓰는 의지가 패션이라는 예술로 승화한 결정체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는데, 그렇다면 그 이야기에 더욱 신빙성이 생기는 것만 같다. 표현 방식의 차이일 뿐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본질은 변함이 없을 테니까.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가 어떤 인터뷰를 통해 던진 메시지 하나가 깊은 잔상으로 남았다. 패션은 ‘시’이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비즈니스’이기도 하다고. 그래서 ‘팔지 못하는’ ‘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모든 컬렉션을 진행하면서 ‘콘셉트’와 실제로 팔리고 사람들이 입을 만한 패션 사이의 실제적인 균형점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는 그의 철학을 접하고 나니, 자크뮈스의 전 세계적인 인기가 다만 환상적인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크뮈스는 정말 스마트했다.
원문: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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