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팟캐스트 목록에는 팟캐스트가 50개 정도 있는데, 이 중 미국 정치 주제가 10여 개 정도 된다. 정치와 전혀 관계없는 내가 이렇게 미국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굳이 따지자면 트럼프 때문이다. 저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을 싸지르는 사람이 미국 대통령까지 됐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나의 분노를 최고로 자극했던 트럼프 발언은 그가 2015년 대선 캠페인에서 뉴욕타임즈의 장애인 기자(뇌병변으로 몸이 뒤틀려 있는)의 말투와 몸 뒤틀림을 조롱하며 흉내 낸 순간이었다.
“광장에서 총으로 사람을 쏴도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저 근자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저 인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뇌 구조를 가진 것일까. 트위터로 계속 거짓말을 일삼고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손가락질하며 자기 지지자들을 필터 버블 안에 가둬 놓는 트럼프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민주주의에 해가 되지 않을까. 이게 내가 미국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앤드루 양의 등장: 당선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후보
그런 상황에서 내 눈에 확 들어왔던 인물이 바로 미 민주당 대선 경선에 등장한 앤드루 양이었다(앤드루 양의 남다른 선거 캠페인에 대해서는 페이스북에 글을 여러 편 썼었다). 지금은 코로나로 핫해졌지만, 기본소득을 무려 대선공약으로 들고나온 인물이다.
대만 이민 2세로 좋은 학교 나와서 변호사를 하다 때려치우고, 전형적인 아시아계 전문직의 길을 걷지 않는 대신 연쇄 창업을 했다가 Venture for America라는 스타트업(아이비리그 나온 대졸자들을 미국 중소도시로 보내서 창업을 도와주는 미션의 기업)을 차렸던 인물이다. 공직 경험이 전혀 없다.
앤드루 양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캠페인은 무척 흥미로웠다. ‘Longer-than-long-shot(당선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후보자)’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양은 열광적인 인터넷 지지층(Yang Gang)에 힘입어 전국 지지율 3~5%를 기록하며 20명 가까이 난립하던 민주당 경선후보들 중에서도 거의 맨 마지막 7인까지 살아남았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 안 좋아하는 사람 있던가? 정치 무명인 앤드루 양이 정치경력 수십 년의 바이든이나 샌더스, 상원의원인 워런 등과 경선 후보 토론에서 맞붙어 좋은 평가를 받는 과정을 보는 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줬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을 오랫동안 해왔던 내가 양을 주목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트럼프와 비슷하지만(전혀 정치 경험이 없는 워싱턴 아웃사이더란 측면에서) 트럼프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과 컨텐츠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떄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트럼프 때문에 정치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에게 앤드루 양은 완벽한 해독제였다.
이런 앤드루 양의 스타일과 컨텐츠에 매료되어 경선 기간 동안 글을 쓰기도 하고, 어느 모임에서 앤드루 양의 기본소득 공약과 그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대하여 간단히 발표하기도 했다. (그 모임에 참여한 분 중 두 분이 국회의원이 될 줄은 몰랐… 한 분은 앤드루 양과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정말 비슷하다. 심지어는 앤드루 양이 재난소득을 불 끄는 것에 비유한 논리를 아예 갖다 쓰신다ㅋㅋㅋ/다른 한 분은 아예 기본소득당으로 출마하심)
아무튼, 이런 양의 스타일을 미국의 뛰어난 저널리스트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 Vox 창업자)이 앤드루 양을 초대한 본인 팟캐스트에서 분석했다.
내가 당신의 선거운동을 보면서 정말 감탄했던 건, 당신이 아무도 싫어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당신을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정치적 신념이 다른 사람들, 좌우 누구든 당신은 싫어하지 않았어요.
정치라는 건 원래 대립적이죠. 그 에너지로 돌아가고요. 근데 당신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고 전혀 대립적이지 않았어요. 기본소득 지급이라는 당신의 캠페인 공약은 극도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평가받았지만, 보수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했고 레딧(한국으로 치자면 딴지, 클리앙 같은 커뮤니티), 4Chan(햔국으로 치자면 일베) 에서도 인기를 끌었죠.
그러니까 ‘대립’이란 걸 축으로 따지자면 앤드루 양은 매우 낮은 수치였죠. 그건 정치에서 드문 일이에요. 트위터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양분되어 있고 전혀 나이스한 공간이 아닌데, 당신은 ‘좋은 사람’ 이미지를 구축했어요.
과연 그랬다. 진보 진영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나 보수 진영의 트럼프가 대립적인 언어를 쓰는 정치인이라면, 민주당 대선 후보인 바이든과 해리스는 때에 따라 전투력을 발휘하는 전형적인 정치인이다.
그런데 앤드루 양은 그런 측면에서 증오나 대립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고 나서 CNN 정치 코멘테이터가 된 후에는 트럼프에 대한 단어를 좀 세게 쓰고 있긴 하다). 일례로 앤드루 양은 자신에게 아시아계 비하 욕을 날린 코미디언이 SNL에서 해고되는 것에 반대했다.
선두 후보를 몰아붙여서 더 많은 방송 시간을 확보하는 게 군소 후보의 전형적인 전략인 경선 토론 무대에서 다른 후보를 감정적으로 몰아붙인 적도 없다. (그래서 대선 후보 토론에서 양의 방송 시간은 가장 적었지만, 그 적은 시간 동안 영양가 있는 내용은 가장 효과적으로 잘 전달한다)
미국에서 정치적 대립을 자극하고 정치적 지지를 끌어모으는 끝판왕은 인종 이슈인데, 양은 아시아계라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선거 캠페인에서 감정을 자극하는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양은 트럼프는 병(disease)이 아니고 그의 대통령 당선이 백인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떠안고 있던 불만이 터진 결과이므로 증상(symptom)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양이 폭스뉴스를 비롯해 우파 팟캐스트나 유튜버들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고, 민주당이 무시했던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끌어오는 결과를 가져왔다.
앤드루 양의 태도: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위하여
트럼프가 분열과 잘못된 정보, 왜곡으로 오염시킨 미국 정치판에서 앤드루 양의 캠페인은 신선한 한 줄기 바람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앤드루 양은 이렇게 좌우 유권자 모두를, 분열적 언어 없이도 사로잡았을까? 에즈라 클라인과의 팟캐스트 대화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에즈라, 내가 나이스하다고 하는데 사실은 난 본질적으론 어둡고 감정도 격한 사람이에요. 미국인들 대부분이 처해 있는 상황은 수십 년 동안 쌓여서 생긴 거고, 그렇게 서로 다른 코너에 몰려서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죠. 생산적이지 않은 지경까지 이르죠.
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 화를 내지 않아요. 타인들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거라고 오히려 기대하죠.
경선을 치르며 느낀 건데 방송에서는 날 불러놓고 ‘A가 이러저러한 말을 했는데 반응해보라’며 내게 뭔가 분노를 자극하는 말을 하길 원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분노를 자극하는 발언은 부정적인 뉴스 사이클을 만들죠. 나도 그렇지만 국민들은 그에 피로감을 느껴요.
(나이스하게 행동하는 것이) 내 전략이라고 하는데, 사실 전략이 아니에요. 그저 좀 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논의를 하길 바라는 것이죠.
앤드루 양과 에즈라 클라인의 1시간 남짓한 대화는 매우 흥미로웠다. 사실 에즈라 클라인은 기본소득이 가진 역진성과 부작용 때문에 반대하는 편이다. 앤드루 양이 주장한 ‘AI 때문에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기본소득과 AI에 대한 생각이 앤드루 양의 캠페인 뼈대를 구성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상당히 의견차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토론의 정석’을 보여 준 것이 놀라웠다.
1시간짜리 팟캐스트를 여러 번 돌려 듣고, 커뮤니케이션적인 측면에서 양이 갖고 있는 토론자로서의 2가지 미덕을 발견했다.
첫째, 기본적으로 대화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과 애정이 그대로 태도에 드러난다. 앤드루 양은 이런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아들이 있었죠? 판데믹 시국에 잘 지내고 있나요? 우리 애도 7살인데 아직도 빽빽 소리 많이 질러요.
대선후보들을 릴레이 인터뷰했던 뉴욕타임즈 기자도 같은 평가를 했었다.
앤드루 양은 보통 사람을 잘 이해하고 무장해제를 시키는 매력이 있어요. 인터뷰하기 전 나한테 ‘아이 학교는 어디 보내냐’며 묻더라구요. 친근함이 느껴졌어요.
둘째, 상대방이 제시한 좋은 아이디어에 자신의 의견을 더해 더 가치 있게 만든다. 에즈라가 토론 중간에 “왜 미국 양당은 정부가 필요한가 아닌가란 논의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앤드루는 이런 말로 받는다.
그 의견에 정말 동의한다. 그런 아이디어를 연구하는 무슨 학파가 있나? 지켜봐 달라. 이제부터 나의 미션은 일 못 하는 정부 구조(mechanics)를 바꾸는 걸로 하겠다.
그래서인지 에즈라 클라인은 이 코멘트를 앤드루 양과의 팟캐스트 맨 앞에 배치하기도 했다. 본인이 제시한 생각이니 얼마나 뿌듯했겠나.
앤드루 양의 철학: 정치를 이성, 화합, 능력의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아래는 에즈라 클라인이 앤드루 양에게 던진 질문 목록이다. 질문 목록 중 한국 정치에서도 보면 좋을 것 같은 질문에 대해, 앤드루 양의 생각을 간단히 요약했다.
에즈라 클라인(이하 K): 기본소득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 공정한 경제를 건설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앤드루 양(이하 Y): 그렇다. 코로나 재난소득으로 단기적 효과를 실감하지 않았는가. 아마존과 같이 디지털 경제의 꼭대기에 있으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곳에서 거둬들여야 한다.
K: 최근 5년 동안 AI와 AI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Y: 기업 입장에선 코로나가 AI를 도입할 이유를 훨씬 더 앞당겼다. 이젠 무인 키오스크나 배달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노동시장에 훨씬 더 파괴적 결과를 갖고 올 것이다.
K: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앤드루 양은 어떤 일을 하게 될까?
Y: 비공식적으로 바이든 캠프와 얘기한 바는, 인터넷과 기술에 대한 새로운 부서를 만들게 된다면 그걸 맡게 되지 않을까 한다. IT산업이 이렇게 커졌는데 IT산업을 관장하는 부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비용 문제로 20년 전에 없어졌다.
소셜미디어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도파민 머신이 되었다. 회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UI를 유지한다. (2020년 9월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The Social Dilemma』라는 다큐멘터리가 바로 이 내용) 이런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부서가 필요하다.
K: 미국 민주당은 (정부 역할을 줄여야 한다고 믿는 공화당에 비해) ‘정부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당이다. 그런 민주당은 왜 ‘일하는 정부’를 만드는 데엔 별로 관심이 없을까?
Y: 100프로 동의한다! 이제 정부가 필요하다 필요없다의 논란에서 좀 벗어나서, 일하는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내가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 지켜봐 달라. 이게 나의 새로운 미션이 됐다.
K: 진보주의자들이 기술에 대해 너무 디스토피아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Y: 진보주의자는 당연히 기술에 대해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대선 공약 중에는 환경부터 AI 대응까지 기술의 중요성과 실제 기술 솔루션을 반영한 내용이 많이 있다. 기술은 한 방향으로 진화하는데 자꾸 과거를 돌아보면서 노스탤지어를 느끼면 안 된다고 본다.
K: 대선캠페인을 하는 후보들은 ‘가치 선언’을 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즉 한쪽 편을 들라는 식의 강요) 정작 ‘통치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것 같다. 대선 캠페인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건가?
Y: 자꾸 나보고 가치선언을 하라고 하는데, 나는 문제를 해결하러 대선에 출마한 것이지, 가치 선언하러 대선 출마한 게 아니다.
K: 바이든이 미국 정치에 끼치는 의외의 영향력?
Y: 바이든이 한마디 하면 그게 민주당의 ‘메인스트림’이 되는 힘이 있다. 그린뉴딜을 보라. 그 전에 샌더스나 AOC가 주장할 때는 ‘너무 급진적, 좌파적’이라고 했는데 바이든이 지지한다고 하자마자 ‘아 그렇구나. 인정’. 이렇게 된다. 즉 바이든은 미국 정치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transformational) 인물이다.
과연 수백 년간 지속되어 온 미국 정치의 굳건한 틀을 정치 신인인 앤드루 양이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정치를 감정과 대립, 증오, 무능력의 영역에서 이성, 근거, 화합과 협업, 능력의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이 팟캐스트를 들으며 생각해 보았다. 한국의 정치는 어떠한가? 한국 정치 또한 좋은 기사든 나쁜 기사든 알려지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실제로 일하기보다는 특정 계층의 이익에만 복무하여 ‘어그로 끌기’만 하고 되는 건 없는 그런 정치인들이 많은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리당략과 정파를 떠나 협력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와 커뮤니케이션, 철학이 필요할까?
앞으로 앤드루 양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원문: 네눈박이엄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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