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배우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포스팅이 쏟아진다. 예전 예능 출연 클립을 훑어보고 왜 사람들, 특히 여성-젊은이들이 윤여정에게 열광하는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1.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을 하지 않는다. 예능프로 <택시>에서 “선생님의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이영자에게 “아우 무슨, 나는 교황이 아니야”라며 손사래를 친다. 본인의 말이 사실보다 더 멋지게 보이는 걸 경계한다. 멋져 보이는 크고 거창한 단어 사용을 일부러 피한다.
오늘 기자회견에선 ‘진정성’ 대신 ‘진실하다’는 말로 자꾸 바꾸어 쓰는 모습이 보였다. 한국 기자들 앞에서는 영어를 되도록 안 섞어 쓰려고 수시로 무심코 튀어나오는 영어 단어를 검열하고 있었다. 기성 세대가 거대한 단어를 사용해 꼰대질해대는 데 질린 사람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2.
윤여정의 어법엔 “늙었다”는 말이 아주 많이 나온다. (나이듦이란 점잖은 단어가 아니라) 그런데 이게 “그래서 계속 노력한다.”로 이어진다. 늙어서 타인에게 이정도 충고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스스로에 대해서도 “내가 나 자신을 알면 소크라테스겠죠.”라 한다. 윤여정은 얼마 전 타계한 채현국 선생(“늙은이들이 저 꼴이라는 걸 잘 보아 두어라”)의 소프트한 여성 버전 같다.
3.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비정상회담>에 나왔을 때 살짝 엿보였는데, 그녀가 이 프로를 즐겨 보는 이유가 거기 나온 외국인들이 어떤 개념도 한국 특유의 ‘정형화’해버리기를 안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정형화에 갇혀 있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4.
언뜻 들으면 전혀 그렇게 안 들리는데, 잘 들어 보면 급진적이고 진보적이다.
- “예전엔 빈부격차가 크지 않고 모두 가난해서 상대적 박탈감이 없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 (<비정상회담>)
- “모두 최고(最高), 최고 하는데 굳이? 모두 ‘최중(最中)’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주의자라고 하려나?” (수상 후 기자회견)
- 색을 섞어놓으면 더 아름답다. 무지개도 7색이잖나. 색깔(피부)은 중요치 않다. 백인 흑인 황인… 이렇게 나누는 거, 옳지 않다. 인종, 성별, 게이냐 아니냐 이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이다. (수상후 외국 기자회견)
5.
75세의 노배우가 “사회주의라고 하려나”란 말을 할 정도로 너무 자연스럽게 평등의식이 배어 나오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이혼녀에게 붙는 주홍글씨, 은근한 차별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윤여정은 이혼 후 생활고에 두 아들을 키워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어떻게든 연기를 해야 했다고 한다. 잘하기 위해서 “대본을 성경”삼아 부단히 노력했단다.
※ 추가: 이 부분에 대해 한 페친이 ‘차별 경험만으론 평등의식이 장착되지 않으며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하셨고, 이에 동의한다. 윤여정 배우는 이혼과 그로 받은 차별 대우를 계기로, 화려하게 데뷔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깨지고 새로운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단역부터 다시 시작해 연기를 아예 새로 배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과 접촉했고, 이런 의식을 몸으로 익혔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더 중요한 건 의식적으로 새롭고 다양한 걸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윤 배우가 젊은 배우나 연출자와 인터랙션하는 걸 보며 느낀 것이니, 어디까지나 짐작이다.
6.
이건 좀 번외지만, 리 아이작 정 감독이나 스티븐 연이나 윤여정이나 인터뷰하는 걸 들어보면 에고가 강하기보다 다양성에 열려 있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리 아이작 정은 <더 데일리쇼>에서 트레버 노아와 진행한 인터뷰, 스티븐 연은 코난 오브라이언과의 인터뷰를 강력 추천한다)
이 필자의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